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희정 Feb 14. 2020

결혼 3년 차, 우리는 각방을 씁니다.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을 때 다른 이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일과를 모두 마친 홀가분한 밤. 부부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 서로가 오늘 낮에 만나고 겪고 했던 일 중 인상 깊었던 것에 대해, 사람에 대해, 뉴스 속 사건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다. 각자가 보냈던 환한 대낮의 시간을 깜깜한 밤에 공유하며 웃기도 하고, 상대의 생각에 동조해 주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내일 아침에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해야 할 일과, 사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들을 공유하며 나와 우리의 또 다른 하루를 예측하고 정리한다. 결혼했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나의 낮과 우리의 밤이 모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결혼. 나의 낮과 우리의 밤이 모여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슬슬 잠이 몰려온다. “이제 자자.” 가벼운 굿나잇 뽀뽀를 하고 남자는 일어나 안방 불을 끈다. “잘 자!”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간다. 그렇게 부부는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잔다. 결혼 3년 차. 우리 부부의 하루 끝 풍경이다. 그렇다. 아직 신혼이라 불리는 우리는 ‘각방’을 쓴다. 스윗해 보이는 우리 모습의 마무리가 각방이라니 묻고 싶을 것이다.      



아직 신혼인데 벌써 각방을 써?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결혼 준비를 하며 같이 덮을 포근한 이불도 샀고 허리 건강을 생각해 좋은 매트리스도 샀다. 그 침대 위에서 봄, 여름, 가을과 겨울을 ‘함께’ 잤다. 그렇게 사계절을 자고 보니 우리는 경험하고 깨달은 게 있었다.      







하나. 우리는 체질이 너무 다르다. 열이 많은 신랑과 추위를 많이 타는 나. 한여름, 신랑은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자야 했고, 나는 선풍기조차 틀지 않는다. 신랑에게 맞추면 나는 여름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고, 나에게 맞추면 신랑은 등에 땀띠를 달고 살아야 했다. 둘 중 어느 것도 달아서 좋을 건 없었다.

    

둘. 우리는 패턴이 너무 다르다. 나는 한 번 잠이 들면 쭉 잘 자는 편이다. 큰 걱정거리가 없다면 머리만 대면 잘 잔다. 반면에 신랑은 새벽에 잘 깨기도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한다. 꼭두새벽 혹은 이른 새벽에 잠이 달아나 버리면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한다. 그렇게 왔다 갔다 내 잠까지 결국 달아나 버리게 한다. 누군가의 잠을 달아나게 해서 좋은 건 없다. 깨워서 미안하기만 할 뿐이다. 슬슬 새벽에 컴퓨터를 하다 내가 깰까 봐 침대로 복귀하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셋. 우리는 서로의 체질과 패턴을 ‘존중’하기로 했다. 여름마다 누군가는 땀을 흘려야 하고, 새벽마다 누군가는 깨야 한다면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체질은 쉽게 바뀌기 어렵고 생활 패턴은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 ‘신혼’이라는 이유로 ‘부부’라는 이유로 ‘으레’ 그래야 한다는 이유로, 타고난 것과 적응한 것을 무조건 바꿔야 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바꾸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그래서 우리는 각방을 쓴다.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를 덜 사랑한다거나 이기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각방을 쓰며 서로를 더 사랑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다 가끔 같이 잘 때 (얘기하다 둘 다 잠들어 버린다거나, 금요일 밤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며 함께 영화를 보다 잠들어 버린다거나)는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하지만 호기롭게 껴안고 자기 시작했다가도 금세 등을 돌리고 각자의 자세로 세상 편하게 잔다. 팔베개? 품 안에? 순간은 좋지만 금방 팔은 저리고 숨은 답답해진다. 오히려 각자의 공간에서 숙면을 한 후 컨디션 좋게 아침에 거실에서 만나 기지개를 켜고 깊게 포옹하는 편이 낫다. 이래도 우리 부부에게 왜 각방을 쓰냐고 물어볼 것인가.     




바꾸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편이 훨씬 나았다.




자신의 영역을 지킬 수 있을 때 다른 이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불편한 상태가 될 때, 내가 억지로 무언가를 맞춰야 할 때, 우리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다른 이와의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려면 내 상태가 먼저 좋아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듯이.    

 

연애도 마찬가지다. 로맨스는 외로울 때가 아니라 내가 온전할 때 더 충만해질 수 있다. 힘들어서, 나를 챙겨주고 사랑해 줄 누군가 간절해서 연애하는 경우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더 요구하거나, 실망해서 헤어지는 커플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좋은 관계의 시작은 건강이다. 내 마음이 건강할 때 더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를 먼저 좋은 상태로 만들기. 아주 중요한 선행(先行)이다. 내가 먼저라는 건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타인을 향한 방향이 될 때 우리의 관계는 발전할 수 있다. 연인에게도 부부에게도 각자의 영역과 적당한 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데 득이 된다. 면적과 범위를 넓혀가며 전부 나인 건 욕심이고 이기적인 거지만, 일부를 온전히 나로 채우는 건 나에게도 모두에게도 이로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열렬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다음 주 일요일에 친구 결혼식 있어. 자기도 시간 되면 같이 갈래? 그래! 가서 밥 먹고 오자. 내일 춥나? 나 좀 일찍 나가야 하는데. 맞다! 우리 휴지 다 떨어졌어. 집에 먹을 것도 없고 내일은 끝나고 같이 장 보자. 근데 나 오랜만에 소고기 먹고 싶다. 그래 내일 저녁엔 고기 먹자! 뭐야 벌써 12시 넘었네. 피곤해. 이제 자자. 응. 뽀뽀. 잘 자.”     


오늘도 남편은 내가 누워있는 방에 불을 꺼주고 총총히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아침에 만나!” 


어둠 속에 내가 졸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인사를 건넨다.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팔다리를 대자로 뻗어본다. 퀸사이즈 침대를 혼자 쓰니 킹사이즈 같네. 꿀잠을 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정규직을 포기했거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