라고 물으면 남편은 핸드폰을 쳐다보며 무심하게 응, 왜 그러는데, 무슨 심리테스트야?라고 말한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정말 낭만 따위 없구먼.이라는 생각을 한다.
"옛날 로마인들은 다이아몬드를 보고 하늘에서 떨어진 별조각이라고 믿었대! 자기도 별조각 선물해줄 거지?"라고 말하면 남편은 고개를 들고 나를 제대로 쳐다본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편이 가장 고심한 건 다이아몬드를 살 때였던 것 같다. 그는 다이아몬드가 돌덩이 주제에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했다.
- 다이아몬드가 처음 웨딩 반지로 사용된 건 1477년 오스트리아 맥시 밀리언 대공이 프랑스 버건디 왕국의 공주에게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프러포즈를 하게 되면서라고 한다. -
밀리언 대공은 외국인이고 우리는 한국인이니 순금 쌍가락지를 나눠 끼자고 말하던 그는 꽤, 실리적인 편.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다이아몬드 1캐럿을 얻기 위해서는 250톤의 자갈과 바위를 캐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채취가 어려운 보석이며 르네상스 시대까지 어떤 도구로도 깰 수 없었기 때문에 불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드비어스 마케팅의 노예가 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환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보석이다.
특히, 난 남편이 싫어하는 돌덩이라서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무가치한 돌덩이를 선물해주는 게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 드비어스는 전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의 90% 점유하고 독점하면서 'A diamond is Forever.'이라는 슬로건으로 마케팅을 시작한다. 사랑의 징표로 선물 받았으면 영원히 팔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다시 리셀되는 경우가 드물어진다. 그렇게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계속 올라간다.
“밤하늘의 별을 따서
성격상 둘 다 이것저것 따져보는 타입이라, 프러포즈고 자시고 엄청나게 발품을 팔고 공부해서 다이아몬드를 구매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과정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이 작은 결혼반지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서려있는지, 결정하기까지 너무 신중히 고민해서 고통스러웠다.
참 이럴 때 보면 어떤 방식이든 결혼은 시작부터 서로에게 시련을 준다. 사랑의 증표를 결정하는 과정부터 고뇌가 겹겹이 쌓인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련 따위는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사서 고생하고, 그 과정 속에서 이상한 우정이 탄생한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 별조각을 선물하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줄 수밖에 없었다고 정정한다. 징한 남자 옆엔 징한 여자가 있기 마련이니, 결국 받아낸 거지. 뭐.
어느 날, 남편을 골탕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엌을 와다다 뛰어다니며,
“반지 잃어버렸어. 회사 화장실에 두고 왔나 봐. 어떻게 해..”라고 말했는데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괜찮아? 자기 마음은? 괜찮아?”라고 물었다.
마음 괜찮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놀랐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어서였을 거다. 내가 아는 남편이라면 보통, 추궁하고 혼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였으면 그랬을 것이다. 이 점에서 반성한다.) 예상할 수 없는 행동과 반응이었다. 이처럼 남편이 갑자기 훅 들어오면 왠지 그 자체가 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사는 동안 종종 이런 식으로 놀란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다는 생각보다, 안도하게 된다. 마치 보물 찾기처럼 작은 별조각을 찾은 느낌이다. '남편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혼자 행복해한다. 결혼생활에서 희망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자기가 가장 아끼는 거니까, 너무 속상할 것 같았어.”
라고 말하는 남편을보니, 장난치고어리광부리며다이아노래를부르던, 물욕가득한내가좀속물같기도했다. 처음으로남편이원했던쌍가락지도좋았을뻔했다는생각이들던순간이었다.
최근에 친구가 혼인 신고를 했다. 증인이 필요한데, 와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결혼이란 참 무서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법정에 설 때와 마찬가지로 증인이 반드시 필요하니 말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고뇌가 겹겹이 쌓인 반지를 나눠가진다는 것이다.
결혼이란, 어떤 상표의 맥주를 마시고 맛이 좋다고 감격한 사나이가, 그 맥주를 만든 양조회사로 일하러 가는 것이다. - 유대 격언
당연히 평생 이 남자와 살 거라고 생각하고 반지도 꼭 끼고 다니는데 남편은 자꾸 반지를 빼고 다닌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추궁하듯 "반지 꼈어?"라고 물어보는데
그럴 때 남편은 꼭 총각이 된 듯한 얼굴을 하면서 어깨를 으쓱하다가 내가 거칠게 손을 탁탁 치면서 확인하면
"꼈어. 꼈어!" 한다.
어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새우깡 같은 남자다.
웃긴 건, 남편은 반대로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
이상하게도 가끔 남편과 싸우고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다이아몬드를 바라보면 잠시 마음이 안정된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반지를 산 남자의 고뇌가 느껴져서 그런 건지, 다이아몬드보다 나를 걱정한 남편이 생각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사악 풀리는 걸 보면 새삼 다이아몬드의 힘을 느낀다. 나에겐 이 다이아몬드 반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별조각이자 부적이다.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적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