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이 열일하면 생기는 일

세쌍둥이 아니 네쌍둥이가 될 수도 있다고요?

by 임희정




기다림을 기다리기로 하자 잠시 덜 슬펐습니다.

‘나는 내가 버리지 못한 유일한 문장이다’ -이훤





인공수정 날이 돌아왔다. 남편은 아침 일찍 정액 채취실에서 일본어를 들으며 열심히 정액을 채취했고, 그동안 나는 자궁 초음파를 보며 난포 상태를 확인했다. 난포를 키우는 주사를 용감히 스스로 놓았으니 당연히 배란이 잘 되어 있겠지 생각은 했는데...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포가 10개 넘게 자랐네요.”


정상 배란의 경우 한 달에 한 개의 난포에서 하나의 난자가 배란되는 것인데 너무 많은 것이다. 아. 셀프 주사를 너무 한 방에 완벽하게 놓았나. 배란유도제 약의 효험은 또 왜 이리 좋은 건가. 안 그래도 뭐든 열일하는 성격인데 자궁까지 열일했네.


문제는 이 상태에서 인공수정을 할 경우 다태아 임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태아라면 쌍둥이뿐만 아니라 그 이상도 포함되는 거다. 즉 세쌍둥이 혹은 네쌍둥이, 다섯 쌍둥이까지도 임신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만약 다태아 임신이 됐을 때, 예를 들어 네 쌍둥이인데 넷 모두를 품을 상태가 되지 못하는 경우 선택유산을 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등 태아도 아닌 배아 상태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진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는 개인의 신념 상 그 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필요할 경우 다른 병원으로 안내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물론 임신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된다면 무조건 다태아 임신이 되는 것은 아니나, 지금의 난포 상태로는 가능성이 크니 모든 것을 고려해 남편과 잘 상의해서 인공수정 진행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했다.

어려웠다. 내 뱃속에 정확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여러 가능성이 있었다. 경우의 수는 많은데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오는 건 선택 장애다. 이럴 땐 누구라도 대신 선택해 줬으면 싶다. 임신하려고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는데 그 임신이 셋, 넷, 다섯 쌍둥이 일 줄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쌍둥이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 순간 삼신할미를 만나러 갈 수도 없는 일이고, 만난다 해도 세 신령도 모를 나의 난자와 남편 정자의 앞날을 어찌할 것인가. 선택은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될 우리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우리 뒤로 진료를 기다리는 부부들이 많았다. 남편과 나는 신중하지만 빠르게 결정을 해야 했다. 과연 그것은 가능한가. ‘신중’은 아주 조심스럽게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게 아니던가.



남편은 신중하게 말했다.

“무조건 자기 생각을 따를게.”


나는 빠르게 답했다.

“1%라도 있을 선택유산 가능성이 싫어.”


결론은 간단했다.

“하지 말자.”


우리는 선생님께 말했다.



안 합니다!




‘신중하지만 빠르게’는 가능했다.




"안 합니다!!!" ⓒ유퀴즈온더블럭 샤넬미용실편




그날 결국 남편의 정자는 나의 난자를 인공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에게 임신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조금 늦어지더라도 고민과 걱정 없이 기쁜 마음으로 아기를 만나기를 바랐다. 우리는 이번 달 달력을 잘 넘기자고 했다. 그렇게 ‘안 합니다’를 외치고 나오려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다음 달에 인공수정을 할 예정이긴 한데, 그래도 3일 전에 내준 숙제를 하셨으니 자연임신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까 2주 후에 임신테스트기 해 보시고요. 그 사이 자연임신이 됐다면 잘 착상될 수 있게 도와주는 질정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질 안에 넣는 약이에요.”


윽. 주사에 이어 이제는 셀프로 약을 넣어야 하는구나. 아. 선생님 왜 자꾸 스스로 뭘 하라고 하십니까. 스스로 못해서 병원에 온 건데 미워요. ‘혹시’ 때문에 일주일 동안 질 안에 약을 넣어야 하다니. 먹고 붙이고 찌르고 넣고. 새삼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약의 종류는 참 많구나 싶었다. 그렇게 인공수정을 하지 못한 채 약국에서 질정제 일주일 치를 사 집으로 와야 했다.






하루, 이틀, 삼 일이 지나고 나는 질정제를 넣지 않았다. 뭐랄까. 그냥 임신이 아닐 것 같았다. 직감이 그랬다. 산부인과를 석 달 다니면서 매달 숙제를 열심히 해가도 임신은 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결과가 자꾸만 늦어지면 원인을 탓하게 되니까. 의사 선생님의 ‘그래도’라는 전제에 마냥 기대를 걸 수 없었다. ‘혹시’는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약에 있는 일이니, 그러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남은 질정제 4개가 화장실 거울 안쪽 서랍에 놓였고,

2주의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