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책(戰國策)에는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나온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豪氣)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를 부리는 것이다.
전국(戰國) 시대(時代) 중국(中國)의 남쪽 초(楚) 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을 북방의 나라들이 두려워했다. 이를 이상히 여겨 초(楚) 나라 선왕(宣王)이 소해율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강을 이라는 신하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두려움에 떨던 여우가 말했습니다.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任命)되었으니 나를 해친다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겨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나를 따라오면 보여 주겠다고 했다. 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르니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楚) 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 한참 직장생활의 애환을 리얼하게 그려내던 드라마인 미생에서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직장은 정글이지?, 나가면 지옥이다.
이러한 말은 직장을 나가서 직장을 구하면서 겪는 사람들이 느끼는 현상이다.
여기 대기업이 다니는 한 직장인이 있다.
그는 소위 갑질을 하며 협력업체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인간이다. 항상 협력업체 직원들은 자기를 보면 굽신거렸다. 그는 이제 50줄에 들어서고 있지만 그에게는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었다. 항상 잘 꾸며진 사무실에서 근무하였고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 그는 그러한 삶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었다. 자신은 잘만 버티면 60살 정년까지는 무난할 거라 생각했다. 정년 이후에는 자기를 떠 받드는 협력업체에서 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삶이 바뀌는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에서 그가 수행하고 있던 차세대 전략 사업을 철수한다는 것이다. 외부 환경과 그룹 전체의 시너지 차원에서 철수한다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그의 몸담고 있던 사업부는 공중분해되었다. 구조조정에 따라서 그는 회사를 나와야만 했다.
회사를 나온 그는 그래도 예전부터 자신을 챙겨주던 거래처 김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전화 목소리는 예전 자신을 대하던 목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그 이후로도 자주 전화를 했지만 그 김 사장은 자신을 피하려 했다. 어렵게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된 그는 김 사장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음을 느끼고 놀라움과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자신이 세력이 있고 유능하여 협력업체 직원들이 굽신거린 걸로 착각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호랑이가 되어준 회사가 사라진 순간 그는 단지 힘없는 여우에 불가한 것이다.
주위에 회사를 박차고 나가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사람을 자주 본다.
그들의 한결같은 말은 밖은 더 치열하다는 것이다. 안전한 울타리에 있다 치열한 전쟁터로 나가는 기분이라고 한다.
직장이라는 배경을 보고 협력 업체 사람들이 자신에게 굽신거렸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던 회사의 보호막은 언제 가는 없어질 것이다. 이제는 어느 회사의 김 과장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되어야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생할 수 있는 것이다.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라도 부단히 키워야 한다.
안일하게 회사의 그늘에 묻혀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어느 날 갑자기 그 그늘 밖이 사라지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나약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회사에 있는 팀장, 그리고 동료가 너무나도 밉고 지긋지긋하여 사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은 모든 직장인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표를 던질 때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찾아놓고 던져야 한다.
막무가내로 회사를 나가면 바깥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