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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역사는 미래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는 초석이다.

by 책걸음동무 김흥중

안녕하세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업체 CEO 출신으로 《수능국어 고득점을 위한 현대문법 어문규정》외 7권 저자 김흥중입니다. 제가 2년 동안 집필하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조선왕조실록>(가제)를 연재합니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조선왕조실록

[목차]

1. 태조 이성계 :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한 왕

2. 제2대 정종 : 21년 동안 전쟁터를 누빈 군인, 동생(태종)을 왕으로 추대한 왕

3. 제3대 태종 : 조선의 기틀을 다진 창업 군주 왕

4. 제4대 세종대왕 : 조선 시대 최고의 성군, 백성을 사랑한 왕

5. 제5대 문종 : 조선 병법의 기본을 세운 왕

6. 제6대 단종 :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된 어린 왕

7. 제7대 세조 : 왕위를 찬탈하고 독재정치를 한 왕

8. 제8대 예종 : 정치적 뜻을 못 이루고 짧은 생의 왕

9. 제9대 성종 : 조선왕조의 통치 체제를 완성한 왕

10. 제10대 연산군 : 유교적 통치이념을 거부하고 절대 왕권을 추구하다 쫓겨난 왕

11. 제11대 중종 : 중종반정으로 준비 없이 즉위한 힘없는 왕

12. 제12대 인종 : 권신들의 대립 속에서 짧은 치세를 마친 왕

13. 제13대 명종 : 수렴청정으로 인한 눈물의 왕

14. 제14대 선조 : 조선 최대의 전란을 겪은 서자 출신 왕

15. 제15대 광해군 : 난세를 이끈 패륜 왕

16. 제16대 인조 : 조선 시대 가장 무능했던 왕

17. 제17대 효종 : 치욕 역사를 씻기 위해 북벌을 계획한 왕

18. 제18대 현종 : 두 번의 예송과 경신 대기근을 극복한 공처가 왕

19. 제19대 숙종 : 14세 즉위하여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영민한 왕

20. 제20대 경종 : 아버지와 신하들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한 비운의 왕

21. 제21대 영조 : 당쟁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탕평책을 펼친 왕

22. 제22대 정조 :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룬 선군 왕

23. 제23대 순조 :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로 무기력한 왕

24. 제24대 헌종 : 외척의 세도 속에서 서양 세력을 배척한 왕

25. 제25대 철종 : 문벌 정치에 희생된 비운의 왕

26. 조선 제26대 고종 : 조선의 마지막 왕, 대한제국 초대 황제

27. 조선 제27대 순종 :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마감한 대한제국 제2대 황제


1. 태조 이성계

불패의 명장, 조선을 건국한 왕

출생 : 1335년(고려 충숙왕 복위 4)

사망 : 1408년 (태종 8)

본관 : 전주(全州)

재위 기간 : 1392년 ~ 1398년


활쏘는_이성계-원본(1).jpeg 이성계의 어린시절 활쏘기 연습 장면

이성계와 조선의 개요

이성계의 선조들이 원나라 지방관 벼슬했어요. 부친 이자춘도 원나라 쌍성의 천호였어요. 1356년(공민왕5), 이자춘은 고려의 쌍성총관부 공격 때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고려의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로 임명되어 동북면 지방의 실력자가 되었어요.


이성계는 가문의 배경과 활쏘기 등 타고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크게 활약하고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어요. 1361년 10월에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만호 박의를 처단, 홍건적이 침입해 수도가 함락되자 수도 탈환 작전에 전공을 세웠고, 1362년에 원나라 장수 나하추를 함흥평야에서 격퇴, 1364년에 최유가 원나라 황제에 의해 고려왕에 봉해진 덕흥군을 받들고 원병 1만 명을 이끌고 평안도지방에 쳐들어 왔을 때 최영과 함께 섬멸했어요. 동북면에 침범한 여진족 섬멸로 밀직부사의 벼슬과 단성양절익대공신의 호를 받았고 동북면원수지문하성사·화령부윤 등 벼슬을 했어요.

1377년(우왕3) 자주 출몰하는 왜구를 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대파, 1380년에 양광·전라·경상도 도순찰사가 되어, 아기바투가 지휘하던 왜구를 섬멸, 1382년에 여진족 호바투가 동북면 일대를 노략질하자, 동북면도지휘사가 되어 이지란과 함께 호바투의 군대를 섬멸했어요. 1384년에 동북면도원수문하찬성사가 되어, 함주에 쳐들어온 왜구를 대파했어요. 1388년에 수문하시중이 되었어요.


명나라와 외교 관계 악화로 요동 정벌이 결정되어, 반대했으나 우군도통사가 되어 좌군도통사 조민수와 함께 정벌군을 거느리고 위화도까지 갔으나, 회군을 단행했어요. 이성계는 개경에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옹립했어요. 수시중과 도총중외제군사가 되어 정치·군사적 실권자가 되었어요.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뒤 수문하시중이 되었고, 1390년(공양왕2) 전국의 병권을 장악했으며, 영삼사사가 되었어요.


이성계는 신흥 정치세력의 대표로서 새 왕조 건국의 기반을 닦기 시작했어요. 1391년 삼군도총제사가 되었고, 조준의 건의에 따라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구세력의 경제적 기반마저 박탈했어요. 1392년 7월 공양왕을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올랐어요. 태조는 즉위 초에는 국호를 ‘고려’라 했고, 차츰 새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고려의 체제에서 벗어났어요. 명나라의 양해 아래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하여 1393년(태조2) 3월 15일부터 새 국호를 사용했어요.


