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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pr 12. 2019

‘그냥’ 있어. ‘그냥’ 살아.

엄마는 왜 맨날 ‘그냥’일까.

엄마는 요즘 부쩍 아침에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늘었다. 한창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대화의 시작은 항상 날씨. “안 추워??” 묻는 말 아니면 ‘날씨가 좀 풀린 거 같으네...’ 혼잣말로 시작한다.  


“응. 엄마 뭐해?”

“공원에 혼자 앉아있어.”     


전화기 넘어 엄마가 보인다. 집 앞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심심해서. 엄마는 심심해서 집을 나와 걸었고, 갈 곳이 없어 집 앞 공원을 갔다. 조금 걷다가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았고, 얘기할 사람도 무언가를 할 일도 없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엄마에게 뭐하냐 물으면 혼자 집에 있다고, 혼자 공원에 있다고, 혼자 집 앞에 나왔다고 자주 말하는 엄마. 나는 엄마의 혼자가 슬프다. 엄마는 그것이 심심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도 모른 채, ‘그냥’ 혼자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혼자는 항상 이었으니까. 새벽 일찍 아빠가 출근하고 혼자. 딸을 학교 보내고 혼자. 딸이 출근하고 혼자. 딸이 독립을 해서 혼자. 그 딸이 시집을 간 후 혼자.      


사실 나는 엄마가 혼자인 것보다 엄마가 혼자여서 심심한 것이 마음 쓰인다. 심심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딸에게 전화 해 날씨 얘기를 하는 것이라 마음 아프다. 나는 엄마의 심심한 혼자가 슬프다.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 뭐해?”

“그냥 있지 뭐해.”     


엄마는 왜 맨날 그냥 있는 걸까. 나는 집에 있으면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컴퓨터도 하고, 맥주도 한잔하는데, 엄마는 왜 맨날 ‘그냥’ 있을까. 그냥 있다 쌀을 씻고, 그냥 있다 찌개를 끓이고, 그냥 있다 설거지를 하고, 그냥 있다 잠이 드는 엄마. 엄마는 그냥 있을 때 뭘 할까? 아니 뭘 하지 않으니까 그냥 있다고 하는 거겠지? 그럼 엄마는 왜 맨날 그냥 일까. 내가 엄마의 ‘그냥’을 묻는 것도 그냥 묻는 것처럼, 엄마도 그냥 있는 거겠지.


그런데 나는 엄마의 '그냥'이 슬프다.     


나에게 ‘그냥’이라는 단어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진짜 말로 하기에는 조금 머쓱할 때 쓰는 표현이었다. 오랜 친구에게 문득 생각이 나 보고 싶어 전화를 해도 그 말을 하는 게 간지러워 그냥 전화했다 얘기하고, 아빠가 좋아할 것 같아 먹을 걸 사들고 집에 와도 불쑥 건네는 마음이 부끄러워 그냥 사 왔다 얘기한 적이 있었다. 머쓱해서, 쑥스러워서, 핑계 삼아 ‘그냥’이라 했다. 그렇다면 엄마의 그냥도 뭔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망설여져 대신하는 표현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잦은 그냥이다.   




‘혼자’ ‘그냥’ 있는 엄마. 단 한 번도 바쁘니까, 어딜 가야 하니까, 누굴 만나야 하니까 전화를 끊자고 얘기해 본 적 없는 엄마. 통화의 마지막에도 내가 “엄마 끊어요!” 하면 “그래.” “네” 대답을 하면 또 “그래.” 끝까지 한번 더 대답을 하는 엄마. 그렇게라도 몇 초 더 통화하고 싶으신 걸까. 아니면 평생 자식의 마지막을 살폈던 습관이 남아있어 그러는 걸까. 어디냐 물으면 집, 아니면 집 앞 공원, 그리고 시장이 전부인 엄마. 엄마는 사는 게 어떨까? 재미있을까? 재미없을까? 심심할까? 그냥 사는 것일까? 엄마를 생각하면 수많은 물음표만 자꾸 생긴다.      


엄마에게 물어본다.     


“엄마는 무슨 낙으로 살아?”

“뭘 낙으로 살아! 그냥 사는 거지.”     


또 그냥이라 답하는 엄마. 엄마는 정말 그냥 있고, 그냥 걷고, 그냥 사는 것 같다. ‘그냥’이라는 단어 뜻처럼, 그런 모양으로 줄곧 살고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의미 없이 산다는 뜻일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나는 그냥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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