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입니다. 여기로 오셔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셔야겠습니다.”
오후 두 시 반, 학교 운영위원회를 앞두고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순의 어머니가 보행기를 밀고 왕복 8차선 대로의 1차로를 유유히 걸어가시는 바람에 일대 교통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인도가 아닌 차도가 마치 당신 전용 도로인 양 누비신 게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경찰까지 출동했다니 사태의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았다. 급히 조퇴하고 어머니를 모시러 달려갔다.
평생 교직에 몸담으셨던 어머니는 퇴직 전 시작한 문인화에 말 그대로 목숨을 거셨다. 지독한 배움의 열정은 척추협착증을 악화시켜 어머니의 허리를 오른쪽으로 굽게 만들었고, 이제는 노인용 보행기에 의지해 매일 지하철을 갈아타며 화실로 향하신다. 내릴 역을 헷갈려 치매 노인처럼 길을 헤매면서도 어머니는 기어이 붓을 잡으러 가신다.
이제 많이 배우셨고 충분히 잘하시니 집에서 여유 있게 그리시면 안 되겠냐는 나의 간곡한 설득에도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셨다. "아니다, 더 배워야 한다. 혼자 하면 실력이 늘지 않고 집중도 안 된다"라며 굽은 몸을 이끌고 지도 선생님이 계신 화실로 향하셨다.
심지어 욕심을 내어 화실 두 곳을 번갈아 다니시니 자식인 나의 걱정은 그칠 날이 없었다. 집 근처 화실을 추천해 드려도, 그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잔소리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다. 제발 인도로 다니시라고, 운전자들이 얼마나 놀라겠느냐고 애원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운전자들이 알아서 다 피해 간다. 인도는 좁고 울퉁불퉁해서 보행기 밀기가 나쁘다.” 경찰들이 자신을 치매 노인 취급한다며 오히려 역정을 내시는 어머니는, 본인의 고집이 교통질서를 얼마나 위태롭게 흔들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계셨다.
경찰들은 기어이 화실에 가겠다는 어머니를 그곳까지 모셔다 드린 뒤 보호자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실 맨 앞자리에서 굽은 등을 보이며 묵묵히 그림에 몰두하고 계신 뒷모습을 보니 눈물보다 부화가 먼저 치밀었다.
벌써 30년째다. 상도 수없이 받았고 이미 화백의 반열에 올랐건만, 대체 무엇을 더 배우시겠다는 건가. 보행기를 끌고 무단횡단하며 나타나는 할머니가 무섭다는 화실 강사의 조심스러운 하소연까지 들어야 했다.
나는 결국 네 명의 자식 가운데 가장 '독한 자식'이라는 악역을 자처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단을 내렸다. 경찰이 압수해 갔다는 거짓말을 하며 목숨과 같은 보행기를 뺏어 버렸고, 화실 사물함 속 문방사우도 모조리 챙겨 들고 나왔다. 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며 울먹이는 어머니를 강제로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이래서 나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싫다. 내가 교사인 것도 싫다. 선생들은 죽을 때까지 배우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다. 최근 퇴직한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밤 아홉 시까지 화실에서 ‘초과근무’를 하느라 바쁘고, 명예퇴직 후 아예 사무실을 얻어 온종일 그림 속에 묻혀 사는 친구도 있다.
수십 년을 학교라는 사각형 공간에 갇혀 지냈던 이들이, 퇴직 후에도 다시 화실이나 강의실이라는 또 다른 사각형에 자신을 가둔 채 현직인 나보다 더 바쁘게 산다.
도대체 얼마나 더 배워야 한다는 말인가. 이제는 배웠던 것을 남에게 나누고, 비워내고, 털어버려야 할 시점이 아닌가. 장수가 미덕이라지만, 어머니처럼 제 몸을 혹사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배움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배움에도 분명 마침표가 있어야 한다.
경찰에게 어머니를 인계받아 돌아오는 길,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앞으로 나는 서예든 그림이든 악기든, 그 무엇도 새로 배우지 않겠노라고. 이번 주말에는 작년 문화센터에서 그렸던 그 지긋지긋한 그림들부터 모조리 없애버려야겠다.
‘무엇이라도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괴물을 만들어내기 전에,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