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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Sep 15. 2023

구렁이의 어리석은 선택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우리는 가장 귀중한 교훈을 얻는다.

[구렁이의 어리석은 선택]을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2NDFYUfbbc&t=90s

  

 “미르야, 그만둬!”

 방울뱀이 머리와 몸을 납작하게 만들며 소리쳤습니다.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 왜 이번에도 내가 숲 속의 왕이 되지 못했는지 알아야겠어!”

 미르는 긴 몸통으로 토끼를 돌돌 말았습니다. 미르가 힘을 꽉 주자 토끼는 숨이 막혀 캑캑거렸습니다.

 미르는 숲 속에서 악명 높은 구렁이입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기분을 거스르는 동물이 있으면 사정없이 죽였습니다. 백 년 묵은 구렁이라고 소문이 나서, 작은 동물들은 미르만 보면 도망부터 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르는 자신의 특별한 힘을 믿고 숲 속의 왕이 되려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사자가 왕이 되자, 힘없는 토끼를 잡아서 화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걔가 뭘 알겠어? 그러다 죽을 거야.”

 방울뱀도 미르가 겁이 났지만, 토끼가 불쌍해서 말렸습니다.


 “빨리 말해!" 

넌 사자마저도 지혜롭다고 아끼는 토끼잖아. 왜 매번 사자가 왕이지?” 

 미르는 방울뱀의 말을 무시하고 토끼에게 다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캑.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토끼가 몸을 비틀며 애원을 했습니다. 보다 못한 방울뱀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모른다고? 그렇다면,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미르는 토끼를 감고 있던 몸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미르 님, 살려주세요! 전설을 말씀드리겠습…. 캑캑”

 토끼는 필사적으로 소리쳤습니다.

 “쓸데없는 꼼수 부리지 말고 조용히 죽는 게 좋을걸.”

 “용, 용이 되시면 됩니다.”

 “용, 그게 뭔데?”

 미르가 조이던 힘을 조금 풀자, 토끼가 간신히 눈을 뜨고 대답했습니다.

 “맘만 먹으면 하늘에서 비도 내리게 할 수 있고, 바닷물을 요동치게 할 수 있는 신이지요.”

 “내 맘대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미르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지금 당신은 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의주를 잃어버린 용입니다. 저를 풀어주시면 미르 님이 다시 용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미르는 토끼를 완전히 풀어주었습니다.

 “캑캑”

 토끼가 땅바닥에 코를 박고 기침을 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도망칠 궁리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내가 용이었다고?”

 “지혜로운 토끼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 입죠.”

 토끼는 신을 대하듯 미르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용에 대해 자세히 말해 봐!”

 “우선, 하늘을 맘대로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토끼는 벌벌 떨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만날 하늘로 도망치는 저 얄미운 새들을 맘껏 잡아먹을 수 있겠군.’

 미르는 긴 몸을 동그랗게 똬리를 튼 채 생각했습니다.

 “바닷물도 맘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습죠.”

 ‘그렇다면, 파도를 일으켜 사람들을 겁줄 수도 있겠군.’

 “그리고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 불에 닿는 건 모두 통구이가 됩니다.”

 “오호, 통구이, 그것, 참 재미있구나.”

 미르는 일전에 땅꾼에 잡혀 죽을 뻔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용이 된다면, 그 녀석부터 혼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숲 속의 왕보다는 뭐든 할 수 있는 용이 되는 것이 더 구미가 당겼습니다.

 “좋아, 널 살려 주겠다. 이제 용이 되는 방법을 말해 보아라?”

 미르는 점잖은 척 허세를 부렸습니다.

 토끼가 풀려나는 걸 본 방울뱀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토끼가 말한 방법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용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여의주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의주라!”

 미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토끼를 쏘아보았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작은 토끼 따위가 감히 어떻게 자신을 속이겠는가 싶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좋다. 방법을 말해 보아라!”

