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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진 Dec 09. 2018

너무 열정적이라 생각되면 주위 사람을 둘러봐라

변화라는 말이 강조되던 때가 있었다. 

변해야 산다고 한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신년이 되면 리더들은 변화를 강조한다. 

변화해야만 살 수 있다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위에서만 외치는 구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변화라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며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타넨바움과 한나(Tannenbaum & Hanna, 1985)는 변화에 대항 심리의 원인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변화는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것을 포기하는 일종의 손실이다.
변화는 알고 있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이동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변화는 의미를 해체시켜 정체성에 영향을 끼친다.
변화는 무의식 속의 인생 계획을 뒤흔들어 각본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우리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저항이 있다. 

우리 주위에도 변화를 싫어하는 동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게 나타나는데 새로운 일을 하다 실패로 들어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또 다른 이면에는 자신은 이렇게 잘 살아왔고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알량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내가 새롭게 무엇을 해서 사고를 치고 그러면서 회사에서 내쳐지는 것보다는 그냥 하던 일 크게 사고 내지 않고 있으면 그냥 쭉 갈 수 있다는 믿음인 것이다. 


예전 군대에서는 시키지 않은 일을 하지 마라는 말이 있었다. 

신병 때 나는 스스로 판단하여 새로운 일을 했다가 잘 못 되는 바람에 선임병에게 엄청난 구타를 받고 난 이후부터는 군에서는 새로운 일을 스스로 찾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큰 대오는 없지만 발전도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경쟁자에게 침략당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큰 과오없이 기존의 것을 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면 그것은 진정 잘못된 것일 것이다.


옛 동료 중에 기존에 하던 프로세스와 기법으로는 3시간이 걸리던 작업을 새로운 프로세스와 도구를 적용하면 30분이면 끝나는 작업이 있었다. 

누가 봐도 후자를 선택할 것 같은데 이러한 것을 도입하고 따라오는 동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로운 것을 익힌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해 왔던 그 방법도 별일 없이 지금까지 잘해 오던 것이다. 

또 하나의 큰 속내는 나의 업무 시간이 단축됨으로써 상사가 자신의 업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비칠 거라는 알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나도 이러한 부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좀 더 행동하고 새로운 것을 위해 항상 탐닉하고 다닌다. 

비효율적인 것을 참지 못하고 완벽하지 못한 것을 항상 고치려 든다.  

진정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변화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항상 변화하려고 하고 너무 열정적인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욕을 부리다 힘들어하는 당신께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간이 맞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소금에 음식을 넣으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소.. 
인간의 욕망도 마찬가지요.. 
삶 속에 욕망을 넣어야지 
욕망 속에 삶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 법이요. 


이러한 변화를 위해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제안하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도 개의치 않고 그런 일을 한다.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분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가 논어 선진편에서 말했던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뜻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을 실천하기 위한 조상의 지혜가 담기 문화가 있는데 그것이 계영배라는 잔이다.

계영배라는 것이 것이다. 잔의 7할 이상이 차면 옆으로 흐르게 하는 선인의 지혜가 담긴 그릇이다. 이 계영배의 뜻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사용했던 잔이라고 한다.


저자는 40대 초반부터 열심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했다. 

좀처럼 한 곳에서 머물러 변화 없이 흘러가는 그런 삶을 싫어했다. 이런 것은 그런데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습성으로 변했다. 내가 변화하니 주위에 있는 너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때로 후배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머리는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이러한 나의 선의는 다른 의도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의 앞서가고 변화하는 모습을 동의하고 응원하던 후배도 내가 그것을 좀 전수할라 치면 그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한 번은 OJT를 진행할 때였다. 팀에서는 후배에게 새로운 일을 가르치라는 과제가 나에게 주어졌고 후배는 그러한 것을 알고 일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가르침이 좀 과했는지 그 후배는 리뷰를 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가르침이 좀 과해서 그의 업무에 대한 질책으로 그에게는 받아들여졌나 보다. 

직장에서의 가끔 폭행사건 발생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중 많은 것이 상사와 후배 사이의 관계이다. 상사가 후배를 질책하다 보면 그는 자신에 대한 모욕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상사의 입장은 후배에게 좀 더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그 후배 놈은 그것에 대해 거부하고 변명만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열정적이지 않나, 그리고 내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같이 있기를 꺼려하면 나 자신이 좀 과하게 열정적이지 않나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가끔 주위에서 종교를 권유하시는 분들을 만나곤 한다. 그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종교의 실체를 전파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상대가 한두 번 거절의 의사를 비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전도하는 것은 그 종교와 그 전도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형성할 뿐이다.


그러면 이런 상황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후배에게 가르침을 줄 때는 그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체크해 봐야 한다.


후배에게 무엇인가를 업무적으로 가르쳐 줄 때에는 그가 진정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여야 한다. 그가 내가 알려주는 상황을 잘 흡수하여 자신의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만약에 그런 마음가짐이 없는 사람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다. 목이 마른 소를 위해 강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그 물을 먹을지 여부는 그 소의 결정사항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가다 보면 물을 마실 곳이 여기뿐이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것이다. 억지로 먹일라 치면 뒷발질에 내가 화를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할 뿐 그 수용 여부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가르쳤으면 그것에 대한 수용 여부는 그 자신이다. 

어떤 선배, 상사는 자신이 가르쳐 준 것에 대하여 수시로 그것을 확인한다.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가르쳐 준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 수용자가 수용을 하길 꺼려하는 것이다.


내가 한 방식이 반듯이 올바른 방법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주지해라.


내가 해 봐서 잘 되었으니 너무 이렇게 해라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일 수 있다. 

그 방식이 나에게는 맞지만 다른 사람이 적용했을 때는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방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배워오고 적용해 봤다고 해서 그 방식이 최선인 것은 아닌 것이다. 겸허히 타인의 방식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라.


소위 너 잘났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잘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소위 너무 올바른 것만을 추구하면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사촌을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다. 남이 잘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하지 못하면 단순히 그를 미워하고 비방하는 것으로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가끔씩은 그들의 세상도 인정해 주어야 그 사람들의 미움에서 좀 멀어질 수 있다.



선배가 후배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예전처럼 가르침을 통해 후배가 성장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자신의 성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있다. 그리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꼰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정신적인 성숙도도 한 이유일 것이다.



열정적으로 사는 것은 정말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 삶인 것 같다.

그러나 가끔은 나의 열정이 타인을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분명 고쳐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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