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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Dec 15. 2018

아비는 평생 가난했다.

가난의 출구는 어디일까?

      

나의 아비는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았지만 끊임없이 가난했다.     


일평생 자신의 노동으로 받은 돈을 열심히 모았고, 허투루 쓴 적이 없으며, 쉬거나 자거나 먹은 시간보다 노동을 한 시간이 훨씬 많았음에도 여전히 가난했다. 그 가난은 나의 아비가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아, 늙고 병든 후에도 없어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무지하고 가난했던 아비는 몸으로 하는 노동 이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노동 중에서도 마치 그 노동을 최대치로 극대화해 돈을 벌어내는 일인 것 같은 막노동을 평생 하며 살았다. 그 막노동은 아비가 이팔청춘이었을 때부터 환갑을 넘기고 일흔을 넘긴 후에도 지속됐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몸을 써가며 해온 막노동은 내 아비의 평생 직업이자 유일한 직업이었다.  



그런 아비가 처음엔 부끄럽고 답답했다가 이제는 한없이 안쓰럽고 마음 아픈 나는 막노동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순 없을까를 항상 고민했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께 넌지시 '벌이는 괜찮으신지', '택시기사를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집에 들어갈 때면 아파트 게시판에 있는 경비 모집 공고문을 천천히 깊게 읽어 내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막노동만을 해온 아비에게 다른 일을 할 용기도, 자신도,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그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임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해낼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비가 단 한순간도 쌩쌩하거나 여유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피곤했고, 힘들었으며, 아프고, 버거웠다. 나는 아비가 출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힘에 부쳐 퇴근하는 모습만을 보았다.      


대학 시절 편입 공부를 한다고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지하철에는 술 취한 취객과 나처럼 공부하는 학생 그리고 아비가 앉아 있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본 아비의 출근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아비는 평생 첫 차를 타고 출근했음을.      



아비는 항상 냄새가 났다. 매일같이 집에 돌아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노동의 흔적을 씻어내는 일이었음에도. 아비는 항상 빼빼 말랐다. 누구보다 밥을 많이 먹고 빨리 먹고 바로 잠들었음에도. 모두 막노동의 흔적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듯, 자식도 늙은 부모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잔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정직하게 노동을 했음에도 왜 평생 가난했고, 가난하고, 가난할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과연 내 아비가 저렇게 힘들고 버겁게 평생 노동을 해서 남은 것은 무엇인지, 얻은 것은 무엇인지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 목적과 이유가 딸내미인 나 혹은 아내인 엄마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기에 아비의 노동은 그 이상으로 맹목적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지속된 가난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지한 아비의 배경 탓으로 돌리기에도 나의 아비는 너무나 열심히 노동했다.      


아비는 아직도 은행에 갈 때 목도장을 갖고 다니고, 매달 받는 적은 돈을 열심히 은행에 모아두는 일과 그 모은 돈을 최대한으로 적게 쓰는 일 외에는 생각해 본 적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그래서 평생 나의 아비에게 제일 큰돈의 액수는 백만 원이었다.     


엉뚱하게도 나는 막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월급통장은 엄청난 복리로 원금을 불어나게 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상상할 뿐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사회에는 계급이 있으며, 배워서 남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지시켜 드리기에 나의 아비는 너무나 늙었다.  

    



가능하다면, 그래서 나의 아비를 다시 이팔청춘의 시간으로 돌릴 수 있다면, 막노동을 하지 말라고 말리고 싶진 않다. 대신 당신의 막노동은 평생 직업이 아닐 수도 있으며, 무언가를 배우는 일도 가능하다고. 조금 덜 피곤하고 더 가벼운 일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다고 회유하고 싶을 뿐이다. 가난한 노동자의 시야는 가난의 무게만큼이나 깊고 좁아서, 다른 길을 갈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아비의 삶을 조금 더 넓게 확장시켜 주고 싶을 뿐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첫차를 타고 출근해 하루치의 삶과 노동을 맞바꾸고, 남은 삶을 이고 지고 퇴근하는 아비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는 것만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다.


가난의 출구는 어디일까? 나의 아비는 어디로 나가야 할까?  

   

아비의 평생 유일했던 그 노동 앞에서 나는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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