 “우선, 쉬운 방법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숲에서 제일 오래 산 나무를 찾아야 합니다.”

 “그거야 쉽지. 바로 저 참나무가 500년은 더 살았을걸.”

 미르는 두 쪽으로 갈라진 혀를 내밀어 가리켰습니다.

 “그럼, 이 구슬을 입에 물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태양에 비추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구슬이 여의주로 바뀔 겁니다.”

“그쯤이야. 나는 나무 타기 선수인걸.”

 토끼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구슬을 꺼내 건넸습니다. 그 구슬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근처에서 주운 것입니다.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주워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줄 여의주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음, 그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미르가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럼, 저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덤불 밑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토끼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말했습니다.

 “넌 그냥 구렁이야. 네가 저 나뭇가지에 올라가면 다칠 게 뻔해!”

 방울뱀도 처음에는 토끼 말에 호기심이 생겼지만, 들어보니 거짓말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몸을 납작하게 세워 토끼를 위협했습니다.

 “넌 내가 용이 되는 게 배 아픈 모양이지.”

 방울뱀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당황했어요. 

 미르는 특별한 자신을 그냥 구렁이라고 한 것에 오기가 생겼습니다.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리구슬을 입에 문 채, 나무 꼭대기에 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까지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미르 님, 조금만 더 높이 올라가십시오. 이제 용이 되실 겁니다.”

 토끼는 방울뱀에게서 뚝 떨어져 소리쳤습니다.

 ‘난 용이 될 거야. 그러면 저 하늘 세상은 내 것이 되는 거야. 내가 이 세상 제일이라는 걸 보여 줄 테다.’

 미르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제발, 그만 내려와! 그러다 떨어지겠어!”

 방울뱀은 미르가 움직일 때마다 가는 나뭇가지가 아래로 축 늘어지는 걸 보았습니다. 결국 가지가 부지직 소리를 내며 부서졌습니다. 그리고 미르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땅으로 ‘쿵’ 소리와 함께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토끼는 미르가 죽었기를 기대하며 뛰어왔습니다.

 “미르 님, 괜찮으신가요?”

 토끼가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며 미르를 살폈습니다.

 “킁, 어이쿠 허리야. 내 몸이 두 동강 난 줄 알았다.”

 미르가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겨우 눈을 떴습니다. 

 “역시 용이 될 분이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멀쩡하시군요. 그럼, 이제 바다로 가시지요.”

 토끼는 실망감을 감추고 바로 미르를 재촉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바닷물에 우리 같은 뱀이 들어가면 죽어!”

 방울뱀이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또, 아는 척하는 거야? 네가 바다를 본 적이 있어? 죽는지 안 죽는지는 해 봐야 알지.”

 미르가 용감한 척 대꾸했습니다.

 “역시, 미르 님은 용이십니다. 바다를 보면 헤엄치고 싶어 안달이 나실걸요.

 토끼는 미르를 더욱 추켜세웠습니다. 

 미르는 신이 나서 토끼를 따라 해안가로 나갔습니다. 파도가 밀려오자 하얀 거품이 모래와 함께 쓸려왔습니다. 방울뱀은 포기한 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따라왔습니다.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미르 님, 이 구슬을 입에 물고 푸른 바다 멀리 헤엄쳐 나가십시오. 조금 있으면 해가 지고 달님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때 물고 있던 여의주를 달빛에 반사하십시오.”

 “흠, 이번엔 높은 곳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고, 바다도 물이니, 헤엄은 자신 있다.”

 미르는 자신감 있게 바닷물로 들어갔습니다. 늪에서 헤엄칠 때는 파도가 없어서 쉬웠는데, 바다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바닷물이 자꾸만 입속으로 들어와 구슬을 입에 물고 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미르 님, 잘하고 계십니다. 곧 달님이 떠오를 것입니다.”

 미르는 해안가에서 들려오는 토끼의 아첨에 떠밀려, 조금씩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그때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어부가 미르를 보았습니다.

