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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Feb 27. 2021

코로나 시대의 사랑 그리고 축사

사랑하는 동생 ‘김난희’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축사에 앞서 신랑분께 밝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부 긴장되시죠?


첫 번째로 신랑은 신부 김난희 양이 외동딸인 줄 알고 계셨죠? 아닙니다. 사실 언니가 한 명 있는데요. 친언니는 아니고요. ‘찐언니’가 한 명 있습니다.


네. 바로 접니다. 저와 난희는 친자매보다도 더 찐한 ‘찐자매’ 같은 사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하객석이 아니라 찐자매 자격으로 한복을 입고 가족석에 앉아있어야 맞는데, 축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객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신랑은 신부 김난희 양의 성이 김씨인 줄 알고 계셨죠? 아닙니다. 사실 ‘못’씨입니다. 모에 시옷 받침. ‘못’ 그럼 ‘못’에 이름 ‘난희’를 붙여 같이 불러볼까요. ‘못난희’ 맞습니다. 김난희가 아니고 못난흽니다. 신랑분 신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봐 주세요. 못난희가 맞습니까?


맞다고 하면 ‘이 결혼은 무효야!’라고 외치려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축사 시작부터 까불 수 있는 건 그만큼 난희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논리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2년 1월 2일 광주광역시 월산동에 위치한 광주MBC에서 저와 난희는 처음 만났습니다. 난희는 기상캐스터 저는 아나운서였습니다. 신랑분 혹시 안 믿으시건 아니죠?   

  

그렇게 난희와 저는 연고 하나 없는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목욕탕에서 때도 밀어주고, 서로의 진따 같은 모습도 자주 보며 2년이란 시간을 매일 같이 함께했습니다. 낯선 타향살이와 고된 사회생활 속에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자 친구, 보호자이자 짝꿍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고 돕고 힘이 되어주는 관계로 함께했습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8년이란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난희가 저에게 축사를 부탁했을 때 저는 3초 만에 수락하고서는 사실 3시간 후에 많이 후회했습니다. 축사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해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동생의 결혼을 완전 많이 축하해 주고 싶은데, 어떤 단어와 문장을 써야 할까 오래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 집에 있는 시집을 뒤져 사랑에 관련된 시를 찾아보기도 했고, 사랑에 대해 쓴 소설도 뒤져보고 멋진 격언도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냥 제가 난희를 생각하는 그 마음에 대해 정확하게 써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축사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해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난희는 2년 동안 기상캐스터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방송 준비를 하며 단 한 번도 지각이나 방송 펑크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성실하다’라고 쓰고 ‘김난희’라고 읽어도 되겠죠. 자기가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니. 이제 자기가 맡게 된 신랑을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질 겁니다. 그러니 신랑 안심하세요.


난희는 8년 동안 저와 알고 지내며 제가 그렇게 그렇게 말을 놓으라고 해도 아직까지 저를 존대하며 살갑게 대하고 있습니다. ‘예의 바르다’라고 쓰고 김난희라고 읽어도 되겠죠. 저를 만나면 아직도 먼저 제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제 남편인 형부의 소식을 궁금해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예를 갖춰 대합니다. 저는 난희의 그 정성스럽고 공손한 마음이 참 좋습니다. 난희가 저에게 ‘언니’하고 부르면, 저는 난희에게 진짜 진짜 좋은 언니가 되고 싶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난희는 저에게 비유하자면 이런 동생입니다.      


제가 쌍쌍바를 반으로 가르다 한쪽이 ‘기역자’로 갈라졌을 때, 망설이지 않고 그 기역자의 쌍쌍바를 건네줄 수 있는 동생.      


어느 날 갑자기 난희가 ‘언니 나 돈 좀 빌려줘’ 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가 가진 현금을 평생 무이자로 바로 빌려줄 수 있는 동생.     


동생이 없는 저에게 만일 동생이 한 명 생긴다면, 그 한 명이 난희였으면 하는 동생.     


난희는 저에게 그런 동생입니다. 그러니 이제 신랑분은 난희에게 이런 남편이 되어주세요.     


쌍쌍바 반으로 가르지 않고 난희에게 통째로 주는 남편. 혹시 난희가 돈 좀 빌려달라고 했을 때 빌려주지 않고 그냥 주는 남편. 평생 동생 같고, 친구 같은, 단 한 명의 사람을 ‘난희’로 두는 남편. 그런 남편이 되어주세요.


      




오늘의 축사를 준비하며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아마 신랑과 신부는 모두가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때, 차마 서로에게는 몸도 마음도 거리를 둘 수 없어 결혼을 결심해 버렸겠지요.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축하받고 싶은 만큼 많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늘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전 세계가 멈춰버려 신혼여행도 가지 못해 정확히 알 수 없는 언젠가로 미뤄야 해 아쉬움 가득했을 것이고, 마음껏 하객들의 손을 잡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편히 전할 수 없어 미안한 마음도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크고 더 깊게 이 둘의 결혼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진짜완전많이정말정말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인의 산문집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태어났지만, 우리의 슬픔은 함께 태어났네’     




결혼은 각자 태어난 신랑과 신부가 만나, 이제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 슬퍼하며 살아가자고 약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기쁨도 함께요.


서로 많이 기뻐하고 슬퍼하며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난희에게 한 마디를 건네며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못난희야! 넌 오늘 세상에서 가장 예쁜 김난희야.’    

 

온 맘 다해 두 분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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