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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한진 Jul 13. 2021

애인의 거짓말

사랑은 믿음의 화단에서만 자란다

연애는 바다와 닮았다. 다양한 색으로 영롱한 물빛이 그렇고 갯벌과 모래톱의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자잘한 이야기들도 닮았다. 바람이 바다를 만지면 파도가 일어나듯 말 한마디에 마음이 일렁이는 것도 닮았다. 요즘 딸은 연애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다. 그런 딸이 며칠 전 갑자기 “아빠, 내 연애가 지금 괜찮은지 알아볼 수 있는 질문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얼마 전 다툰 일을 이야기하다가 남자 친구가 그때 그냥 달래기 위해서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고 하더란다. 널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딸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사랑하면서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느냐, 그게 어떻게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냐, 도리어 더 상처를 주는 것이라는 걸 왜 모를까, 나를 위해서라는 말은 자기의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저런 사람을 계속 믿을 수 있겠느냐 등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꾸 아내 생각이 났다. 나도 제법 거짓말을 많이 한다.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하고, 거울을 보며 요즘 살쪄서 고민이라는 아내에게 아직도 예쁘다고 한다. 좀 신경이 쓰이는 거짓말도 한다. 결혼 전 사귀었던 사람에 대해 아내가 꼬치꼬치 질문할 때다. 어떤 사람이었느냐, 어떻게 만났느냐, 자기와 비교해서 무엇이 더 좋으냐 등등 참 난감하게 묻는다. 그럴 때는 재빨리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잡아뗀다. 순진하게 다 털어놓았다간 후탈이 심각하다. 나중에 알 지언정 그렇게 시치미를 떼었으니 이만큼의 평화라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나는 거짓말을 할까? 아내에게 더 잘 보이고 싶고 미움받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싫은 모습을 보이고 싫은 말을 해서 실망하고 멀어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내도 내게 말하지 않고 숨겨둔 이야기 두엇쯤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말하지 않고 숨겨둔 이야기가 메디슨 카운티 다리의 이야기처럼 절절한 아픔일지라도 나는 그것을 묻지 않을 것이다. 그 비밀을 곱고 예쁘게 안고 살 수 있도록 품어 지켜주는 남편이 되고 싶다.     


그런데 캔자스 대학 심리학 연구진이 조금 짓궂은 실험을 했다. 연애하는 남녀 91명에게 애인에게 거짓말을 할 때마다 메모하게 하고 분석해 보니 실험 참가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4.88번 거짓말하며, 단 한 번도 애인을 속인 적 없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한다. 그리고 의도적인 거짓말은 45%, 무심코 하는 경우는 55% 정도이며, 연인들은 적당한 거짓말은 연애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사랑하면 기대가 생긴다. 사랑이 커지면 그 기대도 커진다. 그리고 그 기대는 믿음이 바탕 위에 서 있게 된다.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의 거짓말, 그리고 습관적인 거짓말로 구분된다. 어떤 거짓말이든 거짓이 들어 있으며, 좋은 마음으로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라 해도 자꾸 반복되면 믿음을 깨뜨린다. 가끔은 상대방의 기대가 부담스러워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거짓말로 넘기려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그것이 반복되고 모여서 커지고 습관적인 거짓말이 만들어진다. 그런 거짓말 때문에 믿음이 깨지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때,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지금 딸은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남자 친구를 고민하고 있다. 관계 정리를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의 단계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

첫째, 나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보라. 그게 얼마일지 모르나, 그냥 설정해 본다.

둘째, 그 반만의 현금을 1년 동안 상대방에게 맡긴다면, 상대방은 그 돈을 돌려줄까?

셋째, 만일 안심이 안 될 것 같다면, 연인보다는 그저 아는 사람 정도로 관계를 설정하라.     


사랑은 믿음의 화단에서만 자라는 꽃이다. 그 화단에 거짓이 뿌려지면 사랑은 시들기 시작한다. 돈은 없어도 되나 믿음이 없으면 사랑은 자라나지 않는다. 연인이라면 내 목숨의 반쯤은 조건 없이 안심하며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은 수많은 확인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다. 쌓인 믿음이 없다면 분명 못 믿을만한 행동이나 사건이 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거짓말한다는 말은 가장 쉬운, 그러나 비겁한 변명이다.

하나 더, 상대방이 내게 거짓말 하기 바라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의 진실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1. 7. 13.>


#연애 #거짓말 #사랑싸움 #관계정리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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