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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Sep 20. 2019

한 시인이 제 건강보험료를 내주고 있어요.

10년 동안 이직만 8번 했거든요.

 가끔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를 조회해 본다. 어딘가 제출해야 할 곳도, 서류가 필요한 일도 없지만, 그냥 한 번씩 들어가 본다. 로그인을 하면 내가 언제 그 자격을 얻었고 잃었는지가 사업자명칭, 날짜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적혀있다.     


자격득실확인서 발급 아래에는 ‘차상위본인부담경감증명서’같은 명칭도 보인다. 읽고도 다시 읽어야 하는 단어들. '돌체자아흉부좌심방확인' 같다. 아무 단어나 막 가져다 붙인 것 같다. 혹 띄어읽기를 마음대로 해서 ‘차/상위본/인부/담경감/증명서’라 읽어도 무방하다. 아무튼 못알아 먹겠다. 어쨌든 로그인을 해본다. 내 확인서에는 총 12개의 회사 이름들이 뜬다.


이 중 3개는 오빠들의 직장이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다녔던 곳들이다. 직장피부양자와 직장가입자, 지역세대원을 번갈아 가며 많이도 들락날락했다. 나는 10년 동안 이직을 8번 했다. 이것은 참을성의 문제인가, 특출난 능력의 이유인가. 둘 다 아니다. 모든 것은 어딘가에 진득이 붙이지 못했던 마음의 문제였다. 직장에, 사람에, 무엇보다 내 미래에 매번 사표를 냈다.    


 

직장에, 사람에, 무엇보다 내 미래에 매번 사표를 냈다.



이십 대. 삶이 급해 뭐든 재단하려 했다. 취업에, 연봉에, 타이틀에. 그러니 어느 곳에든 기간은 짧았고 고통은 길었다. ‘빨리’ 취업하려 하다 보니 ‘아무’ 회사나 들어갔고, ‘아무’ 회사에 들어가니 ‘다른’ 회사가 탐났고, ‘탐나던’ 회사에 들어가니, ‘꿈’이 떠올랐다. 자연스레 생의 들락날락이 쌓여갔다. 나도 볼 때마다 놀란다. 어쩜 십 년 동안 이직을 여덟 번이나 할 수 있지? 이 중 어떤 곳은 4차 면접까지 두 달 가까이 고생한 끝에 붙은 대기업이었는데, 한 달을 다니고 그만두었다. 나는 그 회사에 다닌 게 아니다. 면접 보러 다닌 거다.     


정규직, 계약직, 임시계약직과 프리랜서까지 모든 처우를, 월급, 상여금, 계약금과 일당, 수당까지 모든 대우를 받았다. 여섯 번은 자발적으로 그만두었고 두 번은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싹싹하고 주어진 일 잘하는 사원으로 시작해,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할 말 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인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게 아니라 바닥이 난다.


세상이 나를 강하게 만든 게 아니라 나 스스로 굳세졌다. 그것이 조직 속에서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백수가 되고서야 알게 된 건 좀 많이 늦은 감은 있다. 마지막 직장에서는 겨우 싹싹하고 할 말 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는데, 할 말을 하니 개편 때 짤려 버렸다. 아 인생이여. 합격통보를 제외한 좌절을 동반한 통보들이여. 이별 통보, 입영 통보 그리고 해고 통보?     





'전체’는 현재 상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싶다.
비록 ‘부분’의 결합으로 탄생되었더라도.




쉼보르스카 시선집 154페이지에 밑줄이 여러 번 그어져 있다. 직장은 전체였고 나는 부분이었다. 회사는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부분의 희생과 과로와 배려를 잊는다. 부분이 없다면 전체도 만들어질 수 없지만, 전체는 그 부분이 없어도 다른 부분으로 전체를 채운다. 공급과잉의 시대. 지구는 둥글고 부분은 많으니까. 그러니 나는 아무렇게나 대체되는 ‘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 전체로 사는 건 더 끔찍하다. 직장 생활 십 년 만에 느낀 한 줄 깨달음이다.     


물론 ‘전체’ 속에서 잘 적응하고 나아가는 ‘부분’도 많다. 나는 그런 부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은 건강할 것이고 고무적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부분이 되지 못했다. 처음엔 나의 문제라며 자책했는데, 그냥 내가 나를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백수도 나의 몫이요, 프리랜서도 나의 선택이니, 그 끝은 창대가 아닌 미약일지라도 내가 수긍하면 될지어다.     




부분보다 더 미세해 지려 한다. 그저 쓰며 매번 작아지고 치밀해지고 싶다. 이제 그것이 나의 수순 인 것 같다. 읽어야 할 멋진 책들은 지천이고, 써 내려가고 싶은 말들은 쌓여가니 하나둘 글로 잘 풀어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창밖의 나무들을 응시하며 단어와 장면들을 떠올린다.      


나도 저렇게 무성하게 자라 초록이 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다. ‘작가자격득실확인서’가 있다면 나는 아직 ‘작가피부양자’가 아닐까. 생을 고민한 쉼보르스카의 시에 빌붙어 있으니까. 저 멀리 폴란드에서 7년전 생을 마감한 한 시인이 내 건강보험료를 대신 내주고 있는 듯하다. 어서 글로 돈 벌어 지역세대원으로 당당히 보험료를 내고 싶다. 내가 나한테 월급을 주기 위해 나는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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