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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Jan 04. 2019

서른셋 이기적인 딸

엄마 아빠의 마음은 많이 따가웠을까?

5년 동안의 타지 생활을 접고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되었다. 그때 나의 나이는 서른셋. 다 커버린 딸이 부모가 필요했다기보다는 늙어버린 부모가 자식이 필요했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 직장 때문에 지방에서 혼자 살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서울에 올라와야 했을 때, 집에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건 엄마와 아빠였다. 부모님은 내가 필요했다. 환갑을 지나고 일흔을 넘기며 몸은 쇠잔해지고, 자꾸만 놓치는 일상의 것들은 늘어나고, 무엇보다 허한 마음들을 막내딸인 나라도 채워주길 바라셨을 것이다.

    



나는 독립을 하고 혼자 살며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집안일도 모두 내가 해야 했지만 홀가분했다. 행복했고, 내 마음대로 살았다. 하고 싶은 것들과 내 능력의 일들을 모두 누리며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를 눈 감아야 내가 살 수 있었다. 내가 챙겨야 할 집안일들과 내가 돌봐야 할 부모를 제쳐 두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밥보다 내 마음이 더 중요해진 이기적인 딸이다.     


지방에 살며 한 달에 한두 번 본가로 올라와 아빠와 엄마를 마주 할 때면 나는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휴대폰, 티브이, 전화기, 집안의 각종 전자기기들은 설정이 다 뒤죽박죽 되어있었고, 여기저기서 날아온 고지서는 잔뜩 쌓여있었다. 내가 집에 오면 엄마는 그 종이들을 내 앞에 내밀었고, 아빠는 비행기 모드가 눌려 전화가 걸리지 않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대기모드로 전환된 티브이는 켜있어도 깜깜했다. 부모님의 눈에는 그저 다 고장 난 것들이었다. 하나하나 설정을 바꾸고 내야 할 세금과 신청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나면, 나는 엄마 아빠가 있는 그 집을 나가 내가 혼자 사는 원룸으로 다시 돌아가고 만 싶었다. 왜 나의 부모는 할 줄 아는 게 없는지... 뭉개져 비뚤어진 마음을 움켜쥐고 원망하며 한숨만 쉬다 잠이 들었다. 나는 부모가 많이 버거웠다.    

  

그러니 나는 혼자 사는 게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내가 사는 원룸에는 챙겨야 할 고지서도 설정이 뒤죽박죽인 가전제품도 없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고만 싶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기 시작한 건 내가 한글을 떼고 나서부터였다.     


다 커버린 서른셋의 나는 고민스러웠다. 답답한 부모를 맞대고 살아야 할 날들은 생각만으로도 무거웠다. 하지만 모아둔 돈이 녹록지 않았고, 무엇보다 더 이상 타지 생활이 아닌 같은 서울 아래 살면서 노쇠한 엄마와 아빠를 제쳐둘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의 밥은 여전히 따뜻했고 아빠의 일은 예전과 다르게 뜸해졌다. 집안의 가전제품들은 더 이상 설정이 바뀌지 않았고 고지서도 밀리지 않았다. 한 달에 한두 번 몰아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 같았던 그 일들은 이제 매일매일 내가 챙기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한숨 쉬며 잠들지 않았다. 매일같이 반복하니 무뎌졌다. 그동안 엄마와 아빠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많이 뾰족했었다. 자꾸만 부딪히니 뾰족했던 마음도 닳고 닳아 무뎌졌다.     



 

그때의 엄마는 나에게 많이 미안해했고, 그때의 아빠는 나에게 자주 무안해했다.

딸에게 고지서를 내밀며, 휴대폰을 보여주며, 미안하고 무안했을 엄마와 아빠. 고지서의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태와 자꾸만 사소한 것들을 부탁해야 하는 아빠의 마음은 참 슬픈 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결혼을 해 더 이상 부모와 같이 살지 않는다. 사실 평생을 같이 살 것도 아니었는데, 그깟 종이 하나 기계 하나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참 날카로웠다. 엄마와 아빠는 딸과 함께 살며 얼마나 따가우셨을까.


서른세 살의 나는 바늘 같은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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