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내가 엄마가 되었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n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이게 현실인가? 아니면 단지 환상인가?
산사태에 갇힌 듯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네)
- ‘Bohemian Rhapsody’ -Queen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잘도 흐르고, 자나 깨나 그것만 기다린다면 시간은 죽어라 안 간다. 출근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 오는데, 출근해서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있으면 죽어라 시간이 안 가는 것과 같다. 다른 대부분의 것들도 그렇다. 그래서 무언가를 빨리 만나고 싶다면 쉽지 않지만 기다리지 않아야 한다. 잊고 살아라. 어느새 코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지난 2주가 그랬다. 과배란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인공수정을 쿨하게 잊고 지냈다. 일하고, 밥 먹고 라면 먹고, 커피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쉬고 숨도 쉬고, 자고 일어나고, 그랬더니 주말이 코앞에 왔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 되자 갑자기 문득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 모르니까 2주 후에 임신테스트기 해 보세요요요요요요.’
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음성메시지를 보냈나? 왜 갑자기 불현듯 생각 나는 거지?
마음이 찜찜했다. ‘설마 임신이겠어?’ 그때의 나는 테스트기를 사러 갈 확신은 없고, 테스트기를 하지 않을 소신도 없었다. 결국 예전에 화장실 수납장 한쪽에 몇 번 쓰고 넣어두었던 배란 테스트기를 꺼냈다. 언젠가 임신이 되면 배란 테스트기로 테스트를 해도 두 줄이 나온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종이컵을 들고 화장실에 가 소변을 받았다. 5초 동안 담그고 평평한 곳에 놓은 뒤 10분 후에 판독하면 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다. 10분이 죽어라 안 갔다. 기다리지 말아야지. 찬물 한 컵을 마셨다. 5초가 지났다. 손을 씻었다. 15초가 지났다. 안 되겠다. 노래 한 곡을 듣자. 3분 20초가 지났다. 엇. 아직도 5분이나 넘게 남았네. 노래 한 곡이 원래 이렇게 짧았었나. 아. 6분이 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을걸! 그냥 기다리자. 정정한다. 무언가를 만나고 싶다면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라. 지루하고 초조하겠지만 언젠가 다가와 있을 것이다.
속 터지는 10분이 지났다. 확인하러 화장실에 갔다. 어디 보자. 잠깐. 이것은 두 줄 인가 아닌가. 한 줄은 선명하고 진했지만 한 줄은 아주 아주 아주 희미하고 흐렸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인가. 안 보이는 것인가. 헷갈렸다. 매직아이가 시작됐다. 눈동자 한쪽이 자꾸만 쏠렸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자. 머리를 흔들고 눈을 깜빡였다.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임신이라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한 줄이 참 애매했다. 안 되겠다. 임신테스트기를 사러 가야겠다. 그제야 집을 나섰다.
남편은 집에 없었다. 일요일이었지만 일이 있었고 저녁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아닐지도 모를 일에 괜히 설레발 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국에 가 초기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얼리 체크’ 임신테스트기를 두 개 사 왔다. 임신. 그것은 되어도 안 되어도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이 필요한 일 같았다.
상자 겉면에는 ‘5분 이내 신속한 확인’이라 적혀있었다. 6분이 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다 듣기도 전에 확인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며 노래를 틀었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이게 현실인가? 아니면 단지 환상인가?)
아니 이렇게까지 내 상황과 딱 맞을 줄이야. 노래 시간도 가사도 기가 막힌 선곡이었다. 가사처럼 현실이어도 환상이어도 나는 마마! 하고 엄마를 찾게 될 것만 같았다.
Mama Woo~
두 눈으로 테스트기를 확인했을 때 마침 노래의 이 부분이 흐르고 있었다. 마마! 우우우~ 선명하고 또렷한 두 줄이었다. 임신이었다!
Mama mia mama mia Let me go~
노래는 여전히 흐르고. 나는 잠깐 넋이 빠져있었다. 맘마미아! 맘마미아! 어머나. 맙소사. 어이쿠야. 임신이라니! 정신을 차리고 하나 남은 테스트기로 한 번 더 확인해 보았다. 또 선명하게 두 줄이었다. 나는 정말 임신이 되었다. 엄마야! 내가 엄마가 되었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뭐랄까 그 상황에 맞는 기분이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임신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임신한 나는 처음이니까. 이런 기분이 처음이라서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기쁜 것 같으면서도 희한하고 이상했다.
빨간 두 줄이 그어진 테스트기 두 개를 화장대 서랍에 깊숙이 넣고 똑같은 일요일 오후를 보내려 애썼다. 일을 마치고 남편이 왔고, 저녁을 먹었고, 씻고, 누웠다. 배 위에 손을 얹어보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확인과 명확한 확신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내일 병원에서 확인 한 후로 미뤘다.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것도, 내 배를 한 번 쓰다듬어 보는 것도, 그리고 태명을 지어보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을 땐 미루는 게 최고 아닌가. 사실 내일도 내일 모래로 미루고 싶었다. 그만큼 임신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테스트기의 두 줄은 너무나 선명했고 보헤미안 랩소디는 끝났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임신은 나에게 비현실적이게도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