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한 너에게

by 임희정


이 글은 너를 아끼는 만큼 아주 긴 당부의 말이 될 거야. 부디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기를. 나의 모든 기억력과 표현력을 동원해 잘 적어 내려가 볼게.



잘 들어. 임신했다는 너의 말을 듣고 나는 축하보다는 걱정을 먼저 할 거야. 이 걱정은 먼저 겪어본 자가 할 수 있는 우선순위의 축하라고 생각해줘. 내 일이 아닌 건 아주 쉽게 축하해 줄 수 있지만, 내 일 같은 건 먼저 염려가 돼. 그 일에 따르는 기쁨만큼이나 아픔을 알기 때문이지. 나는 네가 임신으로 인해 앞으로 겪게 될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을 더 많이 얘기해 줄 거야. 좋은 일은 갑자기 닥쳐와도 좋지만, 안 좋은 일은 모르고 갑자기 맞닥뜨리면 당황스럽고 힘들거든. 나도 그렇게 무지한 상태에서 밀려오는 아프고 힘든 것들 때문에 자주 곤란했었어. 왜 이런 이야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 거지? 대상 없는 원망에 풀이 꺾이곤 했어. 진짜 필요한 걸 몰라 필요 없는 것만 준비하곤 했지. 그러니 왜 축하부터 해주지 않냐 원망하진 말아줘. 아직 눈앞에 선명히 보이지도 않는 점 같은 그 존재보다 뚜렷한 인격체인 네가 나에게는 더 소중하기 때문이야. 너는 점보다 무한대로 크고 귀중한 존재니까.



너는 점보다 무한대로 크고 귀중한 존재니까.




우선 임신 초기에는 아픈 것보다 불안한 감정이 클 거야. 혹시라도 잘못되진 않을지. 내가 먹는 것, 보는 것, 느끼는 것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사 조심스러울 거야. 그 시기엔 ‘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해. 임신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의 연속이거든. 가능할 때마다 무조건 누워있고, 심지어 그것이 좋은 상상일지라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이때의 생각은 너무나 쉽게 기대에서 불안으로 넘어가 버리거든. 하지만 우린 알고 있지.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을 또 생각하게 된다는 걸. 그래서 무엇이든 일부러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


너는 임신 전부터 지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아서를 읽었다고 했지. 그때 나는 너에게 호통치며 말했어. 읽어봤자 뭔 말인지도 모르고 나중 되면 절로 알게 되니 지금부터 읽을 필요 전혀 없다고. 왜 걱정을 손에 쥐고 미리 읽냐고. 그 시간에 차라리 만화책을 보라고. 그러니 초기에는 누워있을 때 휴대폰도 머리맡에 두지 마. 자려고 누웠다가도 자꾸만 ‘임신 초기’로 시작되는 것들을 검색하게 될 거거든. 그 검색 결과는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불안하게 하는 게 많을 거거든.

그러다 첫 번째로 겪게 되는 고통인 입덧이 시작될 거야. 차멀미와 뱃멀미 해본 적 있지? 그것과 비슷한 증상들이 차나 배를 타지 않아도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올 거야.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헛구역질과 구토가 자주, 어떨 때는 온종일 찾아오지. 세상의 냄새들은 어쩜 그리 역한 지. 네 코의 예민함도 백 배 정도는 심해질 거야. 허기질 때 맡으면 달콤하기까지 한 밥 짓는 냄새도 그렇게 고약할 수가 없지. 남편이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온몸에 냄새를 달고 와. 바깥공기 냄새에 남편 품에 인사 대신 구토를 먼저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런 입덧만 있는 것이 아니야. 계속 입에 무언가를 넣어야 헛구역질을 막을 수 있는 먹덧, 시도 때도 없이 변기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게 되는 토덧, 입속의 침을 삼킬 때마다 구역질이나 종이컵 들고 다니며 뱉어내야 하는 침덧까지. 너에게 어떤 것이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참고로 나는 입덧과 먹덧이 같이 와 ‘꿀꺽’과 ‘우웩’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딸기를 입에 달고 살았어. 오직 그 과일만이 나를 구원해 줬거든. 먹덧이 한창일 때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고, 새벽 3시에도 고봉밥을 먹었지. 맨밥을 상추에 싸 먹는 게 그렇게 맛있는지를 처음 알았잖아. 쌀밥과 상추 한 봉지만 있다면 순식간에 걸신이 될 수 있었어. ‘덧’의 종류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이 시기에는 ‘신맛’이 너를 구제해 줄 텐데 ‘아이셔’ 캔디가 ‘뭐가셔’가 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지.




