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엄마의 삶
엄마가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하는 일은 내가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을 하는 일과 비슷하다. 거의 없다. 어느 날 이모 딸의 돌잔치가 있어 엄마는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화장대 앞에 앉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엄마는 화장대 거울 앞에서 한동안 망설이고 있었다.
화장대는 있지만 화장품은 없는 엄마. 화장대 위에는 스킨과 로션, 흰머리 염색약과 염색약을 사며 받아온 샘플들이 전부였다. 그리고 내가 언제 사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파운데이션 하나가 기초화장품을 제외한 유일한 화장품이었다. 엄마는 스킨로션을 바른 후 다음 화장품을 바르지 못하고 거울만 쳐다보고 계셨다. 그러더니 천천히 주름진 무딘 손으로 서투르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딸내미를 부른다.
"희정아! 이리 와바라."
"응 엄마 왜?"
"... 이제 뭐 발라야 되냐?"
엄마는 고를 화장품도 없는 텅 빈 화장대 앞에서 망설이고 계셨다. 나도 한참을 망설이다 내 가방 속에 있던 빨간 립스틱 하나를 꺼내왔다.
"엄마! 내 거 립스틱 발라줄게!"
딸내미 앞에서 어린애 마냥 입술을 쭉 내민 엄마는 그렇게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계셨다. 그 위로 나는 엄마의 입술을 따라 나의 빨간 립스틱을 발라드렸다.
"됐냐? 괜찮냐?"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푸석푸석한 피부, 주름과 기미가 가득한 엄마의 얼굴은 더 이상 파운데이션으로도 가려지지 않았고 빨간 립스틱으로도 살아나지 않았다. 생김새보다 시간의 흔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예쁘고 못 생기고를 떠나 일흔을 바라보는 늙어버린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엄마의 고된 삶이 얼굴에 생채기를 남겼다. 울컥 회한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엄마의 얼굴을 코앞에서 바라보는 일은 순식간에 가련해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 감정들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응! 우리 엄마 화장하니까 너무 예쁘다!"
그 말 한마디에 환하게 웃어 보이며 비로소 엄마는 오랜만에 여자가 됐다.
"엄마! 평소에도 립스틱도 좀 바르고 화장도 좀 해! 하니까 너무 예쁘잖아!"
나는 평소 목소리보다 두 톤 올려, 일부러 반복해서, 예쁘다는 말로 엄마의 얼굴을 위로한다. 엄마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 엄마의 화장은 딸내미의 빨간 립스틱과 예쁘다는 소리에 피어난 환한 미소로 완성이 됐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또각 소리 나는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하셨다.
엄마가 나간 후 엄마의 화장대를 찬찬히 본다. 색조화장품 하나 없는 엄마의 화장대. 무채색 엄마의 나날들이 화장대를 닮았다. 오늘은 집에 오는 길에 빨간 립스틱도 하나 사고, 알록달록 반짝이가 들어간 아이섀도도 색색별로 사고, 주름개선 기능성이 있는 크림도 하나 사 와야겠다. 이제라도 엄마가 조금이나마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가리고 여자가 될 수 있도록 화장대 위에 놔 드려야겠다. 나는 매일 아침 더 이상 놓을 자리도 없는 화장품이 빽빽한 화장대 앞에서 아이크림까지 챙겨 바르며 열심히 얼굴에 화장을 하는데 텅 비어있는 엄마의 화장대 채워드릴 생각은 미처 못했다.
엄마의 삶을 진작에 알록달록 칠해 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