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 엄마와의 통화.
나는 5년 가까이 뉴스 앵커로 일을 하며 밤 9시 넘어 퇴근을 했고, 항상 저녁 시간대에 일이 몰려있어 저녁밥을 먹지 못했다. 타지에서 혼자 살며 매일 밤늦게 퇴근을 하고 저녁도 챙겨 먹지 못하는 그 하루를 차마 부모님께 자세히 말할 수는 없었다. 항상 구내식당에서, 밖에서, 저녁을 배불리 먹는다 거짓말을 하곤 했다.
내가 배가 불러야 엄마가 걱정을 안 한다.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해야 아빠가 안심을 한다.
저녁 9시 퇴근을 한다. 깜깜한 밤이 오늘 하루의 수고를 덮어준다. 차에 타면 제일 먼저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항상 엄마가 받는다. 아빠는 매일, 밤을 보지 못하고 일찍 주무시기 때문에 그 시간의 아빠 전화기는 항상 엄마가 받는다. 아빠는 밤이 오기 전에 피곤이 먼저와 항상 밤을 보지 못하고 잠이 든다.
엄마가 받을 걸 알지만 나는 항상 일부러 아빠 전화기로 전화를 건다. 뭐랄까 그래야만 엄마 아빠와 함께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내 휴대폰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엄마로부터 끊어진다.
사실 5년 동안 매일매일이 단어 하나 바뀌지 않는 똑같은 통화였다.
“밥 먹었냐. 춥냐. 잘 자라.”
“네. 밥 먹었어요. 안 추워요. 안녕히 주무세요.”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이 세 마디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주고받으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짧은 세 마디의 대화 중, 두 마디는 틀리고 한마디는 맞는 말 이었다.
‘엄마. 난 사실 일 때문에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밥을 아직 못 먹었어요. 혼자 사는 원룸은 항상 들어갈때 마다 썰렁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계절이 바뀌면 ‘춥냐’라는 말은 ‘안 덥냐’로 바뀔 뿐, 밥과 날씨와 잠을 묻는 그 세 마디는 5년 내내 반복됐다. 엄마는 매일 나의 대답을 들어야 하루가 끝이 났고, 나 역시 통화가 끝나야 내 하루가 끝이 났다.
사실 엄마가 하고 싶은 말과 묻고 싶은 질문들이야 얼마나 많았을까. 피곤에 지쳐 겨우 대답하는 딸의 목소리를 붙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서로의 기별을 짧은 통화로 확인할 뿐이다. 늦은 밤 안부 전화는 딸에게도 엄마에게도 서로가 받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확실한 안심이었다.
나의 하루의 끝은 매일 거짓말 두 마디와 많은 안부의 말들이 생략된 인사 한마디로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