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엄마. 희정엄마.
오랜만에 엄마집에 갔다. 20년을 넘게 나도 살았던 집이고 아직도 내방이 그대로 있지만 결혼을 한 후로 그 집은 ‘엄마집’ 이라고 부르게 됐다. 아빠가 들으시면 좀 서운해하시려나. 아무튼 집에 가니 엄마는 먹을게 마땅치 않다며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오면 냉장고가 아무리 채워져 있어도 항상 먹을 게 없다고 했다.
엄마손을 잡고 장을 보러 갔다. 과일가게에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가 엄마를 반기신다.
“희정엄마 왔네? 오늘은 딸기가 엄청 좋은데”
“우리 딸이랑 왔잖아~”
'딸기'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딸' 얘기를 한다.
딸기 한 소쿠리를 사고 시금치를 사서 좀 무쳐먹어야겠다는 엄마를 따라 이번에는 야채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고! 희정엄마 왔어?"
여기에서도 역시나 엄마를 반기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딸 시금치 무쳐 줄라고. 오천 원어치만 줘!”
'인사'를 했는데 엄마는 '본론'부터 꺼낸다.
그렇게 한 손에는 딸기를 다른 한 손에는 시금치를 받아 들고 집으로 향한다. 모두 다 내가 먹을 것들이다.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가 엄마를 반기신다.
"어이! 희정엄마 어디가? 뭐 맛있는 거 사와?"
"우리 딸 왔잖아. 과일도 사고 나물도 샀지~"
엄마는 조금 신나 보였다.
과일가게에서도 야채가게에서도 어딜 가나 엄마는 "희정엄마"로 불렸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는 내내 내 이름은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불렸다. 누구나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희정엄마’라 반겼고, 그렇게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이름은 항상 불려졌다. 우리 엄만 ‘희정엄마’였다.
희정엄마는 희정이를 위해 딸기를 씻어 내어 주고 딸내미가 그 딸기를 맛있게 베어 먹는 동안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시금치를 무쳐낸다. 나는 딸기를 채 넘기지 못했는데 시금치 간을 보라며 보채는 희정엄마 덕에 딸기와 시금치를 함께 씹어 삼킨다. 딸기맛 시금치라니. 달달하고 고소한 엄마 손맛이 입안 가득 밀려온다.
희정엄마. 내 이름은 그렇게 우리 동네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불려지고, 우리 엄마는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들로부터 딸내미의 이름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동네에서 내 이름이 이렇게나 많이 불려지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엄마가 길을 나서면, 장을 보러 가고 어딘가를 들를 때면, 여기저기서 ‘희정엄마!’ 소리가 들리겠지?
희정엄마!
희정엄마!
어느새 내 이름은 엄마였고, 엄마의 이름은 내 이름이 되어 그렇게 불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