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늙은 교장만 갔다

by 해림

독일에는 늙은이들만 갔다.

2024년 10월 29일, 11시간의 장거리 비행 끝에 독일 땅을 밟았다. 코로나 시국에 잠시 멈췄던 교장 자격 해외 연수가 부활한 덕에, ‘늙은 교장’인 나도 운 좋게 이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사실 조금 더 용을 써서 몇 해 일찍 승진했더라면 이런 호사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나보다 앞서 교장이 된 선배들은 팬데믹 한복판에서 고생만 진탕 하고 해외 연수의 기회는 놓쳐버렸으니 말이다.


승진 점수가 부족해 지명이 늦어진 것이 때로는 행운이 되는, 그야말로 ‘새옹지마’의 세상사다. 연수지를 정할 때도 나 같은 고령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순위 희망지로 보내준다고 하니, 살다 보니 이런 호강을 누리는 날도 온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독일은 굳이 내 손으로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유적지나 도시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워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연수팀들은 두 국가를 묶어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기력이 부치는 나 같은 교장에게는 수월하게 한 국가만 파헤치는 것이 건강상 이로울 듯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는지, 독일행 연수팀의 면면은 꽤나 '올드'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Germany(젊은이)에는 늙은이들만 가는구나"라는 썰렁한 농담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짐짓 엄격한 교장의 체통을 지키려 속으로만 낄낄거리며 삼켰다.

독일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접시에 산더미처럼 쌓인 소시지와 감자였다. 한국 같으면 대여섯 명이 안주 삼아 먹을 양을 독일 사람들은 '1인분'이라며 각자의 앞에 턱 하니 놓아주었다.


지글지글 기름기가 흐르는 소시지의 습격에 당황한 교장들은 부랴부랴 사비를 들여 파울러너 맥주를 시켰다. 맥주의 시원함으로 느끼함을 씻어보려 애썼지만, 결국 대부분은 반 접시도 비우지 못한 채 항복을 선언했다.

며칠간 소시지와 감자의 파상공세를 겪으며 내린 결론은, 독일 사람들은 참으로 음식을 '맛없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소스도 없이 그 밋밋하고 투박한 음식을 엄청난 양으로 먹어 치우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며칠 뒤 영접한 독일의 자존심 '슈바인학센'도 거대한 돼지 족발에 각종 소시지와 감자를 곁드려 산더미처럼 내놓은 음식이었다. 그나마 유명한 맛집이라 그런지 상큼한 소스가 곁들여져 소시지에 질려가던 입맛을 달랠 수 있었다.

사건은 토종 한국인 입맛을 고수하던 한 최고령 교장 선생님의 접시에서 터졌다. 자르려던 족발 한 덩어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그는 마치 축구선수처럼 그 족발을 발로 걷어차며 외쳤다.


"에이, 더 이상 이런 건 못 먹겠다!“


그 순간, 어린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단골이었던 계란 옷 입힌 '분홍 소시지'가 오히려 간절히 생각났다. 고기 함량이라곤 10%도 안 될 밀가루 덩어리에 식용 색소로 멋을 낸 가짜 소시지였지만, 그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독일의 명품 소시지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리움의 맛이었다.


연수 기간 내내 소시지 앞에서 한숨을 푹 쉬던 노(老)교장들은, 그래도 호텔 조식으로 알뜰하게 체력을 보강하며 매일의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이번 연수의 목적은 독일의 교육기관 방문과 문화 체험을 통한 교장의 글로벌 역량 강화에 있었다. 우리는 독일의 직업교육 시스템인 ‘아우스빌둥(Ausbildung)’ 현장과 일반 인문계 학교를 두루 살피며 독일 교육의 저력을 확인했다.


화려한 소스 없이 원재료의 맛에 집중하는 독일 음식처럼, 그들의 교육 역시 겉치레보다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길을 찾도록 묵묵히 기다려주는 독일의 교육 시스템을 마주하니, 그들의 투박한 식탁이 달리 보였다.


하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나로서는 '이렇게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일주일은 견뎌야 나라에서 교장 발령을 내주는 모양이구나'라는 배부른 투덜거림을 내뱉기도 했지만,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내게는 그저 황송할 뿐이다.


수많은 평교사 중 교장이 되는 비율은 손에 꼽을 정도고, 특히 장학사도 아닌데 고등학교 영어교사 출신 여교사가 교장이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행운에 행운이 겹쳐 누리는 이 귀한 시간이라면, 독일의 맛없는 소시지 정도는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내내 먹으라 해도 나는 기꺼이 웃으며 포크를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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