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울의 근황

매일 밤 작디작은 알약을 삼킨다.

by 임희정

요즘은 자주 거실에 앉아 여름을 쳐다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 한 계절을 응시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처음인 것 같다. 난 사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작년 여름엔 출산 후 산후통으로 고생하느라, 이번 여름은 우울증으로 고통받느라, 그냥 이 계절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여름을 사랑하기엔 이젠 너무 뜨겁고 습하고, 나는 매번 너무 괴롭다.






우울증약을 먹은 지는 한 달이 되어간다. 새끼손톱의 절반보다도 훨씬 작은 이 알약으로 사람의 감정이 제어된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할 뿐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던 눈물은 흐르지 않고 이런저런 감정과 생각에 아주 예민했던 나는 조금씩 매사 무뎌져 무기력증을 얻었다. 과연 내가 이 작디작은 알약으로 도움을 받은 걸까 아닌 걸까 헷갈리기도 한다. 운만큼 지치기 마련이니까 눈물과 기력은 반대여서 덜 울면 힘이 나야 하는데, 안 울어도 매사 지쳐있으니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의사는 적어도 두 달은 복용해야 한다고 하니 그저 말 잘 듣는 환자가 되어 계속 먹어야겠지 생각한다.


처음 약을 먹었을 땐 조금 긴장하기까지 했다. 과연 이 약이 내 몸속에 퍼져 내 우울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느낄 틈도 없이 스르르 바로 잠들어 버리곤 눈을 떠보니 12시였다. 자정이 아닌 다음 날 정오. 온종일 몽롱했다. 12시간을 넘게 잤는데도 자꾸만 졸려서 자꾸자꾸 잠만 잤다.


우울의 첫 번째 처방은 ‘잠’이었다. 하긴 잠은 일종의 만병통치약 같은 거 아니겠나. 적어도 자는 동안은 우울도 같이 잠들 테니까. 그렇다고 계속 잘 수만은 없었다. 나는 출근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도 봐야 하니까. 그래서 다음날은 그 약을 먹지 못했다. 우울은 쉽게 불면을 동반하는 데 나는 반대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너무 고돼서 매일 밤 아이를 재우고 나면 나도 쓰러져 잠이 들었다. 가끔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우울하면서 잘 잤다. 그나마 다행인 걸까. 다시 병원을 찾아가 약을 바꿨다.


우울의 두 번째 처방은 ‘눈물 억제’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니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 갈 준비를 마치고 등원을 한 후 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다가 회사를 가야 하니까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차에 타면 또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고속도로를 달릴 땐 직진만 하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와서 또 계속 울기만 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풍경이 빠르게 스칠 때 앞으로 달리고 있어도 생각은 뒤로 향한다. 그때 차 안에서 떠오르는 내 과거들은 날 무너지게 했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고 나면 얼른 화장실에 들어가 다시 세수를 했다. 애써 진정을 하고 방긋 웃으며 출근해 프로처럼 일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알약 한 알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하게 해 주었다. 눈물이 안 나니까. 하지만 종종 내 우울은 그 약 기운마저 뚫고 나와 날 또 울게 하기도 한다. 하긴 약으로 며칠 만에 다 나을 우울이었다면 내가 이리 오래 고통스럽지 않았겠지. 나는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산후 우울증만은 아니라는 걸. 내 생의 우울이 출산을 만나 겹쳐 온 거라는 걸. 그래서 이걸 치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것을.






내 우울은 일상을 멈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유지하기에는 힘든 정도여서 나는 죽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아이를 위해 살아야 했고, 우울해 미쳐버릴 것 같다가도 당장 내가 해내야 할 일들에 정신 차려야 했고, 목놓아 울다가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업무 전화를 받아야 했다. 그 삶의 널뛰기가 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내 마음은 전과 너무 다른데 일상은 똑같으니까. 나는 분명 아픈데 보이는 상처가 없어서 안 아픈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겉으로 티 나지 않는 것들은 얼마나 이해받기 어려운지. 티를 내기엔 너무 복잡하고 깊고. 우울은 그래서 더 힘든 거였다.


우울이 우울인 줄 몰라 우울했던 과거와 너무 우울해서 또 우울 해져버리는 현재. 그렇다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실 나는 많이 두렵기도 하다. 내가 내 우울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 나는 내 우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의사는 말했다.


“우울증도 없다 생긴 거니까 생기면 또 없어져요. 약 잘 먹고 밥 잘 드세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그저 내가 이 우울에 무너지지 않고 함께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자꾸만 너무 쉽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느 작가의 말처럼 이 우울을 죽어서 끝내려 하지 말고 살아서 끝낼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 밤도 작디작은 알약 하나를 삼키고 잠든다.


'약 잘 먹고 밥 잘 먹고.'


창밖의 여름을 쳐다보며 무기력하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