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글/사진] [조치원 이야기]
추억을 한가득 골라 담다 - 세종전통시장
마트보다 시장을 선호하는 우리 가족은 집 근처 전통시장을 자주 돌아다니는 편이다. 각 시장의 장날을 알아뒀다가 구경을 가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에 따라 그때그때 시장을 옮겨 다니며 물건을 사기도 한다. 생선을 살 땐 바닷가 근처의 시장으로, 기름을 살 땐 곡식이 많은 지역 시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달걀을 살 땐 오일장마다 오는 달걀 장수를 기다렸다 한 번에 사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처음 방문하는 세종전통시장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마음이 가득했다.
평일 낮에도 시장에는 동네 주민들이 가득했다. 양반의 고장이라 불리는 충청도의 풍모 때문인지 세종전통시장에서는 시장 특유의 시끌벅적함이나 고성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자라 귀가 얼얼하도록 요란한 시장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나에겐 유유자적하고 온화한 시장의 분위기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86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세종전통시장은 구석구석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뻥’하고 터지는 뻥튀기 기계, 손으로 직접 쓴 판매 문구와 가격표는 예의 시장의 정겨움을 한껏 드러낸다. 가만히 멈춰 서서 시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고 있으니 뻥튀기를 팔던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뻥튀기 한 조각을 건넨다.
이거 먹으면서 구경햐.
동그란 뻥튀기 과자를 야금야금 뜯어 먹고 있으니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방문했던 시장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엄마는 장보기를 지루해하는 나를 위해 시장에 갈 때면 나무젓가락에 꽂힌 핫도그나 어묵을 하나씩 사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뻥튀기 한 봉지를 사서는 핫도그 대신 이런 걸 먹어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했다.
시장에 갈 때마다 반복된 이 언쟁은 언제나 똑같은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서로 고집을 이기지 못한 채 나는 핫도그를, 아빠는 뻥튀기를 손에 들고 장을 보는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조그만 뻥튀기 한 조각에 잊고 살던 그리운 추억을 마주하자 손에 든 뻥튀기가 사라져가는 게 아쉽게만 느껴졌다.
여러 갈래로 나뉜 시장 골목은 모두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어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식당이 모인 골목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세종전통시장은 조치원역과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여행객들이 자주 방문한다. 몰려드는 손님에 파를 썰다 주문을 받으러 들어가는 식당 주인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시장에서 파는 음식은 먹고 나면 유독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싸고 푸짐한 음식은 어디든 있지만 무심한 듯 많이 먹으라며 건네주는 음식은 어딜 가도 볼 수 없는 시장만의 매력이다. 그런 시장의 매력을 아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닌지 여행객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모두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본래 목적을 잊고 식사를 즐긴다. 상인들의 정이 담긴 따뜻한 식사는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힘의 원천이 되어준다.
아이고, 아직도 사진 찍고 있어?
시장을 몇 바퀴씩 빙빙 돌며 사진을 찍는 내게 장을 보고 나가던 아주머니가 친근하게 한마디 툭 내뱉는다. 예스러운 정취가 가득한 세종전통시장은 몇 번을 돌아봐도 지겹지 않고 새롭기만 하다. 오일장이 열리는 4일과 9일이면 지금보다 더욱 다채로운 모습이 펼쳐진다. 장이 서는 날, 커다란 장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세종전통시장을 다시 찾을 그 날을 기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