임신 중 일 땐 자매품 '뭐가셔?' ⓒ오리온




나는 이 시기에 심한 두통도 같이 왔어. 문제는 두통이 눈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이어진다는 거였지. 두두두두두두두두~통이라고나 할까. 편두통으로 머리가 계속 지끈거리고 욱신거리는데 너무 괴로워서 머리통을 부여잡고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만 했어. 내가 가장 후회되는 건 임신 초기라 모든 약이 조심스러워서 타이레놀 하나 먹지 않고 미련하게 참기만 했다는 거야. 의사가 먹어도 된다고 했는데도 말이야. 초기에는 100분의 1 혹은 10만 분의 1의 확률 일지라도 그 1이 꼭 내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가득하거든.


임신이란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 몸이 그저 아기를 보호하고 기르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하기도 하고. 나도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은 너보다 아이가 더 중요한 시기잖니’라고 말해 서운하고 화가 났던 경험이 있어. 잘 들어.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도 너보다 더 소중한 건 없었고 없고 없을 거야. 네 몸과 맘이 가장 중요해. 특히 임신 출산 육아의 시기에는 무엇보다 엄마의 상태가 가장 귀중해. 무엇보다 엄마가 건강해야 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해. 아이가 소중해서 자꾸만 잊게 될 테니 엄마가 될 너도, 엄마가 된 나도 반복해 기억하자.




엄마가 행복해야 해. 아이가 소중해서 자꾸만 잊게 될 테니 반복해 기억하자.




불안함 가득했던 입덧과 두통에 시달리는 초기가 지나고 중기가 되면 넌 온 힘을 다해서 하고 싶은 걸 해야 해.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입덧은 한결 나아질 거고 두통도 사라질 거고 몸도 초기보다는 나아질 거야. (제발 입덧을 막달까지 하는 경우가 네가 아니길 기도해) 그럼 무엇보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을 시간이 날 때마다 무조건 가라고 말해주고 싶어. 주말엔 절대 집에 있지 마. 카페, 맛집 어디든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다녀. (코로나 상황이 나아진다는 가정하에) 임신부가 이렇게까지 싸돌아다녀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다녀. 왜냐고? 아이를 낳으면 네 몸은 만신창이가 될 거고,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거고, 무엇보다 ‘엄마’가 될 거거든.


엄마는 무얼 하든 어디를 가든 ‘아이’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단숨에 훌쩍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기와 뭔가를 할 때 나 하나만을 고려해 결정지을 수 있는 시기는 그것이 임신을 한 상태일지라도 출산 전까지만 이거든. 명심해. 배 속의 아기가 아무리 무겁다 해도 나오기 전까지가 네가 훌훌 날아오를 수 있는 시기야. 네가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빨리 낳아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모든 선배 엄마들이 ‘그래도 배 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은 거야.’ 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 먹고 싶을 때 먹고, 가고 싶을 때 가고,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는 자유가 얼마나 간편하고 특별한 권리인지를 알게 되는 사람은 엄마거든. 나도 엄마가 되기 전엔 몰랐어. 나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그 상태가 얼마나 간단하고 좋은 건지를.






네 뱃속의 점 같은 ‘배아’가 ‘태아’가 되고 손발이 만들어지고 골격이 완성되고 감각기관이 완전히 발달한다는 후기가 되면 이제 점점 다시 두려워질 거야. 살은 10kg 넘게 찌고 배는 극도로 무거워져 걷는 것도, 눕는 것도, 숨 쉬는 것까지도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지지. 손발은 퉁퉁 붓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호르몬 때문에 눈물도 나왔다 들어갔다 할 거야. 그리고 불룩 튀어나온 배를 내려다보며 자주 생각하게 돼. ‘아. 한 번만 엎드려 보고 싶다.’ 눕는 것도 아니고 엎드리는 게 이렇게 간절할 줄이야. 자면서 마음 편히 오른쪽 왼쪽 뒤척일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좋은 건지.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무언가를 잡지 않고 ‘아이고’ 소리를 내지 않고 그냥 일어날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부러운 건지. 움직이는 모든 순간순간이 버거울 거야.

또 이때쯤 슬슬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를 매일 밤 고민하게 될 거야. 산통은 얼마나 끔찍할지. 수술 후 고통은 얼마나 오래갈지. 아이를 얻게 될 기쁨만큼이나 네가 잃게 될 것들에 대한 생각이 점점 많아질 거야.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 아이를 낳고 예전의 삶으로 다시 잘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많아질 거야.


