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교사의 읍소와 어느 학생의 잠버릇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과 고갈된 에너지 사이에서

by 해림

“교감 선생님,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퇴해야겠습니다. 사유는 ‘교권 침해로 인한 두통’이라고 올리겠습니다.”

원로 교사 한 분이 교감인 내 자리로 다가와 마른 한숨을 내뱉으셨다. 사건의 개요를 읊는 목소리에는 새삼스레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과 피로가 짙게 배어 있었다. 점심 식사조차 거를 만큼 심한 두통. 그 통증의 시작은 교실 안에서의 짧은 실랑이였다.


사건은 평범했다. 수업 중 엎드려 자는 학생을 깨워 세워두었고, 학생이 선 채로 다시 졸자 주변 아이들이 "선생님, 얘 또 자요"라며 한마디 보탰다고 한다. 선생님은 타일렀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돌아온 것은 거친 항의였다. 학생은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신을 집단적으로 모욕했다며 대들었고, 수십 분간 이어진 실랑이는 결국 학생부 신고로 이어졌다.


학생은 자신이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것이지 결코 선생님에게 대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하지만 목격한 아이들의 진술과 대질 심문을 거치며 결국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그 아이의 사정은 마음 한구석을 시리게 했다. 일찍 여읜 아버지, 가출한 어머니, 그리고 연로하신 고모 밑에서 자라는 환경.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내 손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미움보다는 안쓰러움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기억이 있다. 교감 발령을 앞두고 남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던 시절, 나도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몸의 기운은 예전 같지 않은데 학생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불량한 태도를 못 본 척 넘기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끝까지 맞붙었다. 젊은 시절 같으면 아이들을 살살 달래 수업으로 끌어들였을 텐데, 고갈된 에너지는 인내심마저 앗아갔다. 아이들과 말싸움까지 하게 된 내 모습이 못내 부끄러웠던 기억.


결국 나는 아이들과 면담 자리를 만들었다. 한 명씩 손을 맞잡고 교사로서의 고충을 전하며 아이들의 속마음을 들었다. 마지막엔 거의 읍소하듯 부탁했다.

"선생님이 이제 늙고 힘이 없어서 참 힘들구나. 너희가 좀 도와주면 좋겠다."


진심이 통했다고 믿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하지만 다음 날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은 보란 듯이 내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다시 책상 위로 엎드러졌다.


‘내가 다음 학기에도 여기 있는다면, 저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꼭 고쳐놓을 텐데.’

아쉬움과 괘씸함, 그리고 허탈함이 뒤섞인 그 마음을 안고 나는 학교를 떠나왔다. 교문 밖을 나서며 정을 떼려 애쓰던 그 시절의 내가, 오늘 조퇴를 선언한 원로 교사의 뒷모습 위에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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