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글 김현정
[여우나팔]을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My1tiqU5I&t=31s
엄마 여우가 애타게 꼬마 여우를 찾았습니다. 덤불 속도 헤집어 보고 낙엽 더미 속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엄마 여우 발에 뭔가 ‘툭’ 하고 걸렸습니다. 낡은 나팔이었습니다.
“인간들이 쓰는 물건이잖아!”
엄마 여우는 나팔을 발로 밀치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나팔이 떼구르르 굴러 바위에 부딪쳤습니다.
“아얏, 미우 죽네!”
엄마 여우는 화들짝 놀라 긴 갈색 꼬리를 쭈뼛 세웠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뾰족한 입을 실룩거리며 꼬마 여우 미우가 나타났습니다.
“괜찮아요. 사람들은 절 못 알아봐요. 전 둔갑술에 천재잖아요.”
미우가 보란 듯이 다시 나팔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여우에게 소리쳤습니다.
“엄마 보세요!”
엄마 여우가 귀를 막으며 말했습니다.
“작게 말해도 돼. 귀청 떨어지겠다.”
나팔로 변신한 미우가 입을 벌렁거리며 덧붙였습니다.
“진짜 신기하죠. 전 지금 작게 말했거든요. 그런데 제 목소리가 이렇게 커져요.”
엄마 여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어요. 그때였어요. 엄마 여우가 뾰족한 귀를 쫑긋 세우며 주위를 살폈습니다. 처음 들어 보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죠.
“맙소사! 이 소린 분명 호랑이 울음소리야. 우리 여우골에 호랑이가 나타났어!”
엄마 여우의 눈에 깊은 그늘이 졌습니다.
“호랑이는 엄마보다 더 무서워요?”
아기 여우 미우가 장난스레 물었습니다.
“미우야, 호랑이는 엄청나게 무섭단다. 혹여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야 돼!”
엄마 여우는 주위를 살피며 미우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결국 우두머리 여우가 보름날 회의를 열었습니다. 동물들이 하나둘씩 회의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미우는 몰래 덤불숲에 숨어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고 있었습니다.
우두머리 여우가 날카로운 눈매를 번득이며 숲속 동물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분명히 숲속 동굴에서 나는 소리요. 울음소리로 봐선 새끼 호랑이인 것 같소.”
우두머리 여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직 어미 호랑이를 보진 못했지만, 곧 우리 숲에 나타날 거요!”
그 소리에 회의장이 술렁였습니다. 그러자 숲속 동물들은 엄마 호랑이가 나타나기 전에 새끼 호랑이를 멀리 내쫓아야 한다고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내쫓아야 할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습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동물로 변신해서 내쫓으면 되지. 어른들은 가끔 바보 같다니까!”
덤불에 숨어 어른들의 얘기를 엿듣던 미우가 중얼거렸습니다.
‘칫, 어른들은 겁쟁이! 좋아, 숲속 동굴이란 말이지. 지금이 내 둔갑술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미우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다짐했습니다.
마치 미우에게 길을 알려 주는 듯했습니다.
미우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숲속 동굴을 향해 뛰었습니다. 한참을 달려온 미우는 숨을 가다듬으며 컴컴한 동굴 입구 앞에 섰습니다. ‘휘잉’하고 동굴 안에서 차가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미우는 몸을 으스스 떨었습니다. 달님도 구름으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미우는 동굴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한 발짝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동굴 속 차가운 공기가 살갗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난 무섭지 않아! 몸이 떨리는 것은 동굴 안이 너무 추워서 그런 거야!’
