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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20. 2019

'밥'을 묻는 엄마와 '말'을 기다려주는 아빠

부모님이 누군가와 관계 맺는 방법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난주에도 오지 않았냐고, 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말했다. “아니 너 말고 어머님 아버님 뵙고 싶어서.” 친구는 ‘우리 부모님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래! 다음 주에 가자. 엄마한테 말해놓을게.”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말했다. “오매. 그럼 밥을 뭘 해주까? 닭 한 마리 사다가 해주까?” 요일도 시간도 묻지 않는 엄마의 수락 표현은 ‘밥’이었다. 나는 그 조건 없는 승낙이 참 엄마답다고 생각했다. “엄마. 그럼 닭볶음탕 해줘. 엄마 닭볶음탕 진짜 맛있잖아!” 엄마는 전화를 끊고 다음 주에 올 나와 친구를 위해 오늘 장을 볼 사람이었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 댁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대뜸 “닭볶음탕 했는데! 앉아. 밥 먹게.”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역시나 ‘밥’으로 말을 트는 엄마의 인사법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는 내내 친구에게 고추 절임을 했는데 간장이 하나도 안 짜다고, 알타리를 담갔는데 지금 딱 맛이 좋다고 말과 접시를 내밀었다. 친구는 밥을 먹는 동안 엄마와 수다를 떨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이내 엄마에게 내 친구는 또 다른 딸이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맞아. 엄마가 항상 누군가와 관계 맺는 가장 순수하고 사랑 가득한 방법은 ‘밥’이었지.


    

엄마가 항상 누군가와 관계 맺는 가장 순수하고 사랑 가득한 방법은 ‘밥’이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도 또 누군가에도 자주 물었다. “밥 먹었냐?” “밥 먹었어요?” 어렸을 땐 모든 사람에게 밥만 묻는 엄마의 질문이 참 좁다 생각했다. 사회, 정치, 경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가 밥 외에 다른 주제의 대화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엄마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잘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누구라도 엄마와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눠본 사람들은 엄마의 인상과 성격이 참 좋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엄마를 찾았다. 1960년대 전라남도 순천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엄마는 어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친구가 아무도 없었지만, 누구에게나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밥을 묻는 정겨움 덕분에 동네 사람 모두를 친구로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동창이 없는 대신 동네 친구가 많았다.     






아빠가 휴대폰이 없었을 때 우리 집 전화기는 아빠를 찾는 사람들로 바빴다. “아빠 있냐.” “일 끝나고 집에 왔소?” 아빠보다 목소리가 어려 보이는 삼촌도, 많아 보이는 아저씨도 모두 아빠를 찾았다. 나는 희한하다 생각했다. 아빠는 말수도 적고, 누군가에게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닌데, 조용하고 무뚝뚝한 아빠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찾을까. 아빠는 항상 누군가 말을 건네면, “알아서 해!” “암시롱 안 해요.” 하는 말이 전부였는데, 참 신기하다 생각했다. 그때는 그저 모든 사람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아빠의 조용함이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아빠가 사는 곳, 나이, 직업까진 아니더라도, 뭐라도 묻고 먼저 말을 건네며 관계를 넓혀가길 바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아빠에게 먼저 말을 잘 건넸다. 누구라도 아빠와 편하게 얘길 했고, 자기 이야기를 꺼냈고, 같이 일하는 동료와 동네 아저씨들도 술 한 잔이 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아빠를 찾았다. 1950년 때 전라남도 무안에서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아빠는 어른이 되어 서울에 올라와 공사 현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언제나 조용하게 기다리는 겸손함 덕분에 일터 사람 모두가 자기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빠의 대답은 기다림이었고, 믿음이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 아빠를 찾았다. 일은 누구보다 빠르고 부지런하게 했고, 사람에게는 누구보다 천천히 그리고 진중하게 대했다.  

  

 

아빠의 대답은 기다림이었고, 믿음이었다.



나는 엄마가 누구에게나 밥을 묻는 말과, 아빠가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밥과 침묵.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 쉬운 것이지만,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밥은 더 다양하고 복잡한 것들로 묻게 되고, 침묵은 넘치는 말과 질문이라는 간섭으로 쉽게 변하고 만다.    

  

엄마는 새로운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도 그 사람의 나이, 직업, 직책이 아닌 밥을 먹은 사람인지, 밥을 안 먹은 사람인지로 대했다. 이것은 얼마나 공평한 마음인지. 밥을 안 먹었다고 하면 밥을 먹이려고 했고, 밥을 먹었다고 하면 잘했다고 칭찬했다. 아빠는 새로운 누군가를 처음 봤을 때도 그 사람의 나이, 직업, 직책을 묻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이 역시나 얼마나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인지.      


엄마의 다정함도 아빠의 무심한 듯 보이는 믿음도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든, 사회 속 빠르게 스쳐 가는 얕은 관계든, 모든 관계 속에는 그런 종류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안부를 묻고, 서로를 믿고, 기다려주는 사랑.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무구하고 아름다운 것. 나도 그렇게 그렇게 모든 인연들과 단순하며 따뜻하게 관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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