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남자는 안 그래

by 장해주

코로나로 인해 집콕 시간이 늘고 있는 요즘. 오늘은 무얼하며 시간을 달래볼까, 싶어 TV 다시보기를 이리저리 검색을 하는데 언젠가 선배언니가 추천했던 드라마가 문득 떠올랐다. 청춘시대.

다섯 명의 풋풋한 20대 여자들이 셰어하우스에 살며 겪는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20대의 청춘만이 할 수 있는 고민, 그리고 성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드라마였다. 따뜻하고 감성적이면서도 갈등관계를 잘 그려나가는.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나는 답답함과 동시에 보는 내내 어쩐지 좀 불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만 드라마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주인공 캐릭터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20대의 정말 나 같은 건지.

무언가 할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하고 거절을 못해 내내 당하기만 하다 어느 순간 정말 맥락도 없이 감정을 터뜨려대는 은재의 모습에서. 물에 빠져 죽다 살았지만 어린 생명을 죽이고 자신이 살았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인생 뭐 있어? 싶어 자포자기한 상태로 자신을 탕진하는 이나의 모습에서. 늘 밝고 쾌활하지만 이따금씩 작은 거짓말로 결국 본인은 악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지원의 모습에서. 지독한 가난으로 스물 여덟까지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알바를 서너개씩 해가며 휴학과 재학을 반복하지만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상대마저 밀어내야만 하는 진명의 모습에서. 특히, 자존감 낮은 상태로 남자친구에게 내내 끌려만 다니다 못해 이별 후에는 데이트폭력에까지 시달리는 예은의 모습에서.

나는 숨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누군가는 드라마에 너무 몰입을 한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들의 모습 하나하나에는 마치 어떤 잔상처럼 나의 20대가 들어 있어 아프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고 또 답답함에 속이 터질 것만 같아 이불킥을 해대기도 했다. (엄마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왜 그리 저 죽일x, 살릴x 하면서 열을 올리는지도 조금은 이해했다고 해야 할까).


청춘시대에서 내가 감정몰입을 하게 된 인물은 예은이었다. 예은의 연애를 보며 정말 나도 모르게 "저 바보! 등신!"이라며 읊조리기도 했고, 양아치 남자친구랑 헤어진 뒤 그를 잊지 못해 아프고 슬퍼하다 결국 본인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다시 그 양아치 남자친구를 받아들이곤 웃어보일 땐 "어휴... 저 모자란 x"하며 올라오는 분을 삭이느라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같이 사는 룸메인 이나와 양아치 남자친구 사이를 오해해서 이나에게 자신의 남자를 건들면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는 "아오!! 저런 미친!"하면서 TV를 팍 꺼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감정이 조금 사그라져 다시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를 틀었을 때 생각했다.

도대체 왜. 그저 드라마 캐릭터일 뿐인 저 예은이에게 나는 이만큼이나 화가 치밀고 분이 나는 걸까.

그러다 생각났다. 몇 년 전쯤 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그리고 그와의 연애시절이. 그와의 연애기간은 행복보다는, 여자로서 대우를 받았다기 보다는, 뭐랄까. 늘 긴장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 조금만 잘못해서 휘청거리기라도 하면 곧 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런 연애였다.

만날 때마다 내 기분보다는 남자친구의 마음 컨디션을 살피느라 눈치보는 날이 많아졌고 무슨 말을 한 마디 하더라도 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해질까 싶어 내 기분이 나빠도, 화가 나도, 마음에 상처를 받았어도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나면 싸울 테고 그러면 헤어질 것만 같아서. 그와의 연애 내내 나는 이런 생활을 이어갔다.

자신의 마음에 조금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게 차디 찬 냉소 섞인 말들을 퍼부을 때도 그랬고 어쩌다 싸웠을 때, 그래서 서슴치 않고 폭언을 할 때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함부로 막 대할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바보 같이 뒤에서 우는 일뿐이었다. 속이 상해서 울었고 내 자신이 스스로 한심해서 울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나쁜놈과 헤어질 수 없어서 더 그랬다.

