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박이 Oct 01. 2021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분리수거 날은 마치 우리의 생활을 소독한다는 기분이 든다.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를 도와서* 분리수거를 해야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분리수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철이 든다는 게 이런 것일까.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출근하는 길목에는 분리수거함이 있다. 아침에는 가벼운 플라스틱을 들고나가 버린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무거운 종이류와 빈병을 버린다. 남편이 없는 동안 혼자 분리수거를 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식으로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가끔은 이 주치를 몰아서 하기도 했는데, 쌓여있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한 주가 정리되지 않고 찜찜한 기분이 든다. 나는 분리수거 날을 좋아하는데, 아마도 수요일을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매주 수요일마다 좋아하는 근무지를 간다.), 분리수거 덕분에 일주일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어서 일수도 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사고로 잠시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짐가방을 거실 한가운데 턱 하니 두고 짐 정리를 부탁했다. 아직은 회복단계니까 내가 도와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가 끝나자 남편은 집이 어수선하다며 대청소를 부탁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여 청소를 하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키면 하기 싫은 법이라고. 남편을 바라봤는데 그는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자마자 편안했던 생활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복잡해지는 느낌이다. 함께 드라마 D.P를 봤었는데, 내가 마치 그 속에 나오는 후임이 된 기분이라고 말하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자꾸 나를 쪼는 듯한 기분이 든다니까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이 예거 마이스터에 에너지 드링크를 섞어 마시고 있었다. 


 “여보 회복 중에는 술 마시면 안 되죠. 에너지 드링크는 몸에 안 좋고요.”

 “한 잔만 할게요.”     


  다음 날, 나는 다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남편을 발견했다.  

    

 “여보, 많이 마시면 안 돼요. 몸에 안 좋아요.”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냥 나 괴롭히려고 못 마시게 하는 거잖아요.”   


 이 말을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괴롭히려고라니!?      


 “어제도 술에 타 마시고, 오늘도 마시면 안 좋지!”

 “그냥 나 좀 내버려 둬! 마실 거야!” 

    

 남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걱정이 들어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말이 괴롭히려고 그런다고! 어쩜 말을 이렇게 할까. 서운하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나는 마시는 캔을 낚아챘고 열심히 달려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냉장고 쪽으로 달려가더니 한 캔 더 따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캔을 다시 뺏어 싱크대에 버렸고, 남편은 다시 새 캔을 땄다. 일련의 실랑이에서 음료는 온 집안에 쏟아졌다. 


 그는 케첩과 식초를 들더니      

 “한 번만 더 뺏어서 버리면 이것들! 부어버릴 거야!”


 나 역시도 눈에 띄는 대적할 만한 소스를 들었다.       

 “나는 못할 줄 알아?”      


 그러자 그는 안방에서 내가 아끼는 베개를 들고 나왔다. 결혼할 때 산 이집트 코튼 베개였다. 그걸 흔들더니 바닥에 흘린 음료를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순간,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소스통을 쳐다봤다. 허브와 바질이 적절하게 섞인 토마토파스타 소스. 

 뚜껑을 열었고, 남편과 눈이 마주쳤으며, 온 사방에 토마토소스가 튀는데, 그 순간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우리는 끈적한 에너지 드링크와 토마토소스가 엉겨진 상태로 서로를 보며 아이처럼 울었다. 

 하얀 침대보도, 남편이 아끼는 옷에도, 이집트 코튼 베개도, 토마토소스 투성이다. 왜 하필 나는 토마토소스를 들고 있었을까. 후추나 파슬리를 던질걸. 


 물티슈와 키친타월, 휴지를 꺼냈다. 옷장 틈새 사이사이, 벽지에 튄 소스 자국을 문질렀다. 왜 이렇게 싸우게 된 거지. 

   

 나는 이불에 묻은 빨간 얼룩을 닦으면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당신 탓이야!”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지지 않고 “뺏은 당신 탓이지! 내 탓 좀 그만해!”라고 말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소스를 닦으며 남편을 쳐다봤는데, 그 와중에 이 남자. 탁자를 닦다가 손가락에 묻은 소스 맛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남편을 보니 갑자기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웃는 나를 본 남편은 "웃기냐? 웃겨!"라고 말했고, 난 눈물을 훔치며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왜!"라고 말했다.


 “후회되지? 그냥 마시게 둘걸 그랬지?”

 “아니! 에너지 드링크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거든?" (속으로 뼈저리게 후회했다.)

 "어휴."

 "덕분에 잘됐지, 뭐! 대청소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지! 여름이불 다 들여놔야겠네."     


 그렇게 진짜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찐득한 핫식스에 토마토소스가 섞여 집 안은 한동안 끈적였다.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남아 있는 끈적임과 토마토 얼룩이 앞으로 몇 주 동안 눈에 띄면서 이 사건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나는 끈적이는 바닥을 몇 번이고 닦으며 생각했다. 이 남자와 결혼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남편은 벽에 묻은 토마토소스 자국을 보며 매번 생각할 것이다. 이 여자와 결혼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현실판 진짜 결혼생활은 내 속에 있던 또라이가 두둥- 현실로 튀어나오고, 그런 또라이같은 나를 보면서 스스로도 놀라며 이러한 과정을 반복한다는 점. 그리고 옆에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상대방도 나 못지않은 또라이라는 점. 그냥 그렇다. 누가 누굴 별로라고 말할 수도 없는 우린 결국 끼리끼리 잘 만난 또라이 한쌍이다. 





 매주 수요일은 분리수거를 하는 날이다. 출근길에 가벼운 플라스틱을 들고나가 버린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남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같이 나가서 분리수거할래?” 남편이 말했다. 

 “그래!” 


 나는 캔과 공병을 모아든 비닐봉지를 든다. 남편은 종이박스를 양손에 번쩍 들고 앞장선다. 생각해보니 둘이 함께 분리수거를 하는 건 오랜만이다. 확실히 함께 하니 훨씬 수월해진 기분이 든다.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럴 땐, 둘이라서 좋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닐봉지를 바라보니 지난주, 치열한 흔적들이 담겨있다. 나는 캔과 소스통을 흔들며 남편을 쳐다본다.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와르르! 빈 캔과 소스통을 시원하게 털어 버린다. 


 괜히 멋쩍은 나는 "아이스크림 먹을래?"라고 묻는다. 

그러자 남편은 

 "그건 몸에 괜찮고?"라고 묻는다.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 남편은

"토마토소스 사건 이후로 세상에 이제 두려운 것은 없어."라고 말하며 나를 쳐다본다. 






 분리수거 날이 좋다. 쓰레기를 비우고 나면 깨끗해지니까, 비운다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비워지면, 다시 채울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꽉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분리수거 날은 우리의 생활을 소독한다는 기분이 든다. 


 "한동안 토마토 파스타는 먹지 말자." 남편이 말했다.

 "그래. 분리수거 같이 나가니까 좋다. 혼자 할 때는 무거워서 여러 번 움직여야 했거든. 

다음 주도 같이 나가자." 


 그렇게 어느 순간 리셋. 






이전 14화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