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위대한 그들의 이름

by 장해주

"누나도 똑같애. 엄마랑"


술기운이 슬쩍 올라온 남동생이 비아냥거렸다.

뭐?! 이 자식이 미쳤나... 갑자기 이건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람.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인데?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때는 얼마 전 설 연휴. 그리고 언제나처럼 이놈의 '명절 연휴'가 문제였다. 마치 이 시기에만 꼭 거쳐야 하는 연례행사 같으니까. 아무튼. 이번 연휴 문제의 발단은, 남동생이 그간 쌓였던 노폐물 같은 감정을 토하면서 시작이 됐다. 밥상머리에서 엄마랑 몇 마디 오간 것이 화근이 됐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남동생은 속에 뭔가가 쌓여도 잘 티를 내지 않기 시작하더니 혼자서 삭이는 날이 많아졌다. 장남의 숙명... 뭐 그런 거였는지도.

그러다 그날, 마침내 펑! 하고 터진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저도 어지간히 쌓였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아니었다. 뭐, 식구끼리 그간 서운하고 쌓였던 감정을 말 못할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남동생 마음속에 들어 앉아 있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급기야 엄마를 공격하는 말이 되면서부터였다.


"알아?! 엄마 진짜 이기적인 거"


바늘 같이 뾰족히 날 선 말에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중재에 나서려는데, 옆에서 폭탄이 하나 더 터졌다. 제 형의 말에 막내까지 합세한 것이었다. 듣자하니 막내도 얼마 전에 엄마랑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날을 잡아도 단단히 잡은 것 같은 기분. 한숨이 절로 터졌다. 다 큰 놈들 성화에 아빠는 속이 탔는지 말없이 소주잔만 들이켰고 결국 내가 중재에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그만들 하지? 여기 지금 니들만 있냐? 뭐하자는 짓이야?"


폭풍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데리고 아빠가 일어나 거실로 갔다. 그리고 세 남매의 2차 전이 시작됐다. 남동생들의 속상한 마음도 이해가 됐던 터라 달래주려는데, 아직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큰 동생이 내게 퍼붓기 시작한 것.


"야. 아무리 그래도 둘 다 엄마한테 그건 아니지. 말이 좀 심한 거 아니냐?"

"누나가 뭘 아냐?"

"너 진짜 아무 말도 안 듣고 이럴 거야? 네 맘대로 해! 그럼. 가족이 뭐 필요 있어?"


앞에 있는 소주잔을 들고 입에 털어 넣은 큰 동생이 슬쩍 조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도 똑같애. 엄마랑"


내가 엄마랑 닮은 게 비난 받아야 마땅한 말이라고?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훅 올라오는데, 거실에서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야! 너는 내 뱃속에서 안 나왔냐? 누나만 내가 낳았어? 그리고 네 누나가 나 닮은 게 뭐? 그게 잘못됐어? 잘났든 못났든 나, 네 엄마야. 알아?"


이렇게 3차 전이 시작된 갈등은 최고조의 극을 달리기 시작했고, 둘을 달래던 나는 결국...


"둘 다 그만들 좀 해! 제발!!"


터져버렸다. 그렇게 상황 종료.

그런데 이번엔 엄마가 내가 동생 편을 든다며 싸잡아 퍼붓기 시작했다. 화살이 왜 자꾸 나한테 튀는 건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란 건지.

다음날. 남동생과 올라오는 차안에서.

운전을 하며 조수석 쪽에 앉은 남동생을 흘깃 보니,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은 듯 보였다.


"내가 말이다. 살면서 후회라는 걸 잘 안하는 사람이거든? 근데 그런 나한테도 몇몇 후회의 순간이 있어. 그 중에 하나가 엄마랑 싸울 때마다 엄마 마음에 대못 박는 말들을 쏟아냈던 거야."


그리고 그랬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올라오고 목이 메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에 동생이 조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너 지금은 후회 안 할 거 같지? 내가 그랬었거든? 근데 아니야. 그게 엄마도 상처지만 지나고 나면 내가 나한테 주는 상처가 되더라."


동생은 착잡한 얼굴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너도 마음이 상했으니까, 마음 좀 괜찮아지면 엄마한테 꼭 사과해.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알겠지?"

"...알겠어"


내 말에 동생은 생각 많은 얼굴이었지만 마음은 좀 누그러진 듯 했다.

누나도 엄마랑 똑같다는 말이 주는 의미.

엄마가 이 말에 발끈해서 화가 났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혹시나 내 딸이, 스스로도 정말 싫어하는 모습을 닮았을까 우려되는 마음. 그 모습이 다른 누군가에게 밉게 보일지도 몰라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 엄마뿐 아니라 누구나 자기 자신의 싫은 모습은 다 있다. 그런데 이걸 내 자식이 똑같이 하게 될 때...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킨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가 이런 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않길 바란다. 엄마가 말했으니까. 잘났든 못났든 엄마는 내 엄마라고.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것만이 내가 엄마 편이 되어줄 유일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