나는 버림 받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 모든 상황들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속였다. 그가 폭언을 했을 때도 '그래 지금 화가 나서 그런 거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나에게 지나친 구속을 행사할 때도 '저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저러겠어?', 나를 애완동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할 때도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더 이상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도 '괜찮아. 내가 사랑하면 됐지 뭐.'

나는 스스로를 사랑 받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으로 몰고 갔다. 이런 시간들이 점점 더 심해져서 지칠 무렵. 나는 남자친구와 심하게 아주 대판 싸우게 됐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날. 결혼을 앞둔 친구를 만나 지난날 남자친구와의 일을 생각지 않으려 부러 밥도 더 많이 먹고 웃긴 일도 아닌데 더 깔깔거리며 웃음을 남발했건만.


"야. 너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친구의 한 마디에 참았던 모든 것이 내 속에서 쿠르르 무너져버렸다. 아무래도 속 시끄러운 사정은 감출수록 더 짙게 나타나는 건지. 애써 감추고 꾸욱꾸욱 미어터지게 가둬두고 있었던 감정이 무색하기도 하여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감추고 숨기고 할 것도 없게 돼 버렸다. 나는 친구에게 전날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를 했다.

별 거 아니었는데 사소한 게 발단이 되었단 이야기, 말을 잘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남자친구를 화나게 해버렸단 이야기, 사과를 했지만 계속되는 남자친구의 인격모독적인 말에 나도 순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던 이야기, 그리고 그 끝에 언제나처럼 남자친구가 폭언을 했다는 이야기.

여기까지 내 이야기를 잠잠히 듣고 있던 친구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물었다.


"너 혹시... 몇 년 동안 이러고 연애했던 건 아니지?"

".........."


내 침묵에 친구는 기가 막히다 못해 할 말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친구의 표정을 본 나는 얼른 수습을 해야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남자친구를 나쁘게만 만든 것 같다는 마음에 아차!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수습해야겠다는 나의 의지의 언어는 이랬다.


"싸울 때는 그러지만 그래도 잘할 땐 잘해~ 평소에는 다정하고 자상해."


내 말을 들은 친구가 피식- 웃더니 나를 덤덤하게 쳐다보며,


"야, 너 정신 차려. 자상한 남자? 너 지금 뭔가 되게 착각을 하고 있는데, 자상한 남자는 화가 난다고 지가 사랑하는 여자한테 안 그래. 화가 나서 막말하고 화가 나서 폭언을 하고 화가 난다고 그 분에 못 이겨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면. 너는? 그거 다 받아줘야 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화가 난다고 아무렇게나 다 해도 되면 너는 왜 못하고 당하고만 있어? 왜 바보같이 울고만 있는데? 너 진짜 걔가 자상하다고 생각해?"


친구가 한 말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도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다만 인정하고 싶지가 않을 뿐이었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걸. 그 나쁜놈한테 사랑 한톨 받지 못하고 찌질하게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여자란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그저 들키기 싫었던 것이었다. 그게 내 자신일지라도.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는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면 실연의 상처로 앓아 누울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미친 애처럼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날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젠 누굴 만나도 즐겁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 그게 겁이 나서 말도 못하고 그럴 용기조차 낼 엄두가 없었는데.

희한한 건 이별 그거, 막상하고 보니 참 할 만 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한 마음에 미안함이 밀려들어 그날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도 해주었다.

너는 너 그대로, 있는 그대로 빛나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아주 충분해. 사랑은 주는 것만이 아니라 너도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사랑을 받는 것에 두려워 하지 말자. 나를 바라보는 상대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상대라면 과감하게 돌아서자.

그렇게 5년 후. 나는 제법 건강해졌고 같은 연애를 반복하더라도 일찌감치 이별하는 법도 배웠다. 자상한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분별하는 눈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들을 통해 더이상 상대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어느 작가의 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던 게 생각난다.

희망이란 '언젠가' 보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이미' 보석임을 아는 것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