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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an 02. 2019

부모님의 제주도 여행코스

호강하는 딸내미

        

나는 직장 때문에 제주에서 3년 가까이를 살았다. 제주로 이사한 그 해 여름, 엄마는 63년 만에 아빠는 67년 만에 제주도를 처음 와 봤다. 결혼식이 없었으니 신혼여행도 없었던 엄마와 아빠는 그 흔한 제주도 여행을 하는데 60년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자식이 제주에 사니까 그제야 비행기를 타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남미 여행도, 유럽여행도, 오지탐험도 아닌데 참 오래 걸렸다. 딸 나면 비행기 탄다더니 그럼 난 아들인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쨌든 태워드렸다.     




다행히 아빠는 젊었을 시절 비행기를 타봤던 경험이 있었고 그 한 번의 경험은 나에게도 작은 안도감이 되었다. 아빠라도 없었다면 엄마는 혼자 비행기를 탈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는 안 해 본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래서 뭘 혼자 해볼 엄두를 못 낸다.      


그렇게 부모님이 제주공항에 오셨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걸. 주말 1박 2일 머물다 가실 건데 아빠 손에 짐 가방이 한가득이다. 무슨 짐을 저렇게 바리바리 싸왔나 속으로 의아했다. 어쨌든 나는 60년 넘어 해 드리는 효도관광에 의욕도 넘쳤고 효심도 충만했다. 성산일출봉? 천지연폭포? 주상절리? 아니 아니 맛있는 횟집부터 모시고 가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자꾸만 집부터 가자고 하신다.     


“빨리 집에 가자! 집부터 가! 얼른!”     


효도관광 의욕은 나만 넘쳤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엄마는 아빠의 묵직한 가방을 열더니 주섬주섬 하나둘 뭔가를 꺼내신다. 짐 가방 안에는 배추김치, 파김치, 멸치볶음, 오이지까지 최대한 길고 오래 두어도 괜찮을 반찬과 김치가 끊임없이 나왔다.     


“이게 다 뭐야? 그게 다 반찬이었어?”     


반찬을 다 꺼내고 나니, 김치 냄새가 밴 옷 두 벌과 칫솔 두 개가 남았다.


그렇게 엄마의 제주도 첫 번째 여행코스는 딸 집의 냉장고 방문이었고, 아빠의 첫 번째 임무는 창문 단속이었다. 엄마는 자기의 반찬이 오래오래 딸의 냉장고에 담겨있길 바랐고, 아빠는 최대한 많이 그 반찬을 담아 서울에서 제주까지 날라다 주길 바랐을 것이다. 온통 반찬으로 채워져 있던 짐가방을 보며 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냉장고를 채우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제주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차에 태우고, 산도 바다도 숲도 보여 드렸다. 엄마와 아빠는 산을 볼 때도, 바다를 볼 때도, 숲을 볼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우리 딸 덕분에 호강하네!”     


나는 그런 부모님께 비싼 회도, 고기도, 다 사드리고 싶었다.

엄마 아빠 손을 꼭 잡고 숲을 한창 걷고 있는데, 엄마는 갑자기 눈앞의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다.     


“엄마 뭐 하는 거야?”

“아이고 고사리가 지천이네. 이거 넣고 육개장 끓여 먹으면 맛있겠다!”     


결국 제주에 오신 부모님께 모든 걸 사드릴 준비가 돼 있는 딸내미는 저녁 메뉴로 엄마가 꺾은 고사리가 담긴 육개장을 먹었다.      




짧은 이틀의 시간 동안 엄마는 제주까지 와서 시장을 가고, 장을 보고, 국을 끓였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아빠는 서울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나에게 지갑 안쪽 깊숙이 넣어두었던 오만 원을 꺼내 기어코 손에 쥐어주었다.     


엄마는 어디에서든 딸에게 자기 손으로 밥을 해 먹어야 본인의 소임을 다했다 생각하고, 아빠는 어디에서든 돈을 벌어야 본인의 임무를 다했다 생각하시는 듯했다.     


부모님이 올라가시고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 가보니 가져온 치약을 놓고 가셨다.     


“아빠! 치약 가지고 왔던 거 깜빡 놓고 갔네? 그러게 내가 칫솔만 가져오랬잖아!”

“너 쓰라고. 치약도 살라믄 다 돈이야...”     


부모의 사랑은 쓰다 남은 치약까지 닿는다. 꾹꾹 눌러 끝까지 짜서 써야지.


전화를 끊고, 제주까지 와서 호강하는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라고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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