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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Mar 15. 2019

삶의 여유

내 생의 가장 큰 여유 부리기, 글쓰기

또래보다 이런저런 삶의 경험도 많고, 걱정은 더 많고, 고뇌는 완전 많은 나는 웬만한 것들이 시시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별 것 아니었고, 지인들의 고민과 친구들의 애씀은 다 나보다 덜해 보였다. 돈, 살아감을 주제로 벌려놓은 생의 놀이터 안에서 나는 시소도 미끄럼틀도 가장 열심히 탔다. 올라가고 내려가고 참 많이도 미끄러지며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유유자적 그네 타고 모래 놀이하며 성을 쌓는 친구들이 미미했다. 그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지만 존중하지도 않았다. 나는 일찍이 애늙은이가 되었다.     


여유가 없던 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형편을 잘 읽었다.      


“어제 아빠 차 타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엄마 생일이라 가족 식사했거든.”     


‘이 친구 아버지는 차도 있고 가족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이구나.’   

  

단어와 표현에서 친구들의 배경을 눈치챘다. “몇 학번 이세요?” 대학을 다니지 않은 사람에게 이 질문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나에게 결핍된 것들은 더 도드라져 귀에 꽂히고 가슴에 새겨진다.   

   

출근길에 아빠가 태워다 줬다는 친구들의 말, 휴가로 가족여행을 떠난 다는 지인의 말, 엄마 아빠와 카톡으로 대화한다는 동생들의 말. 그 속에 우리 엄마 아빠는 없었다. 이래저래 없는 게 많았던 나는, 나보다 많은 걸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격지심도 부러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그런 대화들 속에 처음에는 나도 있는 척을 했다가,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가, 결국에는 입을 닫았다. 나는 점점 생각이 못생겨졌다. 티브이 속에서 이순재 할아버지가 “못난 놈...” 하면 내가 돌아보았다.     




나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큰 사춘기는 없었는데 나 스스로에게 저항하는 청춘의 시기가 길었다. 부족한 형편과 아무 지원도 해 줄 수 없는 부모 아래 아등바등 악착같이 내가 다 해내버리리라 악다물었다. 남들보다 빨리 취업하길 원했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빨리 앞서 갔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러움도 샀으며, 대단하다 소리도 많이 들었다. 부모가 챙겨주어야 할 영역들을 스스로 챙긴 아이들의 능력은 생각보다 높아서 나는 결국 내 꿈을 이뤄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나. 빠릿빠릿, 똘망똘망, 야무진 나. 참 애썼다.     


그러니 하잘 것 없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며 울고불고하는 친구의 아픔이, 엄마카드 쓰며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친구의 취업 걱정이, 겨우 사랑이고 그깟 걱정이었다. 나에게는 다 사치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던 아르바이트는 식당 서빙부터, 카페, 편의점, 과외까지 이어졌다. 자라오며 항상 돈은 나에게 지긋지긋하게도 따라붙는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꿈을 쫒다가도 돈 때문에 그 방향을 우회하거나 틀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 일 자체보다 그 일을 하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계산부터 해야 했다. 나에게 용돈은 받는 게 아니라 버는 것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영화 8마일 에미넴의 대사처럼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처럼 느껴졌다. 높은 꿈을 쫒아 나는 많이 뛰어야 했다. 그러니 마음을 고백해 오는 남자에게 콧방귀조차 뀌어주지 않았고, 면접 때마다 떨어진다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노력이 부족했다 의심했다. 다 어리석었다. 진짜 여유가 없었던 것은 돈과 생의 영역이 아닌, 내 감정과 심보의 영역이었다. 나는 뭐가 그렇게 남들과 다르고, 사유가 많고, 친구들보다 간절했을까. 뭐가 그렇게 시궁창처럼 느껴졌을까. 내가 나를 내몰아쳤다. 박한 나, 매정한 나, 사연 있는 나. 참 안쓰러웠다.     


생의 거품을 제거하는 방식이든 생의 금칠을 덧입히는 방식이든, 저마다 나답게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 치열하다.
...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 올드걸의 시집 <은유>


내 지난 성장의 시간들은 누구보다 치열한 몸부림이었고, 수많은 동사로 가득한 문장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과 무지가 내 앞날엔 남아있지 않길 바라며 발버둥 쳤던 시간들. 덕분에 나아졌고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처럼 아등바등 악다물며 빠릿빠릿 야무져지고 있다면 말리고 싶다. 마음을 고백해 오는 누군가 다가온다면 발그레 사랑도 누려보고, 시소와 미끄럼틀 말고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여유롭게 그네도 타며 놀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놀이터에서 조차 놀지 못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제일 신나게 걱정 없이 한번 놀아보고 싶다. 놀라고 만들어놓은 터에서 조차 지긋지긋한 돈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씨름하느라 즐기지 못했다.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여유롭게 그네도 타며 놀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즘의 나는 생의 가장 여유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적당한 노동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월급, 무엇보다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쓰는 사람. 내 생에 가장 큰 사치 같다. 이렇게나 큰 걱정 없이 별일 없이 쓰기만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밀려 뭔가 한 가지만 오롯이 집중해 본 적이 있단 말인가. 돈은 예전에 더 많이 벌었던 적도 있었는데, 여유는 숫자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생에 처음으로 느려지는 연습 중이다. 남들보다 빨리 채근하며 독촉했던 나 자신에게 화해를 청한다. 속도를 늦추려면 우선 인정해야 하더라. 내 배경을, 무엇보다 나 자신을 톺아보아야 한다. 생각들을 정리해서 정갈한 글을 쓰고 밑줄도 긋고 더 알맞은 단어로 고쳐 써보며 바른 문장 한 줄을 완성 해보려 한다. 웬만한 것들에도 감응하며 뭉근하게 앞으로의 시간들을 잘 지내보려 한다. 여유가 없던 내 지난 시간들과 악수하고 느긋해진 나와 마주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냥 쓰는 사람이 아닌,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생각도 부모의 삶도 다 잘 써내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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