이성계는 한양(현재 서울)을 새 수도로 결정했어요. 1393년 9월에 착공해 1396년 9월까지 태묘·사직·궁전 등과 숙정문·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의 4 대문과 광희문·소덕문·창의문·홍화문의 4 소문 등 왕성의 규모를 갖추었어요. 1394년에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과 각종 법전이 편찬하여 법제를 완성했어요. 숭유척불정책을 시행해 한양에 성균관, 지방에는 향교를 세워 유학의 진흥을 꾀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새 왕조의 기반과 기본정책으로 삼았어요.


왕자 사이에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어요. 계비 강씨의 소생 이방석을 세자로 결정하여 이방원의 불만이 컸어요. 1398년에 태조의 와병 중에 이방원은 세자 이방석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남은 등이 자신과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유로 사병을 동원해 살해했어요. 이방석·이방번도 죽여 후환을 없앴어요. 이방원의 요청으로 형 이방과가 세자가 되었어요.


태조는 이방석·이방번 형제가 무참히 죽자 몹시 상심했고 왕위를 이방과에게 물려주고 상왕이 되었어요. 1400년(정종2)에 이방원이 세제가 되었어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정종은 상왕이 되고, 태조는 태상왕이 되었어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에 대한 태조의 증오심은 대단히 컸어요. 태종이 즉위한 뒤 태조는 한때 한양을 떠나 소요산과 함주 등지에 머물렀어요. 함주에 있을 때 태종이 문안사를 보내면 태종에 대한 태조의 증오심으로 차사를 죽여 버렸다는 ‘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되었어요. 태조는 태종이 보낸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1402년(태종2) 12월 한양으로 돌아왔어요. 태조는 불도에 의탁했고 덕안전을 지어 정사(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절)로 삼고 염불삼매(염불로 잡념을 없애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부처만을 생각하는 경지)로 조용히 세월을 보냈어요.


변방에 뜬 샛별, 무장 이성계

고려 말 대내외적으로 혼란했던 시대에 이성계는 새로운 왕조를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었어요. 이성계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과감하게 정치적 판단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이성계는 유연한 성품으로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 있었고, 전장에 나가면 패배를 모르는 장군이었어요. 타고난 체격과 갈고닦은 무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이 이성계를 왕으로 만든 바탕이 되었어요.

이성계는 1335년 함경남도 영흥(화령)에서 아버지 이자춘과 어머니 최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지요. 전주의 향리였던 고조 할아버지 이안사가 동북면의 덕원으로 이주를 했어요. 이안사는 고려인과 여진족이 섞여 살던 지역에서 원나라 쌍성총관부의 관리가 되었지요. 이후 이안사의 아들 이행리, 이춘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원나라의 지방관리를 했어요.


위화도 회군, 개국을 꿈꾸다.

최영과 이성계 두 세력의 대립이 극에 달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어요. 원나라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해 가던 한족 출신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지나치게 무리한 공물, 말과 처녀들을 보낼 것을 요구할 뿐 아니라, 철령 이북 땅을 내놓으라고 고려를 위협했어요. 철령 이북 땅은 고려 땅으로 원나라가 점령하고 있던 것을 공민왕 때 겨우 되찾은 곳이었어요. 명나라는 원나라를 이었으니 원나라 땅이던 철령 이북 땅을 내놓으라고 했어요. 우왕과 친원파들은 즉각 반발했어요. 우왕은 사신을 보내 명나라의 뜻을 꺾어 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우왕은 명나라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어요. 최영도 이에 반대하지 않았어요. 우왕은 최영과 조정의 대신들의 뜻을 받아들여 요동 정벌을 단행하게 되었어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성계는 왕의 명령에 따라 조민수와 함께 울며 겨자 먹기로 4만의 대군을 이끌고 출정 길에 올랐어요. 이성계와 조민수의 대군은 압록강 하류의 섬인 위화도에 당도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요동성을 칠 계획이었어요. 요동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련이 닥쳤어요. 때는 5월이었고 장마로 압록강 물이 불어나자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지고 도망병이 많았어요. 이성계는 이대로 정벌에 나선다는 것은 자멸의 길이라 여겼으며, 친명파로서 명을 친다는 것은 명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성계는 회군을 결심했어요. 왕의 명령을 어긴 회군은 명백한 반역 행위였어요.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회군의 명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어요.

“우리가 대국 명나라를 공격한다면 바로 명나라가 반격할 것입니다. 약소국인 고려가 대국 명나라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까요? 온 국토가 짓밟히고 백성들은 곤궁에 빠질 것입니다. 나 이성계가 여러 차례 이런 상황을 들어 상감과 최영에게 회군을 요청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최영은 이제 나이가 일흔인 노인이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모두 함께 회군해 왕을 직접 만나 사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을 곤궁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 《고려사》 권 137, 열전 50

이성계의 결단은 여러 장수와 군사들의 지지를 받았어요. 이성계는 조민수를 설득해 회군을 감행했어요. 역사를 뒤흔들 일이 시작되었어요. 군사들의 마음을 얻은 이성계는 말머리를 돌렸고, 회군 소식은 곧바로 평양에 머물러 있던 우왕과 최영에게 전해졌어요. 서경에는 소수의 친위군 정도만 남아 있었을 뿐 이성계와 조민수의 회군에 맞설 군사가 없었어요. 우왕과 최영은 개경으로 후퇴했으나 이성계와 조민수의 공격을 받고 생포되었어요. 싸움에서 진 최영은 고봉현(경기도 고양)으로 귀양 갔다가 처형되고 우왕도 폐위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어요.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살기 위한 선택으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선왕조를 세우는 혁명의 시작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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