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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ug 16. 2019

세련된 김치

우리의 반찬은 김치와 김치가 아닌 것으로 나뉜다.

어릴 적 가난이 지천에 널려 있었던 나는 세련을 동경하는 아이로 자랐다. 입고, 먹고, 자는 모든 영역에서 질투와 부러움은 언제나 존재했다. 내 것보다 크고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은 항상 많았다. 그중 예쁜 ‘음식’은 너무나 색다르고 놀라웠다. 우리 엄마가 내어주는 먹을 것들에는 배치와 장식, 꾸밈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던 어느 날 친구 엄마가 알이 크고 빨간 딸기의 꼭지를 정갈하게 잘라 하얀 접시 위에 나란히 네 개를 올려 내어 주시는데 충격을 받았다. 우리 엄만 한 번도 딸기 꼭지를 잘라준 적이 없고, 저렇게 크고 탐스러운 딸기도 본 적이 없으며, 그저 채에 물을 휘휘 뿌려 쟁반에 받쳐 그대로 내주었는데. 정말이지 놀라운 딸기의 재발견이었다.


또 한 번은 친구 엄마가 간식으로 팬케이크라는 것을 만들어, 크고 하얀 접시 위에 세 개를 쌓아 시럽을 뿌리고, 그 위에 호두와 아몬드 네 개를 올려 내어놓는데 또 충격을 받았다. 계란으로 간식을 만드는 건 우리 엄마에겐 계란빵이었고, 설탕이 아닌 시럽이란 것도 처음 보았으며, 호두와 아몬드를 가운데에 모아 딱 네 개만 얹었는데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계란빵의 재발견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올 때마다, 놀러 가서 무언가를 얻어먹고 올 때마다, 나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의 간식에는 우아와 고상이 없어 보였다.  


철없던 시절. 엄마의 간식에는 우아와 고상이 없어 보였다.

   

밥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모든 반찬을 김치로 만들었다. 하루는 끓이고, 하루는 볶고, 하루는 지진 김치가 밥상 앞에 놓였다. 튀긴 김치만 없었다. 김치를 그대로 넣고 끓이고, 김치에 들기름을 넣어 볶고, 김치에 된장을 넣어 지졌다. 우리 집 김치는 참 다이내믹했다. 배추김치가 싫다고 하면 열무김치를, 열무김치가 질린다고 하면 총각김치와 파김치를 담갔다. 엄마의 머릿속엔 김치 대백과사전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김치가 싫증 났다. 매일 반찬 투정을 했다. 투정의 정도가 심해지면 엄마는 어묵을 볶아 주거나 계란후라이를 해줬다. 어묵과 계란 반찬은 투정 부린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온갖 빨간 김치로 가득했던 밥상 앞에서 어린 나는 자주 시무룩 해졌다.




돈을 벌게 된 나는 어릴 적 동경했던 음식에 대한 세련을 양식으로 풀었다. 월급을 받으면 무조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고,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는 만큼 계란빵과 김치의 기억이 대체되는 것 같았다. 김치는 촌스럽고 스파게티는 우아하다 생각했다. 김치도 빨갛고 토마토 스파게티도 빨간데 김치는 그냥 빨강, 스파게티는 엘레강스 레드 같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고 집에 와서는 엄마 김치를 찾았다. 치즈 그라탕과 립아이 스테이크를 양껏 먹고 왔던 날에는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엄마의 볶음김치를 맨손으로 집어 먹었다. 이상했다. 급기야 봉골레 파스타를 시키며 김치 있나요?를 물어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정말 이상했다. 세련된 먹을거리를 찾아 레스토랑을 전전하는 하이에나 같았던 나는 식사의 끝 항상 김치로 입가심을 해야 했다. 그것도 엄마 김치. 엄마의 배추김치, 엄마의 열무김치, 엄마의 김치 된장지짐, 엄마의 모든 김치. 김치 김치 김치. 내 머릿속엔 어느새 엄마 김치 대백과사전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진짜 이탈리아에 가서 파스타를 먹고서도 숙소로 돌아와서는 엄마의 김치를 떠올렸다.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찬밥에 물을 말아 엄마 김치를 원샷했다.     


엄마의 모든 김치



나는 언제부터 촌스럽다며 부정했던 엄마의 김치를 본능적으로 찾게 된 것일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새로운 것은 결국 익숙한 것만 못하다는 것을. 나에게 익숙해지기까지 누군가의 무한한 반복과 정성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음식이든 도돌이표를 붙인 것처럼 종내는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심드렁하고 못마땅했던 엄마의 그 김치가 나에게는 사랑이었고 정성 가득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김치가 지천에 널려 있었던 어린 시절. 모자란 나는 그것이 가난이고 촌스러움인 줄 알았다. 찬 바람이 불어오면 김장을 하고, 때가 되면 종류별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담그고, 시간이 지나 삭혀진 것도 묵혀진 것도 버리지 않고 살뜰히 요리를 했던 엄마의 바지런함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미처 몰랐다.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절로 그립고 먹고 싶다. 엄마 김치가 가득한 밥상을 마주할 때면 세상 행복해진다. 없던 식욕도 절로 생긴다. 빨갛고 빨간 그 밥상이 알록달록 예뻐 보인다.    

 

김치의 품격에 대해 생각한다. 하얀 배추를 소금에 절여 빨간 고춧가루를 뿌리고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지나 잘 숙성된 하나의 기품 있는 김치가 밥상 위에 오를 때, 우리는 이미 그 어떤 다른 반찬도 필요치 않다. 갓 지은 하얀 쌀밥 위에 빨간 김치 한 조각을 올려 입안에 털어 넣은 후 매콤하고 아삭하고 달큼하기까지 한 그 맛을 음미할 때면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가슴 깊이 엄마 딸이라는 나의 실체가 증명되는 것 같다. 엄마가 그리도 오랫동안 좋아하고 아끼고 정성 들였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최고의 반찬이자 할 수 있는 최상의 반찬이었으니까. 자식도 좋아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김치. 엄마의 김치. 그 어떤 반찬도 결국 김치 앞에서는 다 밀려난다. 우리가 이토록 자주 그리고 많이 반복해서 먹었던 찬 중에 질리지 않고 계속 먹고 싶은 반찬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반찬은 김치와 김치 아닌 것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 위대한 김치를 엄마는 내가 씹기 시작했을 때부터 먹이고 만들고 반복했다. 엄마의 김치는 그저 김치가 아니다. 그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음식이자 반찬이자 모든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된다 해도 엄마처럼 김치를 담글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엄두가 안 난다. 이제 김치 앞에서 나는 다시 또 투정을 부리고 싶다. 또 담가 달라고. 또 만들어 달라고. 또 먹고 싶다고. 자꾸만 앙탈을 부리고 싶다. 맛있는 엄마 김치 앞에서 나는 마냥 자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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