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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Nov 01. 2019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편집자와 100통의 메일을 주고받았어요.

작년 12월 27일. 2018년을 4일 남겨두고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 메일을 받았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그때 내 글은 한 편집자에게 동터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만나서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계약을 할지도 모르는 작가에게 만나서 책 이야기가 아닌 아빠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나는 그게 좋아 새해가 시작되면 만나자고 했다.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만나서 정식으로 데이트해보자가 아닌, 그냥 함께 걸어나 보자고 하니 상대방은 운동화를 신고 흔쾌히 네!라고 대답한 것이다.   

  


걸어서 출판까지


     

사실 네!라고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이상하게 글은 계속 써볼 수 있겠는데 책은 못 만들 것 같았다. 2017년 겨울부터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해 시간이 흐르자 출간 제안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의 독립출판사나 개인의 연락이었다. 하지만 그땐 쌓여있는 글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내가 자신이 없어 정중히 거절 메일을 보냈다. 1년 정도가 지나고 글이 쌓이자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도 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규모가 있고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적도 있는 출판사에서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푸른 사과도 초록 이파리들도 붉게 만들었지만 내 글은 더 까맣게 만들었다. 쌓이는 글만큼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이제 글이 아닌 책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 왔구나. 2019년 새해 소망으로 ‘출간’을 마음먹었다.     


인생은 타이밍. 딱 그 시기에 출판사 수오서재 편집자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2019년 1월 14일 그녀를 만났다. 아빠 이야기, 엄마 이야기, 나의 이야기, 편집자와 작가가 아닌 언니와 동생, 선배와 후배, 친구 같은 대화가 오갔다. 3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내 인생 처음으로 만난 편집자. 나는 그 처음에 큰 의미를 부여해 이분과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편집자는 나에게 다른 출판사와 미팅도 다 해보고 신중히 결정하라며 놓아주는 게 아닌가. 나를 붙잡아줘도 모자란 데 다른데도 가보라며 풀어주다니. 내 글 좋아서 만나자고 했잖아요 편집자님! 미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오케이 좋았어. 그렇다면 다른 편집자들을 만나보겠어! 폭풍 미팅을 했다. (그래 봤자 두 군데 ) 하지만 나의 마음은 우유부단과 결정장애로 마구마구 흔들렸다. 편집자님들 다 왜 이렇게 좋으신 거예요. 그런 와중 내 글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혼란의 며칠을 보내게 되는데...     


또봉이 통닭을 제치고 실검 1위를 한 것은 실화입니다.




“작가님! 일상을 잘 지켜내세요!”


수많은 곳에서 연락이 쏟아지던 그때. 수오서재 편집자의 문자. 관심과 응원도 감사했지만 나에게 가장 필요한 한마디였다. 출판사 수십 군데에서 출간 요청 메일을 받았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며 여기저기서 빠른 출판을 요구받을 때 나에게 온 묵직한 한 문장. 나는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제 책 잘 만들어 주세요!”     



일상을 잘 지키라는 당부도, 책을 잘 만들어 달라는 부탁도, 모두 다 책을 뺀 사람을 생각하는 찐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수오서재와 계약을 했다. 계약금을 받은 날 남편에게 소갈비찜을 사주었다. 이 계약금은 일종의 집필 동안에 써야 할 용돈 같은 건데, 나는 소갈비찜을 먹고 힘을 내 집필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둔 파일을 열어보니 원고지 700매, A4 100쪽이 넘는 글이 쌓여있었다. 넘치는 생각과 꾸준한 쓰기가 만들어 준 파일. 글이 책이 되려면 ‘분량’도 필요하니까. 그 분량을 위해 쓰고 또 쓰고, 글 앞에서 내리 지탱해 보려는 의지와 다짐이 작가에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이후에 써지는 글 들은 한 편씩 메일로 편집자에게 보냈다. 편집자는 말했다. 쌓여있는 글은 일처럼 느껴지고, 한 편의 글은 편지처럼 느껴진다고. 그러니 한 편씩 보내달라고. 그렇게 우리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가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간 글을 써서 보내면 편집자는 답장으로 자기도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갔었던 추억을 적어 보내주었고, 주고받은 메일에는 원고뿐만 아니라 글을 쓰고 읽은 마음과, 오늘의 기분과, 내일의 일정과 여러 가지 사소한 것들이 덧붙여져 전송되었다. 그렇게 편집자와 나는 집필기간 동안 총 100통의 메일을 주고받았다. 나의 글은 원고지 1062매, A4 152쪽으로 늘어났다. 결국 많이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한 편 한 편의 글을 쓰는 일과 이걸 한데 묶어 책으로 엮는 일은 또 다른 맥락이었다. 중복되는 문장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살펴야 할 표현들을 고치고, 무엇보다 전체적인 구성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편집자는 모여있지만 흩어져 있는 내 글을 아빠 이야기, 엄마 이야기, 나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아빠, 엄마, 나의 이야기로 가닥을 잡아주었다. 마지막 한 달 정도는 제목 때문에 고심하다 편집자와 나 모두 울기 직전의 상태까지 가기도 했다. 결국 글 속 한 문장에서 제목이 나왔다.     


멀리 가지 마세요. 제목은 글 속에 있어요.


    

모든 작가의 책이 그렇겠지만 책의 크기와 종이의 재질, 텍스트의 색깔과 배치까지 하나하나 고심해 가며 책이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쓴 이 글이, 우리가 만드는 이 책이 ‘부모님’의 이야기이기에, 조심 또 조심하며 마지막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가난을 미화하지 않기, 부모를 소재 삼지 않기, 무엇보다 ‘좋은 책’을 만들기. 내가 그리고 편집자가 가장 많이 다짐한 마음이었다.      


요즘도 나는 한 편의 글을 쓰면 왠지 편집자에게 보내야 할 것만 같은,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첫 책이 나온 지금 다시 내가 처음 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썼던 2017년 가을을 생각하며 2019년의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2년 동안 쓰고 또 쓰고 계속 썼던 날들. 그 시간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완성은 끝이 아닌 시작의 완성이다. 글은 앞으로도 쓰여질 것이고, 나는 오랫동안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까.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계속’ 쓰는 일임을 잘 안다. 또 쓸 것이다. 계속 쓰려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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