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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Mar 01. 2019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장김치

찬바람이 불어오면 엄마는 김장 준비를 한다.

매년 11월 즈음. 찬바람이 불어오면 엄마는 슬슬 김장 준비를 시작한다. 일 년에 한 번 엄마가 가장 공들이고, 애쓰고, 애태우는 시간. 아주 어릴 적 내가 기억 못 하는 몇 번을 제외하고도 지금까지 적어도 최소 서른 번은 넘게 했을 엄마의 김장. 그런데도 아직까지 김장철이 다가오면 엄마는 걱정부터 앞선다. 엄마의 김장준비는 걱정이 첫 번째 준비물이다.


올해는 또 몇 포기를 해야 할지, 배춧값은 한 포기에 얼마인지, 새우젓은 얼마나 사야 하는지, 고춧가루는 또 어디서 주문할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 투성인 김장. 엄마에게 김장은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이자 가장 큰 고민이지만 또 막상 하고 나면 한 해가 든든해지는 가장 큰 보물이다.   

  

엄마는 김장하는 날 일주일 전부터 시장에 가 입구에서부터 제일 안쪽까지 모든 채소가게에 들른다. 제일 싸고 좋아 보이는 가게에서 배추를 주문하고, 집에 돌아와 옆집과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도 얼마에 샀는지를 또 묻는다. 비교하고 따져보고 100원이라도 아끼려 열심히 발품을 판다. 나 같으면 인터넷 최저가 검색을 해 볼 텐데, 엄마는 검색을 할 줄 모르니 손과 발로 수색을 한다. 물가 수색의 일인자 우리 엄마. 그렇게 김장하기 전날 모든 재료 준비를 마치면 비장한 얼굴로 잠자리에 든다.     




대망의 김장하는 날. 새벽 4시 엄마는 일어난다. 자는 둥 마는 둥. 밤새 거실 한 쪽에 쌓아둔 배추가 신경 쓰여 잠을 거의 못 주무신다. 누가 훔쳐가는 것도 아닌데, 집에 배추가 쌓여있으면 빨리 절여야 된다는 생각에 매해 엄마는 잠을 설친다. 아빠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와 딸을 두고 일을 나가셨는데, 김장을 하는 날이면 여전히 잠들어 있는 딸과 배추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엄마를 두고 일을 나간다. 그날 새벽 나는 아파트 복도에서 들리는 아빠의 ‘직직’ 운동화 끄는 소리와, 거실에서 들리는 엄마의 ‘칙칙’ 소금 뿌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엄마 뭐해? 지금 몇 시야?”


눈도 못 뜨고 거실로 나가 엄마에게 묻는다.


“배추 절여. 빨리 숨을 죽여 놔야 뭘 하든가 말든가 하지.”  

   

그렇게 이른 새벽 엄마는 배추 40포기의 목숨을 칙칙 부지런히 끊는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거실 한쪽 빨간 대야에 숨이 죽은 채 쌓여있는 배추들을 본다. 삼가 고채(菜)의 명복을 빕니다. 잠시 묵념을 하고, 나도 엄마와 함께 비장의 김장 담그기를 시작한다. 신문지를 깔고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빨간 대야를 거실에 놓으면 방바닥이 다 가려져 사라진다. 엄마는 가끔 김장을 할 때, 대야를 놓고도 한쪽에 널찍하니 거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혼잣말로 얘기했다. 어릴 적 우리 집 거실은 딱 김장용 빨간 대야만 했다.      


굵은 무도 채칼 위에 박박 갈아놓고, 쪽파도 듬성듬성 썰어놓고, 가스레인지 위 커다란 냄비 속에 미음 같은 새하얀 찹쌀 풀도 엄마는 일찍이 쑤어놓았다. 그러면 나는 엄마가 가져오라는 것들을 챙겨 대야 앞에 갖다 놓거나 대야 속에 부어 드리며 엄마의 보조역할을 했다.


“쩌 가서 거시기 좀 가져와!"

"이제 빨간 거시기 부어봐."

"냄비 갖고 와서 거시기 다 부어 부러!”     


나는 베란다에서 새우젓을 가져오고, 빨간 고춧가루를 붓고, 냄비를 들고 와 찹쌀 풀도 대야 속에 다 붓는다. 척하면 척. 나는 엄마의 ‘거시기’를 다 안다.     


“아이고! 우리 딸 없으면 김장을 어찌한데잉?”     


내가 거시기를 척척 갖다 드리면 엄마는 기분이 좋아져 나에 대한 애정을 거시기하게 표현한다.    

 


사실 엄마의 김장은 나 말고도 아빠도 잘 도와주었다. 일을 나갈 때도 있었지만 가끔 일이 없는 날과 김장 날이 겹칠 때면 아빠도 나와 함께 엄마의 보조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내가 자잘한 것들을 나르고 붓고 심부름을 하면, 아빠는 주로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고 큰 설거지도 도와주었다. 엄마가 무를 채칼에 갈다 팔이 아프다고 하면 이내 아빠가 이어서 갈아주었고, 엄마와 내가 김장 속을 다 버무리고 나면 빈 대야를 화장실로 가져가 씻어 주었다. 버무린 김치를 통에 다 담고 화장실에 가면 세면대 옆에는 아빠가 씻어놓은 빨간 대야와 파란 바가지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쓰레기통이 채워지면 얼른 나가 비우고 오고, 오는 길에는 잊지 않고 수육도 사 왔다.      


맛 내는 건 엄마가 힘쓰는 건 아빠가 했다. 평생 몸 쓰는 일을 해서 그런가. 사랑도 몸으로 표현하는 아빠. 엄마의 손맛과 아빠의 힘과 나의 보조로 완성된 김장김치. 그 김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빨간 대야가 치워져 다시 방바닥이 드러난 우리 집 거실. 그 위에 작은 상을 펴고 막 담근 김장김치 한쪽을 꺼내 수육 위에 얹어 먹는 그 한 끼의 식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엄마가 손으로 죽죽 김치를 찢어 아빠와 나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면 경쟁하듯 얼른 입안에 욱여넣고, 우리는 오물오물 서로를 바라보며 맛있다고 외쳤다.


엄마는 그 순간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발품을 팔고, 전날 새벽잠을 뒤척이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김치 속을 버무렸다. 어쩌면 아빠도 그걸 알아 그날은 일부러 일을 나가지 않고 엄마를 도와준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남편과 자식이 김장김치에 맛있게 밥 한 그릇을 비우면 엄마의 속이 든든해진다. 아빠와 나는 배부르고 엄마는 마음이 부르다. 그게 좋아서 엄마는 매년 찬바람이 불어오면 어김없이 김장준비를 시작한다. 시장을 가고, 가격을 묻고, 채소를 다듬고, 김치를 먹을 가족을 생각한다. 걱정도 하고 한숨도 쉬고 잠도 뒤척이지만, 엄마에게 김장은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이자 또 막상 하고 나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가장 큰 보물이다.     


엄마의 손맛과 아빠의 힘과 나의 보조로 완성된 김장김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장김치.


김치. 김치. 김치.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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