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투식스 직장인들의 경이로운 세계
11년 만의 컴백이었다.
2023 나의 한 해는..
방송으로 시작해 방송으로 점철된 일상의 시작이었다.
장장 런칭 프로그램만 3개나 들어갔다가.. (2개는 중간에 엎어졌지만.. 훌쩍)
새로운 신간(출판) 준비까지.
정말 하얗게 나를 불태웠더랬다.
이제 잠시 숨 좀 돌려볼까 하던 차에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갓 입봉을 했던 때 만났던 김 피디. (아! 지금은 한 팀을 아우르는 팀장님이다)
"잘 지내냐?"
"그럭저럭?"
"요즘 작가 뽑기가 왜 이렇게 어려워?"
"눈을 낮춰.."
"그냥 니가 들어올래?"
허허허.. 본론은 이거였다. '니가 들어와서 일해라'
쉬기는 개뿔.
뭣하느냐! 물 들어올 때 노를 매우 저어라!!
일단 외주 제작사가 아닌, 본사라는 점.
다른 방송에 비해 페이는 무지하게 작지만,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일로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
내 작품 준비를 겸할 수 있다는 점.
'그'의 제안을 덥썩 받아들인 것 중 가장 큰 이유는 이거다.
제대로 해보지 않은 분야에 대한 도전.
물론 11년 전에 이곳에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얼마더냐~
그렇게 나는, 주 3일 나인투식스 프리랜서 작가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16년 째 방송작가를 하고 있지만 나인투식스라니..
내게 엄청난 도전의 시작이었다.
출근 당일.
이 시간에 내가 기상을 해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있다면 대체 언제적이더냐..
해도 뜨지 않은, 오전 7시도 되지 않은 시각 미친듯이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6시 50분 : 기상
7시-8시 : 출근 준비
8시 5분 : 집에서 나서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였다.
지옥철, 헬출퇴근길.. 이런 건 기사 속에서나 들여다봤지 내가 언제 해봤겠냐고..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떻게 이 작은 지하철 한 칸 안에 다 들어가 있는 거지?? 정차하는 역마다 내리는 사람보다 타는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은데 지하철 적정 무게는 대체 얼마??? 분명 000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설마.. 모두 한 지역에 일하는 사람들인 거야!?
출근 내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차를 가지고 다니고 싶지만.. 세상에.. 주차를 할 수가 없... 또르르..)
온갖 의문의 물음표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목표 역에 도착.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출구 앞에 웬 줄이 이렇게 길어?
이건 대체 무슨 줄이야?
여기 지하철역에서는 토스트 같은 걸 파나?
그래서 출근길에 사람들이 아침 대용으로 사먹는 건가?
아하! 그렇구나!
아무 생각없이, 줄 따라 가면 되는구나 싶어서 중간쯤 줄을 섰다. 그때였다.
"새치기 하지 말고 뒤에 가서 줄 서세요"
웬 남자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순간 머리가 멍- 새치..기...??!!
그러고 뒤를 돌아보니, 개찰구에서 나온 사람들이 그대로 출구 방향으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랬다. 이 줄이라는 건..
토스트집 앞에서 아침을 사는 줄도, 커피를 기다리는 줄도 아닌.. 출구로 나가는 줄이었다.
'000역 새치기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내가 뭘 알고 그랬겠냐고오!!)
어떻게 출구로 빠져나왔는지도 모르게 지상으로 나와 방송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마악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가 층수를 눌렀다.
그런데. 어랏? 층수가 왜.. 안 눌리지?
"밖에 있는 키패드에 입력하셔야 해요. 안에서는 안 눌려요"
웬 여자 분이 상냥하게 말을 해주는 것.
오마이.. 세상에나 마상에나..
사무실인 4층을 지나, 높이 높이 쭈욱- 10층까지 올라간 후에야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새삼 느끼지만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출퇴근길을 하며 매일같이 하는 생각은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참 경이롭다는 거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곳에 흩어져 이 나라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깊은 존경심까지 일었다.
직장인들은! 대단하다
직장인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직장인들은! 최고다
그 어떤 곳일지라도, 나인투식스를 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알아두시길.
"당신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강하며, 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