몇 발자국 더 걸음을 옮기던 미우는 얼음처럼 굳어 버렸습니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갑자기 푸른 빛 두 개가 번득였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포효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동굴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미우는 너무 놀라 동굴 밖으로 마구 뛰었습니다. 그러자 동굴 속 푸른 눈도 미우를 뒤따라 뛰었습니다. 간신히 동굴 밖으로 나왔지만 그만 풀뿌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미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올려다보니, 달빛 아래 새끼 호랑이가 험악한 표정으로 떡 버티고 섰습니다. 미우는 처음으로 호랑이를 보았습니다. 덜덜 떨리는 몸을 바짝 낮추며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미우는 변신할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동물이 뭔지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며, 이제 죽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을 ‘땅’ 치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미우는 펑 소리와 함께 어른 호랑이로 변신을 했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잠깐 놀란 듯 뒷걸음치더니 이내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야, 너 여우인 것 다 보여! 우헤헤헤.”
새끼 호랑이는 몸통을 땅에 떼구르 구르며 까르륵거렸습니다.
미우는 변신이 잘못됐나 싶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깔깔대며 웃는 호랑이를 보자 슬슬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무섭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릴 만큼이요.
“너! 당장 우리 숲에서 나가!”
미우가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바보! 호랑이는 여우가 변신해도 다 알아봐. 날 겁 줄려고 해도 소용없어.”
새끼 호랑이는 웃음을 멈추고 고양이처럼 생긴 까만 눈동자에 힘을 주었습니다. 몸집은 작아도 확실히 무서운 놈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습니다.
“너 때문에 숲속 동물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어. 모두, 널 찾으러 오는 네 부모님 호랑이가 숲속 동물들을 다 잡아먹을 거로 생각하고 있어.”
“걱정 마.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여기 있는 줄도 몰라. 내가 사는 곳은 여기서 아주 멀어.”
새끼 호랑이는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너 집 나온 거야?”
미우가 물었습니다.
아기 호랑이는 앞발에 고개를 파묻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습니다.
“난 용감한 호랑이가 되고 싶었어. 용감한 호랑이의 울음소리는 산골짜기에서 쩌렁쩌렁 울려야 해. 그런데 난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그게 왜?”
“최고의 호랑이는 포효할 때 울음소리가 엄청나게 커야 하거든.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단 한 번만이라도 큰 목소리로 으르렁거려 봤으면 좋겠어.”
미우는 새끼 호랑이가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목소리만 크면 되는 거야?”
새끼 호랑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어서 나를 잡고 크게 한번 소리쳐 봐!”
새끼 호랑이는 갑자기 사라진 미우를 찾아 머리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야, 어딨는 거야?”
“어디긴? 네 발밑을 봐. 나팔꽃처럼 생긴 것 보이지?”
새끼 호랑이는 나팔로 변신한 미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나팔을 집어 들었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뭐라고 소리치지?”
“뭐든, 좋아. 그냥 지금 생각나는 말을 외쳐 봐!”
미우가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나팔에 조심스럽게 입을 갖다 댔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새끼 호랑이의 작은 목소리가 숲속 깊숙이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나뭇가지에 앉아 졸던 새들이 화들짝 놀라 후드득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뒤로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미우를 잡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엄마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기분이 어때?”
다시 여우로 돌아온 미우가 물었습니다.
“최고야! 원래 내 목소리는 가늘고 작았는데, 너를 아니, 나팔을 입에 대고 하니까 몇 곱절 커졌어. 너무 신기해!”
새끼 호랑이는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언제 왔는지 엄마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에게 다가왔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엄마 품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찾으셨어요?”
새끼 호랑이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났습니다.
“널 찾아 숲속을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네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 거야. 그래서 널 금방 찾을 수 있었어.”
새끼 호랑이는 다시 가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엄마 호랑이는 혀로 새끼 호랑이를 핥으며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네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커진 거냐?”
새끼 호랑이는 엄마 호랑이의 질문에 싱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 미우 덕분이에요. 미우가 소리를 키워 주는 나팔로 변신을 해서 제 소원도 들어주고, 엄마도 찾게 해 주었어요.”
새끼 호랑이의 말을 듣고 엄마 호랑이는 미우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호랑이 가족은 자신들이 살던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동화 부문 선정작,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봐라 (공감) #글 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