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다시 읽다 18 – 원소, 관도대전 후
여기에서 다시 한번 붕당의 위험을 생각하게 된다. 조직 내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며 도리어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붕당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 건강하고 창의적인 조직이 되려면 도리어 다양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각자 다른 생각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비슷한 생각과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끼리끼리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 힘이 결합하면 붕당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생겨난 붕당은 태생적으로 전체 조직의 이익보다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더 강화한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 붕당의 그런 본성은 관도대전 와중에 전풍을 죽게 한 봉기의 거짓말, 허유의 전략이 거부되도록 원소에게 부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 조조군의 포위 속에서도 계속된 원담-원상 패의 싸움 이면에 작용했으며, 그것이 전체 조직 몰락을 재촉했다.
사실 거의 모든 왕조와 조직이 권력승계 문제로 진통을 겪는다. 심하게 분열했으며 심지어 몰락했다. 이 권력승계 과정의 암투들은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 정작 싸움의 핵심 씨앗인 당사자들은 의사가 없거나 그리 적극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부추기고 패거리를 모아 싸움을 키워 비극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내세운 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 그늘에 자리를 잡고 누릴 권력과 부와 명예라는 이(利)를 탐하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반대자에게 무한대의 잔인함을 서슴지 않고 휘두른다.
원소의 어리석음은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붕당의 현상을 방치한 것이다. 몰랐다면 멍청한 것이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지속되어야 할 조직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좀 더 빨리 근본적으로 조치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가 계기를 제공한 것이었으므로 무슨 조치를 해도 효과가 제한적이었을 수 있다. 마음속에 이미 삼남 원상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고 그 판단이 옳은 것이었다 해도 그의 권력승계 조치는 매우 소홀해 보인다. 예상치 않은 패배와 급속한 와병의 과정이라 해도 말이다. 형제간의 권력 서열을 정하고 질서를 세워 따르라고 조치해야 한다. 수많은 왕조의 역사를 보면 후대의 안정적인 권력승계와 정착을 위해 무척 잔인한 권력자 제거의 작업을 한 경우가 많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기라성 같은 공신들을 제거하며 토사구팽의 고사를 남겼고 다윗도 20세밖에 되지 않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모압 장군의 제거를 포함한 몇 가지 왕위 계승에 따른 후속 조치를 이야기한다.
평소에 원상에게 후계자 교육을 제대로 해야 했다. 원소 사후에 벌어진 형제의 싸움을 보면 삼남 원상이 장남 원상보다 나은 듯하다. 그러나 거대 집단을 이끌려면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가는 인간적인 능력 같은 것 말이다. 리더라면 원수도 이끌어서 함께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보통 이상의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원상은 형 원담을 포용하여 이끌려고 하지 않고 싸워서 누르려고 하다가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삼국지는 200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의 조직과 권력에 대한 개념과 사고방식 등 많은 것이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러나 원소 진영의 몰락 과정 이야기는 국내 한 기업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4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창업하여 각고의 노력 끝에 매우 건실하고 성장성 있는 기업으로 키운 사장님이 70 중반을 넘기면서 은퇴를 준비했다. 회사를 더 잘 성장시킬 전문 경영인을 찾아 물려주고 싶었다. 아들은 경영에 관심이 없고 경영자로 적합하지도 않다고 판단되었다. 사장님이 그런 의사를 비치자 부인과 가족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부인은 결사적이었다. 왜 우리 회사를 남에게 주느냐는 것이다. 어떤 설득도 불가능했다. 결국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사장님이 돌아가신 5년 후, 그 회사는 파산해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조직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존재다. 어느 조직도 개인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것’, ‘우리들의 소유’라고 여기며, 내 것이라 ‘남에게 줄 수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추구해 온 ‘권력감’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원해서 노력해 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도 영웅이라는 폭력배들이 탐욕스럽게 세상을 헤집던 2000년 전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完)
<2021.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