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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해주 Jul 31. 2019

아이엠 작가

나는 작가다

"언니 이제 진짜 작가 되셨네요!!"


진짜 작가가 되었다,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 온 후배에게 책 출간 준비와 드라마를 공부하며 준비 중이라는 근황을 전하자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럼 나는 그간 가짜 작가였던가? 순간 후배의 물음에 질문이 던져졌다. 나... 그동안도 작가였는데. 그러나 이 물음을 꾸욱 삼키고,


"야~ 너도 작가잖아~ 너는 작가 아니야?"


그런데 돌아온 후배의 답이 참 씁쓸하다.


"에이 언니~ 방송작가가 무슨 작가에요... 저는 작가 아니에요~"


8년 째 방송 글을 써 온 후배는 자신이 작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지금 그녀의 존재는 무엇일까.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내 주변의 방송구성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 중에 스스로를 작가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그들은 스스로가 작가라기보단 언론인에 가까우며 작가라기보단 단지 방송을 제작하고 만드는 제작인에 가깝다고 말한다. 분명히 글을 쓰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럼...


'진짜 작가란 도대체 뭘까.'


12년을 한결같이 취재를 하고 취재에 맞는 컨셉을 잡고 구성을 하고. 내래이션 원고를 쓸 땐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출연자의 마음이 느껴지도록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고민하고. 이 모든 과정을 해왔기에, 나는 스스로가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작가로 사는 길이 때론 너무나 딥~한 빡침이 저 배꼽 밑 단전부터 끌어올려지기도 하고, 또 온갖 스트레스로 두피에서 열꽃이 피기도 하고, 더 나아가 점점 줄어드는 수명의 길이가 느껴져 때려치우고 싶은 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만두지 않느냐. 수명까지 단축해가며 할 가치가 있느냐. 묻는다면 내 대답은 1도 고민할 것 없이 예스다.

구성작가들은 자기자신이 스스로를 깎는다. 방송을 위해 이토록 피 터지게, 열정 돋게, 그 어느 때보다 핫하게 제 한 몸을 던지건만. 자신들은 진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수년 간 치열하다 못해 어? 이 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되듯! 내 몸 하나 바스라뜨리며 이 방송에 충성하는데 왜 작가가 아니야? 대단한 예술 작품을 꼭 써야만 작가야? 왜? 도대체 왜?"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아이엠 작가! 라고 외쳐댄다.


스튜디오 대본 한 줄을 쓰면서도 출연자들이 말할 때 이 단어가 입에 촥촥 감기듯 붙을지, 이 문장이 생소하진 않을지. 내레이션 대본을 쓸 땐 성우가 감정이입을 잘해서 읽을만 한지, 그림에 길이가 맞는 내레이션인지, 단순히 그림 읽기용 내레이션 구성은 아닌지. 구성안(촬영,편집구성안)을 쓸 땐 이 구성안을 담당 피디가 봤을 때 촬영 현장에서 찰떡같이 알아주는 구성일지, 편집할 때 콩떡같이 붙여줄 구성일지.

하나하나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한 풀로 두뇌가동을 해가며 밤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도 하며.

대중들이 열광하는 프로그램도, 감동을 받는 프로그램도, 정보를 얻는 프로그램도. 모두 작가(그리고 피디)의 치열한 기획력과 머리카락이 빠져 탈모를 부르는 고민들로 탄생한다.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까지. 작가들은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방송에 최선을 다한다. 그게 메이저급 방송이던, 듣보 방송이건 간에.


방송을 만드는, 그리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들이라면 적당히, 그리고 적절히 라는 말과 잘 타협하지 않는다. (타협하고 싶은 숱한 순간들이 왜 없겠나. 하지만 그리 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기를 쓰며 죽음의 고비를 또 넘어간다) 스트레스로 타들어가

곧 죽을 것만 같아도.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동안은

최고로 잘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누군가는 내가 만든 방송을 보기 때문이고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읽기 때문이고 또 누군가는 나의 방송으로 위로를 얻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작가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다.


그저 잊히는, 모두에게 지나듯
단 몇 분 짜리 방송일지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런 방송 글일지라도
나는 작가입니다.
누군가에게 대단히 칭찬 받을만도
누군가에게 대단히 기억될 만도
칭송 받는 거창한 예술 작품이 아닐지라도
나는 작가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취재하며
상대의 인생을 알아가고
그 인생을 담담히 글로 전하는,
나는 작가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고민들을
하얀 백지에 오로지 글자로만 채워나가는
그대들에게.
당신은 진정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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