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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정 Apr 10. 2020

‘삶은 농담인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제주도민인 친한 동생이 한 명 있다. 제주 함덕에서 태어나 33년째 살고 있는 동생은 다가오는 6월 초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오랜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기뻤다. 친자매는 아니지만, 한복을 입고 가족석에 앉아 박수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엄청난 변수가 생겼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변수인 ‘코로나 19’였던 것이다. 지난 2월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졌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4월이 시작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생이 걱정됐다.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너 결혼 준비는 어떻게 돼가? 이상 없어?”

“언니! 말도 마. 나 신혼여행 취소했잖아!! 100만 원 넘게 날렸어.”     


몰디브의 에메랄드빛 인도양에 몸을 담그고 신혼부부 특별 코스요리를 레스토랑에서 먹으며 고급 리조트에서 여유롭게 허니문을 즐길 생각에 들떠있었던 동생의 꿈은 그렇게 날아갔다. 몰디브와 100만 원. 쉽게 갈 수 없고 쉽게 벌 수 없는 돈인 그 두 가지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동생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동생의 목소리가 괜찮았다.     


“언니! 나 천제연폭포 갈 참이야. 그 앞에서 사진 찍고 신혼부부 흑돼지 세트 먹을 판이야!”     


으잉? 아니 이런 도민 개그를 보소? 이 유쾌함을 보소? 이 녀석 너 멋진 아이구나! 나도 질세라 맞장구를 쳤다.     


“야! 민속촌도 들러야지! 사진 찍을 때 돌하르방 코 잡고! 함덕에서 스노클링 해! 당당하게!”

“우하하! 미쳐! 언니 내가 선물로 미역 따갈게! 신혼여행 집에서 2분 걸리네?”     


그렇게 한참 동안 우린 되지도 않는 개그를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통화를 했다.   




이것이 몰디브야 동생아. 미안. 나만 다녀와서...

   



   

다른 친한 친구는 3월 말. 남편과의 스페인 한 달 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년에 일을 그만두고 남편 직장의 스케줄을 어렵게 맞춰 휴가를 내고, 몇 달 전부터 비행기 티켓과 에어비앤비, 가고 싶은 식당들을 하나하나 찾아 구글맵에 저장해가며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그런데 역시나 코로나 19가 터졌고, 3월 초까지만 해도 유럽의 진행 상황이 지금처럼 최악은 아니었기에 국내 상황은 심각했어도 그래도 그래도 가보려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하. 지. 만. 걷잡을 수 없이 유럽의 상황이 악화하면서 스페인은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치사율이 높아졌다. 친구의 스페인 한 달 살기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 100만 원이 넘는 취소 수수료와 함께.     

  

그 친구와 며칠 전에 만나 밥을 먹었다. 우린 함께 막국수를 먹으며 얘기했다.

     

“이거 스파게티지? 빠에야도 시켜야겠다. 나 지금 스페인 한 달 살기 7일 차잖아.”

“어어! 샹그리아 한 잔 시켜. 여기 식당 나가면 버스정류장에 마드리드 직행버스 있어.”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다면, 외국어 개그를 날려주고 싶었다. ‘Lo siento amiga로 씨엔또 아미가’ (미안하다... 친구여...)     




빠에야 레시피 찾아볼게. 내가 해줄게 그까이꺼!




내 의지와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달리 삶이 우리를 흔들어 놓을 때, 정신 줄을 놓고 휘둘리는 생을 부여잡고 꺼이꺼이 울거나 미친 듯이 울화를 터트려봤자 남는 건 분노 장애와 두통밖에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붙들고 어쩌자고 덤비면 안 되는 것이다.     


동생과 친구도 물론 날아가 버린 몰디브 신혼여행과 스페인 한 달 살기 앞에서 처음엔 망연자실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금세 둘은 안 것이다. 이건 어찌할 수 없으니 어쩌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호쾌하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농담 따먹기를 하며 가볍게 넘기려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되지도 않는 개그를 마구마구 받아쳐 주고 싶었던 것이다.     


동생은 결국 제주도에서 가장 비싼 호텔에서 1박을 하며 몰디브에서 입으려고 사뒀던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삼시 세끼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며 호텔 밖을 절대 나가지 않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하기로 했고, 친구는 원래 하기로 했던 스페인 한 달 살기의 기한인 4월 말까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놀기로 했다. 사실 구직에 대한 걱정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 친구는 원래 스페인에 있는 것이니 그때까지 이력서 한 장 쓰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둘은 나름의 방법으로 여행과 취소 수수료를 작게나마 보상받기로 했다.     


나는 문득 둘에게 은희경 작가의 책 <새의 선물>에 나오는 좋아하는 한 문장을 진하게 밑줄 그어 보내주고 싶어 졌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친구와 동생에게 날릴 썩은 개그를 연구해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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