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안해하며 지하철 타지 않아도 돼
엄마의 삶의 범위는 집과 동네 그리고 집 근처 시장 반경 1km 남짓. 참 좁게도 살았다. 생을 통틀어 서도 차 탈일은 거의 없었고 배경이 바뀌는 일도 많지 않았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횟수. 엄마는 1km가 넘는 일상의 범위를 벗어나야 할 때면 바짝 긴장했고 불안해했다.
이모들은 쌍문동에 살았다. 우리 집은 광명. 가끔 경조사나 이모들이 놀러 오라고 전화를 하면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광명에서 쌍문동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갔다. 집에서 1호선 개봉역까지 버스를 타고 개봉역에서 서울역까지, 다시 서울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쌍문역에서 내리는 코스. 그냥 버스를 탄 후 지하철 한 번만 갈아타면 될 일이지만 엄마에게는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여정이었다.
더군다나 어린 딸이 엄마 손에 의지한 채 종종 따라오고 있다. 엄마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땀이 날 정도로 내 손을 꼭 잡고 다니셨는데 어린 딸을 잘 챙겨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엄마는 내 고사리 손이라도 잡고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엄마와 나는 서로의 손을 꽉 잡고 길은 잃어도 서로는 잃지 않도록 단단히 맞잡은 채 버스와 지하철을 오르내렸다.
버스 노선도와 지하철 노선표, 엄마의 눈에는 모두 익숙지 않은 지도다. 글자를 정확하게 잘 읽지 못하고 방향의 개념도 없어서 그저 자기의 눈앞에 서는 차를 붙잡고 기사님께 물어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볼 뿐이었다.
“개봉역 가요?”
버스를 탄다.
“서울역 가요?”
지하철을 탄다.
“쌍문역 갈라믄 어디로 가야 돼요?”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가 어딘가를 가야 하는 일은 물음표가 따라붙는 일이다. 그 물음표는 횟수가 반복된다고 줄어들지는 않았다. 익숙함은 주기가 짧아야 가능해지는 일. 엄마의 외출은 너무 듬성듬성 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쌍문역에 내려 이모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한 번의 불안과 용기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딸의 손을 꼭 잡고 길을 나선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계속 두리번거리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손을 붙들고 있는 어린 나를 보고 자리를 잘 내어주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앉히고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물음표를 꺼냈다. 엄마는 평발이라 조금만 걸어도 아파했는데 빈자리는 항상 내가 앉았다.
가장 큰 문제는 신도림행 열차였다. 서울역에서 1호선을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인천까지 가는 열차가 엄마 앞에 서 주면 다행이었는데, 가끔 신도림행 열차가 설 때면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문이 열리니 몸을 실었다. 우리 집은 신도림역에서도 세 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데 엄마는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종점인 신도림역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열차 안에 불이 꺼지면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나를 앉고 허겁지겁 내렸다. 사람들을 붙잡고 개봉역을 가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다시 또 한 번의 열차를 기다린다.
“엄마! 집에 언제가?”
어린 나는 엄마를 보챈다. 안 그래도 불안한 엄마의 마음이 요동쳤을 것이다. 열차가 온다. 재촉하는 딸의 말 한마디에 행선지도 보지 않고 문이 열리니 이내 몸을 싣는다. 그런데 신도림역에서 세 정거장이면 도착할 목적지인데 한참이 지나도 개봉역은 보이질 않는다. 엄마는 초조하지만 방법이 없으니 마냥 ‘이번 역은 개봉역입니다.’라는 방송을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10분 20분 30분... 개봉역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자주 신도림역에서 인천방향이 아닌 수원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잘못 타곤 했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지하철 의자에 앉아 1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어린 나도 너무 오래 걸리는 시간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저 엄마의 무릎에 의지한 채 끔뻑 끔뻑 졸며 기다렸다. 어린 딸을 무릎 위에 눕히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목적지를 보며 엄만 얼마나 불안했을까. 엄마는 그저 기다리면 개봉역이 나오는 줄 알았다.
“이거... 개봉역 안 가요?”
“안 가요. 잘못 타셨네. 내리셔서 반대 방향 꺼 타세요.”
“아이고매! 큰일 났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항상 1시간 거리는 2시간이 되어 겨우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의 배경은 도통 바뀌는 일이 없어 삶의 범위 그 1km를 벗어날 때면 엄마는 외딴곳에 떨어진 아이처럼 모든 것을 낯설어했다. 나는 종종 그때의 엄마의 초초했던 표정과 지벅거렸던 발걸음이 생각난다. 엄마의 목적지가 없었던 수원 방향 1호선 열차 안에서 멍하니 개봉역 방송만을 기다렸던 그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어렸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고 무언가 잘 못 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는 절대 엄마 혼자 지하철을 타게 하지 않는다. 주름진 엄마의 손을 땀이 날 정도로 꼭 잡고 모시고 다녔다. 내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종종 잘도 따라온다. 다행히도 내가 모시고 엄마와 함께 타는 지하철은 가는 방향 속에 목적지가 있고, 1시간 거리는 1시간 만에 잘 도착할 수가 있다. 자리가 나면 엄마를 앉히고 안내방송 대신 내 목소리를 듣고 엄마는 일어난다.
“엄마! 이제 내리자.”
내 손을 꼭 잡은 엄마는 이제 아무리 먼 곳을 간다고 해도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