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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Nov 29. 2019

내 피디, 내 작가

갓 막내 딱지를 떼어내고 서브 작가로 입봉을 했던 날. 이제야 정말 글 한 줄이라도 쓸 수 있게 되었단 기쁨에 부풀어 목에도 힘이 빡, 어깨에도 자신감 뽁, 가슴팍에는 '입봉작가'란 타이틀을 떡, 새기고 온갖 작가 내음이란 내음은 여기저기 흩뿌리 못해 안달이

난 시절이었다.

모든 글을 다 쓸 수 있을 것만 같고 어떤 아이템이건 맡겨만주면 다 잘 말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감격의 나날들.

그랬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투머치한 열정과 의욕과 또 넘치는 '작가 의식'에 스스로 도취되어 어떤 피디도 참 우습게 보이던 시절이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때쯤 함께 일을 하던 조연출도 피디'님'으로 입봉을 한 터였다. 갓 쪄낸 찐빵 같은 뜨끈뜨끈함이 속을 가득 채운, 그야말로 열혈 피디와 작가가 되었다. 함께 현장을 다니며 하루종일 고된 촬영을 하고 붙어앉아 편집 파인을 해가며. 그렇게 한컷 한컷 만들어낸 영상에 내레이션을 입히고 자막을 입히고. 우린 함께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한컷이 작가인 내 눈에 영 탐탁지 않고 거슬렸다. (그리고 이 그림 한컷이 우리에게 어떤 후폭풍을 주게 될지, 그땐 알지 못했다).


"피디님, 이거 다른 컷 없어요? 여기 이 컷이 앞뒤 상황이랑 좀 안 맞는데...?"


내 말에 담당피디가 약간은 전투적 태세가 되었다.


"그 컷이 왜? 장작이 볼 때 좀 그런 거 아냐? 나는 앞뒤 상황이 (이렇구저렇구 해서) 그 컷을 붙인 건데?"


피디와 나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으로 공기가 묵직해졌다. 나는 올라오는 화 한덩이를 눌러 삼키며 다시 한 번 피디에게 나의 생각을 어필했다.


"(아랫 입술을 한 번 물고) 아니 그러니까 피디님. 피디의 편집 의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그림에서는 내가 말한 컷이 더 임팩트가 있을 거란 거지."


피디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고 우린 그렇게 그 한컷을 놓고 1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 점점 말투가 거칠어졌고 억양이 세지며 목청도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이건 내 영상이야!! 장작은 관여하지마!"


피디는 내게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그리고 나는 그런 피디에게 질 세라,


"그럼 나레이션이고 뭐고 피디가 다 하면 되겠네! 당신이 다 해봐 어디!!"


나는 씩씩대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그렇게 30여분 정도 밖에서 찬바람을 쐬다 보니 마음의 화가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어찌 생각하면 그 한컷은 우리의 열정이기도 했고 자존심이기도 했고 또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서로의 감정에 불을 지핀 것이었을까.

계급장 떼고 피디와 맞짱을 뜬 후.

사무실로 들어와 멋쩍게 내 자리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아랫입술이 꾸-욱 물어지는 게 아닌가?


'으... 이 죽일 놈의 자존심. 으... 이 죽일 놈의 작가 존심. 으... 이 죽일 놈의 열정 같은 난 척.'


따지고보면 피디의 말을 수긍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었을 뿐.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뭐 그리 대단히 수용 치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냥 지기가 싫은 거였다. 단지 그거였다.

방송 흐름에 대단히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대세에 정말 아무런 영향도 없었건만. 몹쓸 자존심 대립, 그뿐이었다.


입봉을 앞둔 어느날.

주변 선배들이 팁이라고 알려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이런 거였다.

자고로 작가란, 피디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체크할 줄 알아야 하고.

작가란, 꼼꼼해야 하며.

작가란, 피디 말에 무조건 옳다 옳다 하는 것은 무능력하며.

작가란, 피디보다야 나아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관계가 깨지고 뒤틀어지면 이게 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차피 다시 보지도 않을 인물에게 내가 작가일 이유도 필요도 존재치 않는다. 이번 일 끝나면 다신 안 볼 건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곧 타버릴 것 같은 찰나였다.

"(큼큼..)"


기척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네가 낫네, 내가 더 낫네 하며 목청 높여 싸웠던 피디가 약간은 긴장한 듯 서서 애써 심드렁한 척, 쿨한 척 한마디 툭 던진다.


"잠깐 나갈..래요? 얘기나 좀 하게..."


하더니 먼저 나가버린다. 피디의 행동에 나도 살짝 긴장을 하며 따라나섰다.

그리고 뒤 따라 나온 나를 본 피디의 말은 이랬다.


"장작, 내가 미안해요. 내가 어른답지 못하게 작가한테 피디 곤조나 부리고... (뒤통수를 긁적이며) 사실 장작이 내 작가라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나도 너무 편하게 내 편만 들어달라고 했네. 애처럼."


내 작가. 피디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작가'였다. 미안하다는 말보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보다도, 자신과 일하는 파트너를 진심 10000%의 '내 사람'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마음을 전하는 것. (이때 그 피디가 좀 멋져 보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물론 지금까지 우정을 잘 쌓으며 이어가고 있다).


뭔가 엄청난 폭풍전야를 상상하던 마음이 후루룩 녹으며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조금은 쑥쓰러운 마음에,


"뭐야, 내 작가는. 피디 나 좋아해?"


당황한 피디가 말한다.


"아, 오해는 절대 금물! 장작 남친도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었어?"


"남친 있으면 뭐 좋아하지도 못하나? 일단 피디 마음은 알겠어~ㅋㅋㅋㅋㅋ"


하하호호. 우리는 어느새 함께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는 전우애를 다지며 서로 각자가 진짜 피디와 작가로 성장하는 계기를 맞았다.


서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인 사이. 그리고 그 사이들이 나누는 세상 제일 듣기 좋은 말.

내 새끼, 내 가족,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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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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