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일이 있어 회사에 출근했다.
마침 회사에서 가족의 행사가 있는지 한 가족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가족 중에 조그마한 4살 배기 정도 되는 딸아이는 계속 조잘조잘거렸다. 너무나도 귀엽게 말을 하고 옛 나의 딸도 생각나서 한참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왜 회사에 아무도 없어?”
“그럼, 저 아저씨는 왜 일요일에 회사 나온 거야?” 등등…
쑥스럽기도 하고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어서 잠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의 옛 모습도 떠올려 봤다.
이제는 50줄에 접어든 나이, 아이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하여 내가 보살펴 주고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을 어찌 보면 더 부담스러워하는 나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같이 놀아주는 것이 가끔은 부담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좀 쉬자치면 놀자고 칭얼대는 어린 딸에게 화를 낸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하다.
어린 아들과 딸을 위해 무엇을 하며 놀아줄까 무엇을 보여줄까 무엇을 사줄까를 항상 고민하면서 살았던 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즐거웠던 추억이다.
한참 회사일로 지쳐있고, 아내는 육아로 지쳐있을 때 즈음인 것 같다.
저녁에 힘들게 야근을 하고 동료들과 간단한 회포를 푼 뒤 새벽녘에 들어온 나에게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던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민수, 민지의 지금 시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한대 쾅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 열심히 일하고 돈 많이 번 뒤, 나중에 좀 여유가 있으면 그때 놀아줘야지 하고 생각하던 나의 단순한 논리에 한방 맞은 듯했다.
그 이후 가급적 더욱더 많은 아이들과의 시간을 많이 갖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지키려고 노력했던 몇 가지 룰이 있다.
주말에는 가족 모두가 외식을 한다.
항상 바쁘고 잦은 회식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잠자는 얼굴밖에 보지 못하는 날이 연속이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회사 상황이 있었고 또한 나의 개인생활로 인해 이것을 쉽사리 개선되지 않았다.
따라서 주말에는 가급적 그것도 특히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려고 했다. 그것도 외식으로.
토요일은 아이들과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로 했다.
아들놈이 하루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좋겠다고.
왜냐고 물으니, 아빠는 매일 맛있는 거 밖에서 사 먹을 수 있어서 말이다.
사실 우리 직장인들은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 그리운데 가족돌은 매일 집에서 밥을 차려 먹으니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이 더 그리울 것이다.
그래서, 아내의 수고도 줄여주고 아이들과 아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어 토요일 저녁은 맛있는 집을 찾아다녔다.
맛집 리스트도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일요일은 와이프가 음식 솜씨를 뽐내게 해 주었다.
와이프가 일주일 동안 여러 정보를 통해 얻은 레시피를 기반으로 음식을 만들어 일요일 저녁에는 좀 여유로운 식사를 하고자 했다.
아직도 아들놈은 엄마가 해 준 음식이 제일 맛있단다.
맛있는 게 아니고 길들여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도 어머니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
가족 여행을 자주 가려고 한다.
아들과 딸의 그때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 시기에 그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재정적인 부분이 항상 문제였지만 나는 과감히 빚을 내어서 여행을 기획하고 다녔다.
특히나 해외여행은 내가 아내에게 자주 가겠노라고 공헌한 것이었기에 가급적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해외여행 다녀온 것은 참으로 잘한 것 같다.
내 아들 딸의 시선에는 어렸을 때의 새로운 광경에 대한 추억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위에는 자식들이 다 크면 그때 좀 여유가 있으면 여행을 가겠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다 성장해서 보는 것과 어린이, 청소년 시점에 그들이 느끼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제 어느 정도 여우가 있어서 자식들과 여행을 가려고 하면,
나의 건강은 여행하기에 충분치 못하고 자식들은 쉽게 일정을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여행과 관련한 웃긴 말을 들었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떠나야지, 다리가 떨릴 때는 여행하기 힘들다.'
가족과 회사 중에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가족이 먼저이다.
회사일이 좀 바쁘더라도 가족일이 먼저라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
아들놈 졸업식과 주말 근무가 겹치면 어떠한 핑계와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가족행사에 참석했다.
왜냐하면, 주말근무나 출장은 좀 조정을 하여 일을 진행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아들 졸업식은 조정하거나 또다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은 설득하기 쉽고 이해해 주겠지라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중에 은퇴한 뒤에도 나를 맞이해줄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지금 가족을 등지고 회사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인 것 같다.
'왜 아버님은, 우리가 필요한 시기에는 그렇게 나타나지 않다가 이제 나이 들어 나타나셔서는 왜 당신에게 신경 써 주지 않느냐고 서운해하시는 거예요?'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아이들은 이제 불쑥 커져서 부모보다는 친구들을 더 좋아하고 부모의 말보다는 제3의 인물이 이야기하는 것에 더 영향력을 뺏긴 것 같다.
가족의 행사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럴 나이이다.
이제는 좀 여유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바쁘다.
아내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은데 아내도 새로운 모임들에 바쁘다.
은근 화가 나지만 이게 인생의 다 같은 것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해 본다.
열심히 가족을 위해서 우리는 달려간다.
자신도 돌볼 겨를이 없이 그저 열심히 달려만 가면 그것이 가족의 행복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열심히 호박씨를 까 놓기만 하지 말고, 가끔은 저장고가 빌 수도 있겠지만 깐 호박씨를 가족과 함께 같이 맛있게 먹으면서 살면 어떨까?
나중에 한 번에 털어 넣고 희열을 느끼고 싶겠지만,
몇 톨밖에 없더라도, 그 당시에 서로 부족한 것을 나눠 먹으면 그때 행복하지 않을까?
직장인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너무 회사 일에만 몰두하지 마라
내가 열심히 돈 벌어와야지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고 자위하지 말아라. 어찌 보면 야근과 주말근무로 성과를 이뤄 승진과 연봉 상승으로 나중에 놀이공원을 가자고 약속하는 것보다는 좀 일찍 들어와서 집 주면 공원에서 놀아주는 것을 아이들은 더 좋아할 것이다.
회사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자신이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일정을 회사일이 항상 우선순위가 되어 있어 그렇게 몰고 가지 않는지 생각해 봐라. 그리고 너무 잦은 자신의 유흥에 내몰지 않는지 말이다.
아이들이 커졌을 때 나는 그들을 놓아주고 내가 즐길 거리를 만들어라
아이들이 커졌을 때는 그들은 상황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계속 꼰대처럼 잔소리를 하지 말고 말이다.
이때에는 한마다의 충고보다는 한 줌의 용돈이 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그들의 뇌구조는 이제 경직되어 나의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반발심만을 부추길 수 있을 것이다. 충고는 그들이 요구할 때만 해 주어라.
그리고 나는 내가 즐길거리를 슬슬 준비해라. 취미 활동도 하고 타인들과의 만남도 확대하고 말이다.
가족을 위해 혼자서 열심히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들과 함께 옆에서 달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내가 좀 목표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가끔 자신과 손을 잡고 뛰어준 아버지를 더욱더 고마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