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낀 얼굴이 눅눅해지도록 후덥지근했다가, 갑자기 쏟아붓듯 비가 내렸다가, 어느새 또 날이 맑게 개었다. 학교 퇴근길, 동료 선생님과 주차장을 향해 걷던 아내가 말했다.
ㅡ날씨가 변화무쌍하네요. 지금은 하늘이 참 예뻐요.
ㅡ가을인가 봐요.
어느덧 가을. 사실 아내는 이미 며칠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이른 아침,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을 떠 베란다에 나가보니 햇빛과 온도, 공기까지 분명 달라져있었다. 불과 하룻밤 새의 변화였다. 여름의 부서지는 하얀 햇살이 아니라 톤 다운된 주황빛 아침 햇살. 따뜻한 듯 차가운, 차가운 듯 따뜻한 바람결이 전하는 가을만의 온도. 이 모든 게 합쳐져 형성하는 가을 공기에 아내는 괜히 설레어 평소보다 조금 오래 베란다를 서성였다.
코로나19로 경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네사네해도 꽃들은 피고 지고 계절은 돌고 돈다. 계절의 잔인한 성실함 앞에서 알 수 없는 위안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한 치 앞도 내어다 볼 수 없지만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내일이 보장하는 그 어느 것에도 몸을 실은 순 없어도 여전히 돌아오는 가을에 몸을 담글 순 있다.
남편도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을 수 있어서란다(남편은 후드티 성애자다). 대화 중 남편이 색이 바래도록 입고 있는 남색 후드티가 생각나 좀 갖다 버리라고 했더니 그게 멋이란다. 말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