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도대전 후,
망하는 집안은 망하면서도 다툰다

삼국지를 다시 읽다 17 – 원소, 관도대전 후

by 강한진

절대적인 우위였는데도 처절하게 패한 원소는 고작 800여 명의 기병만 이끌고 도망가야 했다. 그러나 부잣집이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듯이 완전히 괴멸된 것은 아니었다. 패잔병들이 속속 기주로 돌아왔고 장남 원담이 청주에서 5만, 차남 원희가 유주에서 6만, 그리고 조카 고간이 병주에서 5만을 이끌고 와서 총 16만 병력이 만들어졌다. 충분히 전열을 가다듬어서 심기일전할 만 했다. 그런데 전열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조조군이 쳐들어왔다.


준비가 부족하고 사기 낮아서일까, 원소는 다시 아들 삼 형제만 데리고 도망하다가 다시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리고 삼남 원상과 심배 장군에게 군대 지휘를 맡기고 기주로 돌아와 요양에 들어간다. 삼남 원상을 가장 아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원소의 부인이 강력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원소 진영은 후계자 문제로 세 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첫째 그룹은 삼남 원상파. 군부의 강자인 심배 장군과 모사 봉기가 주축이었으며 원소의 후광을 입어 권력과 군사력을 주도했다. 둘째 그룹은 장남 원담파. 모사 신평과 곽도가 주축이며 장남 승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셋째 그룹은 중도파. 진영 전체의 향배에 관심을 두던 전풍과 저수가 이에 속했는데 이들은 관도대전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 결국 삼남 원상파와 장남 원담파의 대립이었다.


사실 이 내분은 원소가 후계자 문제에 대해 모호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원소의 부인이 삼남 원상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시도를 공공연히 하면서 점차 붕당이 만들어졌다. 갈수록 붕당은 서로를 향해 대립각을 내세면서 거대한 원소 진영은 무능하고 소모적인 내부 권력투쟁 판이 되어갔다. 그리고 원소가 죽자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진다.


일단 원소의 사후 주도권은 삼남 원상이 잡는다. 그런데 조조군이 기주성을 포위하고 있는데도 서로 죽이려는 싸움을 계속한다. 암투였던 싸움이 무력 대결이 되어갔다. 원담이 원상과 심배 장군을 집으로 초청해서 대접하는 척하다가 제거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눈치챈 원상이 미리 위험을 피한 다음부터 무력 충돌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싸우면 싸우는 대로 장남 원담이 패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었던 것 같다. 급기야 원담은 자신의 심복인 신비(신평의 아우)를 조조에게 몰래 보내어 기주의 원상을 공격해 달라고 청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것을 삼남 원상이 알아챘다. 그래서 신비의 가족 모두를 몰살하는데, 신비의 친구이며 원상의 부하였던 심배 장군의 조카가 그 장면을 보고 격분한다. 직접 성문을 열었고 조조군이 기주성을 점령한다. 장남 원담은 원수인 조조에게 기주성 공격을 요청하고, 삼남 원상의 부하는 성문을 열어 적이 들어올 수 있게 돕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윗왕이 막내아들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도 비슷하다. 다윗도 마음 속으로는 후계자를 솔로몬으로 정해 놓았으면서도 자신의 기력이 쇠약해질 때까지 공식화하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결국 장남 아도니아의 반란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아도니아를 지지한 요압 장군을 처리하는 문제까지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부담을 지우고 말았다. 원소는 자신이 아직 건강하니 후계자를 정하는 일은 급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천하를 통일한 뒤에 후계자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런데 후계자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 때문에 장남 승계의 원칙 밖에서 권력승계가 일어날 가능성을 엿보는 행동을 부추겨서 내부 분열이 일어나게 한 것은 명백히 지도자의 잘못이었다.


<2021. 6. 23.>

keyword
이전 17화관도대전 후, 조직은 누구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