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차, 나의 첫 새 차.
나의 첫차는 2003년식 하얀색 SM3 오백오십만 원짜리 중고차였다. 나는 그 차를 2012년 겨울에 장만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광주MBC에 합격해 내려가야 했는데, 지방에서 혼자 지내려면 차는 있어야 한다는 주변 선배들의 조언에 중고차 매매단지에 가서 급하게 구매를 했던 차였다.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중고차를 보고 새 차처럼 좋아 날뛰었던 나는 연식과 종류에 상관없이 차가 생긴다는 것 하나만으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값 오백만 원. 오천만 원도 아니고 오백만 원이었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 없었기에 중고차 할부대출을 받았다. 대학생 때 받은 학자금 대출을 직장인이 되면 갚을 줄 알았는데 중고차 대출을 받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받게 되겠지 생각했다. 가진 게 없어 누군가와 어딘가로부터 자꾸만 무엇인가를 빌려야 했던 이십 대였다.
아무렴 어때 나도 ‘자차 운전자’가 되었다. 비록 10년 된 중고차였지만 차를 운전할 때만큼은 이미 갓 출시된 신형 세단을 타는 느낌이 들었다. 넉넉하지 못했던 삶은 때때로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청춘의 빚은 소유의 만족도 맛보게 해 주었다. 월급을 받아 열심히 빚을 갚았고, 액셀을 밟아 열심히 쏘다녔다.
우리 집은 차가 없었다. 때문에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어딘가를 가는 일은 나에게는 그저 부러움이었다.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교 앞에서 창문을 내리고 얼른 타라며 손짓하는 친구들의 부모님.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다녀왔다는 지인들의 말. 다 부러웠다.
차는커녕 운전면허조차 없는 부모님은 마중, 여행, 드라이브라는 단어와는 아주 먼 삶을 사셨다. 아직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시고, 택시는 돈이 아깝다며 잘 타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님이 안쓰러웠다. 그저 평생을 열심히 걸었고, 걸음 수만큼 아꼈고, 늙어갔다. 시간과 체력보다 돈을 아끼고 싶어 하는 아빠와 엄마의 그 마음이 참 속상했다.
그러니 나에게 차는 단순히 욕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많이 힘들이지 않고 멀리 갈 수 있길 바랐고, 나도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삶의 범위를 넘어서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길 바랐다. 차는 나와 우리 가족의 배경을 확장시켜주는 동력 같았다. 그러니 연식과 종류에 상관없이 처음으로 갖게 된 10년 된 중고차 앞에서도 나는 벅찰 수밖에 없었다.
차가 생긴 후로 비록 아빠가 잡은 운전대는 아닐지라도, 내가 운전대를 잡고 부모님을 태우고 어딘가를 갈 때면 엄마 아빠는 굉장히 신나 하셨다. 날씨가 좋으면 은근히 어디라도 나가자며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 하셨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항상 운전 조심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폐차 직전까지 첫 중고차를 탄 후, 나도 드디어 꿈에 그리던 두 번째 새 차를 타게 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집 앞 슈퍼도 차를 끌고 가고 싶었고, 10분에 천 원씩 받는 비싼 유료주차장도 문제없었다. 이 기쁨을 부모님과도 나누고 싶었다.
새 차를 끌고 부모님 댁에 갔다. 엄마 아빠는 내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주차장에 나와 나를, 아니 차를 기다리고 계셨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차 앞에서 부모님은 나만큼이나 기뻐하며 만지고 닦고 흐뭇해하셨다. 아빠는 휴대폰을 꺼내 찰칵찰칵 계속 내, 아니 차 사진을 찍었다. 사진첩을 보니 딸 사진보다 차 사진이 훨씬 많다. 드라이브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는 베란다 아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내 차를 내려다보며 '저 차가 네 차냐'며 좋아하셨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차 앞 유리에 불법 주차 딱지가 붙어있었다. 아 맞다. 이제 부모님 집은 내 집이 아니지. 아파트 입구에서 방문증 발급받는 걸 깜빡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떼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허겁지겁 집으로 다시 올라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한 손에는 뜨거운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한 손에는 프라이팬 뒤집게 들고 내려왔다. 물을 뿌리고 스티커를 긁어내고, 행여나 자국이라도 남을까 조심조심하며 순식간에 앞 유리에 붙은 스티커를 말끔하게 제거했다. 마치 처음부터 안 붙어 있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떼고 나서야 부모님은 이제 조심히 몰고 집에 가라며 안심하셨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새 차를 모는 일은 곧 엄마 아빠가 새 차를 타는 일이었다. 아빠는 살아오면서 딸이 무언가를 새로 장만하고 이루는 모습을 보며 자기가 이룩한 것처럼 기뻐하셨고, 엄마도 그런 나를 기특해하셨다. 자신들이 해주지 못한 것을 자식이 스스로 해내는 일은 자식에게도 그리고 부모에게도 큰 동기와 성취가 된다. 나는 새 차를 장만해 기뻐 날뛰었는데 부모님은 내가 대학교에 갈 때도, 취업을 했을 때도, 아나운서가 됐을 때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려 나를 와락 껴안고 기뻐하셨다. 엄마와 아빠가 기뻐 기쁘다. 뿌듯하고 행복하다.
주말이 오면 부모님을 모시고 저 멀리 드라이브를 다녀와야겠다. 사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해도 크게 좋아하실 부모님이다. 이제 엄마와 아빠는 어딘가를 갈 때 걸어서가 아닌 딸내미 차를 타고 가고 싶어 하신다. 택시비 몇천 원도 아까워하시는데, 몇만 원 하는 기름을 넣어주겠다며 나가자고 하신다. 차가 아니라, 차를 운전하는 딸의 모습을 좋아하시는 거다. 차를 타고 딸과 함께 어디라도 가는 것을 행복해하시는 것이다. 그 마음을 알아 나는 기쁘게 시동을 건다. 부모님께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