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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06. 2019

아빠는 일흔두 살의 성실한 신입사원

아빠가 삶을 채우고 빛내는 방법

아빠는 요즘 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를 한다. 출근 시간은 9시지만 7시 반에 집을 나서 8시까지 출근을 한다. 아마도 일터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성실한 일흔두 살의 신입사원 일 것이다. 아빠의 공식 명칭은 ‘아파트 외곽 청소원’ 단지를 돌며 쓰레기를 줍고, 낙엽을 쓸고, 청소를 한다. 11시 반 정도가 되면 점심시간이다. 처음엔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과 며칠 밥을 함께 먹었다. 그런데 이미 친해져 버린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혼자 멋쩍기도 하고, 아주머니들이 아빠를 조금 불편해하기도 해서 그 후로는 혼자 점심을 드신다. 주로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고, 안 싸주는 날에는 김밥 ‘한 줄’을 사서 드신다고 한다. 오후 3시.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여섯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서’ 온다.     


나는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가 많아진다.


“아빠 왜 이렇게 일찍 가. 9시까지 가도 되잖아. 밥은 왜 김밥 한 줄이야? 그거 가지고 배가 차나? 올 때는 왜 걸어오는데! 버스 타세요. 버스! 다리도 안 아파?”


하지만 아빠는 대답이 짧다.


“응 괜찮아!”


아빠는 언제나 괜찮아도, 괜찮지 않아도, 다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아빠의 참을성이 경이롭다. 50년을 넘게 매일 노동을 반복한 것도, 일흔이 넘어도 여전히 이십 대처럼 부지런한 것도, 꾸준히 어떻게 서든 돈을 아끼는 것도, 모두 다 대단하다.     






얼마 전에 알았다. 그곳에서 남자 직원은 아빠 혼자라는 것을. 다른 아주머니들은 조를 짜서 삼삼오오 같이 청소를 하고, 아빠만 아파트 외곽을 돌며 좀 더 무겁고 큰 청소들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모집공고에 ‘외곽’ 청소원이라 써져 있었구나 생각했다. ‘외곽 청소원’ 아빠는 늙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테두리를 열심히 돌아다니며 자기 몫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아빠는 어느 날 집에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잔뜩 들고 왔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에 가시오가피 나무가 있는데, 화단정리 때문에 잘라낸 것들을 챙겨 온 것이다. 이걸 끓여 마시면 몸에 좋다며 엄마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날 저녁 냉장고에는 가시오가피 물이 1.5리터 사이다 페트병에 가득 담겨있었다.     


아빠는 또 어느 날 집에 감을 한 봉지 가득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에 감나무가 있는데, 떨어진 것들을 줍고 간당간당 곧 떨어질 감들을 허락을 받아 따서 챙겨 온 것이다.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맛이 좋다며 이게 진짜 단감이라고 맛있게 엄마와 깎아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주말에 집에 놀러 온 딸에게 남은 감들을 다 가져가라며 싸주셨다. 상처 나고 가지가 달린 감은 딱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였는데, 아빠는 자신이 무언가를 돈 들이지 않고 얻어왔다는 것과 그것을 자식에게 챙겨줄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기뻐하셨다. 그 기쁨이 감을 달게 만든 것 같았다.     


상처나고 멍든  아빠가 주어 온 세상에서 제일 단 감.



사실 아빠는 청소일을 하며 매일 밤 고민하셨다. 백만 원이 조금 넘는 그 월급이 성에 안 차 다시 공사장에 나가고 싶다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밤새 그런 고민을 하다 잠들고 다시 새벽 일찍 일어나 제일 처음 일터에 도착해 누구보다 열심히 단지를 돌며 청소를 한 아빠. 작업 반장에게 이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거냐며 묻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서 집까지 오셨을 것이다. 나는 생각이 많을 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아빠는 걱정이 많아도 여전히 일은 성실히 하셨다.     


“보니까 내가 열심히만 하면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드라. 다른 아줌마들도 1년 넘게 일한 사람들도 많아야. 1년 일하면 퇴직금도 준단다. 근데 월급이 적어서... 노가다 하믄 이것보단 많이 벌 것인데...”


“아빠 청소 일 오래오래 하세요. 아빠 다시 공사장 나가면 이제 너무 힘들어서 안돼요. 돈 생각하지 말고 쉬엄쉬엄 그 일 오래오래 하세요.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요.”     


50년을 공사장에서 일한 아빠는 단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는데, 1년을 채우면 퇴직금이 나온다는 말에 아빠는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백만 원 남짓 월급과 함께 가시오가피나무도 단감도 마련하는 아빠. 아빠는 항상 그랬다. 본인이 실제로 버는 돈 이외에 아끼고, 재활용하고, 얻어오고, 주워오는 방법으로 더 많은 것들을 쌓아오셨다. 그렇게 아빠는 채우고, 나눠주고, 함께하며 생을 살아오신 것이다. 나는 주로 새것을 사거나 열어볼 때만 기뻐했는데, 아빠는 낡고 오래된 것들도 본인의 바지런함으로 빛을 냈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아빠의 몸과 마음이 모두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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