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대학 시절 락밴드 동아리에서 드럼을 쳤다. 한여름엔 곰팡이 냄새나는 쾌쾌한 학생회관 지하실에서 동그란 고무 패드를 두들겼고, 한겨울엔 냉골같은 동방에서 라디에이터에 의지해 합주를 했다. 라디에이터를 켜놓고 좁은 동방에 옹기종기 모여 합주를 하노라면 땀냄새가 온방에 진동을 해 방으로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기겁을 할 정도였다. 여름, 겨울 합숙으로 계절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해서인지 그들 사이에는 꽤 깊은 유대가 형성됐다(모두 교대, 사대생들이었는데 뭘 그리 음악에 욕심을 냈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음악보다도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부가 결혼할 때 축가를 한 것도 밴드 28기(아내의 밴드 기수) 멤버들이다. 제주, 광주, 목포, 세종, 서울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교사생활을 하는 멤버들은 결혼식 전날 합주실까지 빌려가며 축가 연습을 했다. 아내는 멤버들이 축가 연습을 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보며 2012년의 그 계절들을 떠올렸다.
아내는 멤버 여덟 명 중 유일하게 거의 대학 시절 내내 연애를 못했다. 이들은 이를 매 술자리 마다 안주거리 삼으며 놀려대기 바빴는데, 어쩌다 보니 결혼은 아내가 가장 먼저 하게 되었다. 참으로 실속 있다 하겠다. 아무튼 이들이 모인 28기 카톡방은 심심찮게 활성화된다.
출근길 멤버 한 명이 물었다.
**(아내의 이름)는 결혼생활 어떰?
재밌어. 오늘은 남편이 해준 토스트 먹고 출근 중이다.
(거의 매일 굶고 출근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랬다)
남편이라고 하니까 낯설다
질문을 건넨 멤버가 대답했다.
나도 그거 입에 안 붙던뎅
최근 사실상 신혼 생활을 시작한 다른 멤버 한 명이 덧붙였다.
멤버들의 반응에 아내 스스로도 약간 당황했다. 결혼식 직후 학교 선생님들과 대화할 땐 그렇게도 '남편' 소리가 민망해 '남자 친구'라고 하거나 호칭을 생략했는데, 어느덧 '남편'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쓰고 있었던 거다. 처음 질문을 꺼낸 멤버가 말을 이었다.
누가 챙겨준다는 게 부럽긴 하다. 난 오늘 바나나에 초파리 붙길래 바나나 먹고 초파리 잡다 아침 보냈는데. 뭔가 극명한 대비네.
갑자기 바나나와 초파리라니. 서롤 잘 알기에 아내는 멤버의 말투와 표정까지 상상이 가 웃었다. 멤버가 생각하는 것만큼 부부의 신혼생활이 언제나 로맨틱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호칭이 자연스레 익숙해져 가는 것이 기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