 “이보게, 저기 앞에서 헤엄쳐 오는 뱀이 구렁이 아닌가?”

 “별일이구먼. 어떻게 늪에 사는 구렁이가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있지?”

 어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뱃머리를 돌려 구렁이로부터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감히 용 앞에서 얼쩡대면 안 되지. 근데 왜 이리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지? 기분 탓인가?’

 미르는 어부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보며 벌써 용이 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느낌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참자. 내가 용만 되면, 이 바다는 모두 내 것이 될 테니까.’

 미르는 바닷물이 입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온몸이 뻣뻣해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용이 되기도 전에 죽는 거 아냐.’

 미르는 구슬을 문 채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바다는 벌써 어두워졌지만, 달빛은 아직 비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달은 언제 뜨는 거야? 내가 용이 되면 너부터 손 봐주겠어.’

 미르는 자꾸만 뻣뻣해져 오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보았습니다. 보통 물에서는 더 유연하게 움직이는데, 이상하게 맘처럼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안 되겠다. 더는 못 참겠다.’

 미르는 입에 물고 있던 구슬도 뱉어버리곤, 해안가로 돌아갔습니다. 

 “어, 왜 돌아오고 있는 거야?”

 방울뱀을 피해 바위 뒤에 숨어 있던 토끼가 불안에 떨었습니다. 토끼는 숲 속 악당 미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한 거짓말이 들통나더라도 맘 편히 숲을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콜록콜록

 “살았다!”

 미르는 파도의 힘을 빌려서 간신히 해안가로 돌아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조금만 더 참으셨다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셨을 텐데요. 아깝습니다.”

 토끼는 어느새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아쉬워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미르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바다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십시오. 아직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았습니다.”

 “마지막이라고?”

 “네.”

 “좋아, 그게 뭔데?”

 “용은 원래 불을 내뿜는 신입니다. 그러니 이제 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어떻게?”

 “숲 속에 오두막이 한 채 있습니다. 그곳 부엌 아궁이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뭐라고? 그러다 불에 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절대로 그럴 일 없습니다. 미르 님은 용이십니다. 숲 속에서 미르 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이 없습니다. 그냥 구렁이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입죠. 땅꾼이 불을 피우기 전에 미리 아궁이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는 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내가 구렁이 구이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미르는 몸을 곧추세우고 수익 소리를 내며 토끼를 노려봤습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여태까지도 거의 용이 될 뻔하다가 마지막 순간을 놓치신 겁니다. 하늘의 신, 용이 되기만 한다면 그동안 겪었던 모든 고충이 눈 녹듯 사라질 겁니다.”

 미르는 토끼가 하는 말을 믿어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한다면, 그동안 고생한 것이 모두 수포가 될 걸 생각하니, 짜증이 났습니다. 

 “저놈 말을 믿으면 안 돼! 넌 지금도 힘센 구렁이잖아. 용 따위가 안 되어도 상관없잖아!”

 방울뱀은 토끼에게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고, 미르를 다시금 말렸습니다.

 “시끄러워! 힘센 구렁이 따윈 필요 없어. 그리고 용이 되면 너부터 손 봐줄 테다.”

 미르는 방울뱀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방울뱀이 하는 말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미르는 토끼와 함께 땅꾼의 오두막 부엌 앞에 왔습니다. 방울은 땅꾼이 무서워 차마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미르 님,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습니다.”

 토끼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미르는 아궁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가 보였습니다. 그 속에서 용이 되어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치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멋지군. 용이 되기 위해선 이 정도는 감내해야지!’

 미르는 속으로 되뇌며, 아궁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방울뱀은 눈자위가 촉촉해진 채 멀리서 미르를 지켜보다가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구렁이의 어리석은 선택 #글 김현정 #어리석은 선택을 통해 우리는 가장 귀중한 교훈을 얻는다. - 오스카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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