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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an 11. 2021

안 써야지!

- 글을 잘 쓰기 위해, 쓰지 않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최근 어지럽고 시끄러운 마음과 복잡하고 엉켜있는 생각들 틈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쓰지 않는 시간을 갖자!’


이것은 무슨 말인가?


대부분 작가들은 말한다. 꾸준히 계속 쓰라고. 조금씩 뭐라도 쓰다 보면 글은 늘게 되어있다고. 나도 무척이나 공감한다. 그래서 거의 매일 글까지는 아니더라도 메모를 해왔고, 시간과 체력이 허락할 때마다 노트북을 열었다. 썼다. 뭐라도 쓰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몇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연재’에 대한 생각을 마구마구 했다. ‘그래. 이렇게 그냥 아무 때나 계획 없이 쓸 게 아니라. 연재를 하자. 연재를 해야 꾸준히 쓰지. 연재를 해야 해!’ 글은 고료와 마감 그리고 독자가 쓰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상기하며, 이중 고료와 독자는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마감은 나 스스로도 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나는 연재라는 구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연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했다.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이런 주제로, 이렇게 쓰고...’ 점점 머리가 아파져 왔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연재할 생각에 부담이 되어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연재하려면 글을 모아두어야 하니까 더 부지런히 써야 한다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더 게으르게 만들었다. 쓰자 쓰자 하니까 너무너무 쓰기가 싫어졌던 것이다.      



쓰자 쓰자 하니까 너무 쓰기 싫으넴...



억지로 쓴 글은 완성도를 헤쳤다. 오늘 글을 쓸 내가, 어제 글을 쓴 나를 보며 좌절했다. ‘어제 내가 이따위의 글을 썼다니.’ 쓴 게 아까워 미쳐 삭제는 못 하고 그런데 쓴 글은 거지 같고. 그런 마음으로는 새로운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헛돌고, 크고, 부족한 글만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계속 기운이 꺾였다. 글을 쓰는 게 두렵고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쓰지 않는 건 더 두렵고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뭐라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겨우 끄적여왔다. 쓸 때마다 찜찜했다. 이런 흔적은 그만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출산한 지 7개월이 지났다. 아이를 낳고 손가락 마디부터 온몸의 관절이 쑤시고 시리고 멍한 산후통이 심하게 왔다. 지금도 그렇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글쓰기는 나에게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고통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가 쓰지 않는다면 지금의 이 감정과 몰려오는 생각이 기록이 되지 못하고 사라질까 두려워 일단 써야 한다고 나를 몰아쳤다. 서두르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글들은 성급했다. 성마른 글은 옹졸했다. 누군가 읽어준다 해도 독자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지난 몇 달은 아이를 낳고 계속 빠져나가는 날들이었다. 기운이, 체력이, 마음이. 매일 나는 모자라 지는데 채울 생각은 하지 않고 기록으로 또 빼내려 했다. 그런 글쓰기는 실력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 나빠지는 것일 텐데. 나는 또 나를 보채고, 다그치고, 몰아치고 있었다.     


누군가 읽어준다 해도 독자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의 경험이 좋은 글이 되려면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에 대해 깊이, 두루두루, 반복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굉장히 귀찮고, 괴롭고, 품이 드는 일이이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성가시고, 어렵고, 고단한 만큼 완성도는 높아진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럴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사유는 내보내고 소비하며 축난 상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비축하고, 건강한 상태에서 잘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쓰는 게 아니라 읽고, 먹고, 멈추고, 쉬고, 생각하며 몸과 마음에 무어라도 저축하는 일이다. 사유 없는 글은 전자기기 설명서에나 써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설명문이 아니라 에세이를 써야하니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채워야 한다. 텅 빈 내가 차기도 전에 쓰려고 하다 아차 했다. 그래서 쓰지 않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러면서 또 야금야금 쓰긴 할 것 같다. 맙소사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을 써버렸다니. 이것도 안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썼으니까 내 손가락 마디에게 미안해서라도 저장한다.



내일은 진짜 (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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