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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pr 19. 2019

서로의 가난과 곤란을 존중해 주는 사이

우리는 ‘슬픔 배틀’ 공동 우승자

나와 삶의 결이 비슷한 친구가 한 명 있다. 오래된 동네 친구도, 학교 동창도 아닌, 서른하나의 나이에 직장에서 만난 친구. 제주 MBC에서 만난 친구였고, 나는 아나운서 그녀는 시사 프로그램의 작가였다. 동갑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말을 놨고, 섬에서 만났다는 연으로 끈끈해졌다. 타지인들 끼리의 연대. 비슷한 취향의 끌림. 서로가 서로를 붙잡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관계는 꼭 알고 지낸 시간과 비례해 두터워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취향이 선명해 지니까. 학생 때는 맨날 같이 붙어 다니고, 한동네에 살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우정이라 생각했는데, 생의 호불호가 분명해지니 관계는 절로 정리가 됐다. 호(好)는 만나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불(不)은 멀리하고 싶고 말하고 싶지 않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음악을 자주 듣고, 예술영화를 챙겨보고, 무엇보다 지난한 세월을 통과한 우리였다. 사실 마지막 이유가 가장 컸다. 우린 서로의 가난과 곤란을 존중했다. 동병상련, 동지애, 지지리 궁상으로 얽힌 관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다가 보고 싶으면, 부모의 애환이 삶에 직격탄을 날리면, 언제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서로의 얼굴 앞에서 자지러지게 웃고, 서로의 등 뒤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우린 서로의 SOS. 위급상황 일 때도 아닐 때도 서로가 서로를 앞 다퉈 호출했다. “나와.” 한마디에 달려갔고, “가자.”한마디에 문을 나섰다.     


나의 부모 한탄을 누구보다 공감하며 맞장구 쳐준 친구. 문장 하나를 완성하지 않아도 단어만 던져도 알아서 조사와 종결어미를 붙여준 친구. 한때 우리에게 부모는 짐 같았고, 멀리하고 싶었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청춘의 시기가 있었다. 눈앞에 쌓여있는 빚, 오랜 타향살이. 이십 대 내내 빚을 갚으며 살았고, 삼십 대 이제 글을 쓰며 산다. 많이 닮아있는 우리다.     


부모에 치여 눈물과 화가 뒤범벅이 될 때면 어김없이 나는 이 친구를 찾았다. 엄마의 답답함을 토로하고, 아빠의 힘겨움을 한탄했다. 돌아오는 것은 지탄과 동조 없는 맞장구. 딱 나에게 필요한 적당한 위로. 그렇게 나는 자주 친구 앞에서 발가벗었는데, 춥지 않고 오히려 시원했다. 속마음을 벗은 나에게 겉옷을 입혀 주는 대신, 자신의 온기로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속마음은 속을 덮어주어야 하니까. 따뜻했다. 친구도 마찬가지. 우린 그렇게 순서를 바꿔가며 각자의 고단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할 때면 우린 위로해 주지 않았다. 내가 너였고 네가 나였다. 비슷한 환경, 비등한 경험, 같은 생각들을 품었기에 그저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표현과 대면이 없어도 ‘얘가 요즘 마음 쓰는 일이 있구나’ 눈치로 알아차렸고, 서로의 가난과 슬픔, 절망, 우울을 정기적으로 확인해 주어야 안심했다. 한참 동안 절망을 털어놓고 나면 희망이 생겼으니까. 먼저 물어봐 주었고 나중까지 기다려 주었다.     


깜깜한 밤 술잔을 기울이며 말들이 오갈 때면 ‘슬픔 배틀’이 이어졌다. 누가 더 궁상인지. 부모 아님 돈 그리고 일, 가끔 사랑도 있었다. 내가 비정규직의 불안함을 얘기하면 친구는 프리랜서의 허망함을, 내가 아빠의 노동을 얘기하면 친구는 엄마의 가여움을, 내가 가난을 얘기하면 친구는 궁핍을 얘기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이 처량이여. 어찌 됐건 결과는 항상 공동우승. 누구 한 명은 울어야 끝이 났다. 아무도 울지 않았던 술자리는 둘 다 퇴사를 했고, 서울로 올라왔고, 결혼을 한 후였다. 이제 겨우 생긴 서로의 여유를 축하하며 누구도 슬프지 않게 마셨다. 바다에 살며 울고, 육지에 살며 그쳤다.      


깜깜한 밤 술잔을 기울이며 말들이 오갈 때면 ‘슬픔 배틀’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눈물은 잠시 멈춘 것이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아직 우리 앞에 남은 생은 길 테니까. 그 시간만큼 슬픔도 기쁨도 우울도 남아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일상을 살다 또 서로를 호출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처량을 주고받고, 반복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한테 말하지 누구한테 말하나. 언제든 시간과 장소, 시기에 상관없이. 한 번씩 무언가에 치이고 차일 때, 밀려오는 아픔에 저 멀리 떠밀려 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 주어야 한다. 말로 눈물로 위안으로.     


수많은 인연 중에 삶의 결이 맞닿아 있는 우리는 친구. 서로의 가난과 곤란을 존중해 주는 사이. 그렇고 그런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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