나는 네가 이 시기에 남편과 가능한 한 세세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 ‘우리 아이가 얼마나 예쁠까’와 같은 행복한 이야기보다 산후조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최대한 길고 오래, 엄마와 시어머니, 산후도우미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라도 도움받을 수 있는 정확한 방법에 대해. 남편과 함께 집안 살림과 육아와 바깥일을 어떻게 분담하고 나눌지에 대해. 들어가는 비용과 필요한 것들과 서로가 가진 생각과 기대에 대해 가감 없이 세밀하게 대화했으면 좋겠어. 어차피 배가 너무 무거워서 밤에 잠들기도 쉽지 않을 거야. 유튜브에서 ‘3시간 만에 무통 없이 자연 분만한 방법’ ‘리얼 제왕절개 후기’ 이런 거 보지 말고 남편과 수다를 떨어. 그것이 너와 태어날 아가와 너희 가족을 위한 가장 현명하고도 필요한 일이거든. 그리고 한 가지.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는 배 속의 아이가 정해. 네가 자연분만을 결심하면 아이는 뱃속에서 거꾸로 돌아누워 버려 수술을 하게 만들 수도, 네가 제왕절개를 결정하면 아이는 예상보다 일찍 세상을 보고 싶어 해 갑자기 나가겠다는 신호를 보낼 수도 있거든.

대자연 앞에 사람의 모든 결심은 생각보다 많이 무능하더라. 그 무능은 네 탓이 아니라 대자연의 결정이니 상심할 이유도 낙담할 필요도 없어.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들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듯, 갓 태어난 신생아 앞에서 몇십 년을 산 어른도 얼마나 무능력해지는지 또한 곧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기억해. ‘처음’ 앞에 무능력이란 없다는 걸. 시작에는 능력보다 용기가 필요해. 부모 앞에 좋고 나쁜 건 없어. 한 생명을 돌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거야. 너도 곧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야.



‘처음’ 앞에 무능력이란 없다는 걸. 시작에는 능력보다 용기가 필요해.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하... 또 얼마나 많은 서사가 펼쳐지는지. 아이가 생기니 결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육아를 하니 출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나도 뒤늦게 알게 됐어. 육아는 부모가 적어도 아이가 성인이 될 20년간 해내야 할 일이라 참 길고 긴 이야기가 될 거야. 그 이야기는 줄거리를 요약할 수도, 정갈하게 정돈할 수도 없을 거야. 얼마나 지난하겠니. 아주 기쁘고, 많이 힘들 거야. 그저 한 가지. 육아는 세상의 수많은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휘둘리는 일 같아. 너무 많은 방법과 기준과 말과 수단과 비교와 참견이 있거든. 그러니 내가 중심을 잡고, 주관을 기르고, 내 아이를 잘 키워야겠더라고. 나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당부가 많이 길어졌어. 긴 글을 썼지만 다 쓰지 못했어. 더 세세하고 다양하고 굴욕적이고 힘든 과정들이 아주 많아. 일일이 다 기록한다면 세계 문학 전집 수준이 될 거야.






임신 중인 10개월과 출산과 육아의 20년을 그 누가 다 말할 수 있을까. 먼 훗날 아이가 독립하고 내가 늙었을 때 ‘옛날 옛적에’ 하며 추억할 수 있을까. 그 기억은 노쇠한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될까. 일흔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까. 나도 그 긴 시간 동안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과정으로 길러진 아이 일 텐데. 나는 부모에게 무엇일지, 부모는 나에게 무엇인지. 그 대물림이란. 참 어려우면서도 진기한 일 같아.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해야 할 다짐에 대해 말하고 싶어. 내 미래가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얼마만큼 성장할지와 변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잘 지키는지에 달려있을 거야. 기억해. 아이를 지키는 게 아닌 우리를 어떻게 지키는지에 달려있다고 말했어. 아이를 돌봐야 하는 만큼 우리 자신도 관심 갖고 보살펴야 함을 잊지 말자. 자신보다 아이를 절대적으로 우선순위로 두며 살아가는 엄마들이 얼마나 지치는지 나는 많이 보았어. 엄마를 무조건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내는 이 사회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을 옥죄는지도. 엄마가 엄마라서 자꾸 우울해지지 않도록 우리 삶을 엄마로만 채우지 말자. 아이를 위한 육아서보다 나를 위한 누군가의 경험과 지혜의 글을 더 많이 읽자. 쉽지 않겠지만 아이에 밀려 엄마가 밀려나지 않기를. 이건 싸움이 아니니까 엄마가 아이 때문에 쫓기거나, 아이가 엄마 때문에 몰리거나 하지 않도록 우리 함께 다짐하자. 그런 다짐이 결국 우리를 더 좋은 엄마로 만들어 줄 거라 믿어.


네가 입덧을 하고 신 것이 당길 때마다, 내 아이가 똥을 싸고 칭얼댈 때마다 가슴속에 새기자. 임신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해도 너와 나는 한 여자, 한 사람, 결국 인간이라는 걸. 엄마도 자기의 삶을 위한 자격과 품격을 갖춘 존재라는 걸 영원히 기억하자.


긴 오지랖과 참견과 당부의 글을 적고 나니 이제야 진짜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해.



한 톨의 걱정과 염려 없이,

세상 모든 기쁨을 끌어모아,


너의 임신을 정말 정말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