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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30. 2020

2020년은,

어서 가버리라고 빌 수밖에

저무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은 2020년이다. 코로나가 나아지고 나의 산후통이 없어질 거라는 희망은 시간이 지나야 실현될 테니까. (모른다 그 반대일지도) 어쩌겠나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의 명확한 해결책은 시간이 흐르길 바라는 것뿐이니 어서 가버리라고 빌 수밖에.     


나에게는 숨 쉴 때마다 우울했고 눈 깜빡일 때마다 아팠던 날들이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눈만 겨우 볼 수 있던 날들이었고, 거리 두고 미루고 취소하고 멈춰야 했던 날들이었다. 2020년은 너와 나, 우리와 모두의 편이 아니었을까.      


내 생 앞에 출산이라는 경계가 너무 선명해서 나는 그 선 하나로도 절단돼 버리고 말았다. 엄마로 돋아난 내가 그 새살이 너무 낯설어서 자주 지난 나를 그리워했다. 지나버려 바뀔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을 텐데, 올해를 보내며 쥐고 있던 미련도 쫙 펴 같이 흘려보내야겠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건 고인 우울일 것이다.       


딸 이름은 ‘은유’다. ‘이은유’ 내 이름표가 붙어있던 작디작은 발은 이제 그냥 작은 발이 되었다. 은유에게는 은유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제 내 이름표를 몸 어딘가에 붙이거나 태명으로 불리는 일은 없다. 7개월이 되었고, 중기 이유식을 먹으며 하루 세 번 똥을 싼다.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동시에 빠는 엄청난 능력이 있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내 새끼라 그런다) 은유는 나의 고통이자 환희, 눈물이자 웃음, 내 모든 기분과 마음이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뭐라도 건네고 싶다. 잘 살았냐며 호들갑도 떨고 싶고, 난 힘들었다며 닭똥 같은 눈물도 흘리고 싶다. 손편지를 써 주고 싶고, 등갈비 김치찜 해서 같이 나눠 먹고 싶다. 마스크 속 당신의 입술이 보고 싶다. 하얀 이 마주하고 함께 빙구 같이 웃고 싶다. 새해에는 천천히 하나하나 할 수 있기를.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의 웃음과 건강과 쾌변을 빈다.


모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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