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이라는 천형(天刑), 혹은 축복 같은 마술
"여자는 사범대 가는 게 최고지." 엄마의 그 한마디가 내 운명을 결정지었다. 아버지는 병환 중이었고 집안은 기울어 있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엄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의대에 다니던 오빠가 내 성적이면 충분하다며 직접 물리를 가르쳐주겠다고 나섰지만, 학비가 버거웠던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나는 사범대의 싼 학비와 '선생이 돼라'는 엄마의 소망을 등에 지고 교단에 섰다.
당신이 죽어라 노력해서 교사가 되었고,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딸에게까지 이 길을 권했을까. 그 뿌리 깊은 반항심은 30년이 넘은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딸들에게만큼은 절대 교사를 시키지 않겠노라고. 내가 영어를 마스터하며 겪었던 억울한 세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어학연수 보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맹세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평생 교사라는 직업에 온전히 정을 붙이지 못했다. 교직이 하찮아서도, 교권 추락이 무서워서도 아니다. 그저 나는 이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늘 나를 괴롭혔다. 교사는 늘 아이들 앞에 서야 하고, 감히 남을 가르쳐야 하는 모범적인 존재여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천형(天刑)'과도 같다.
간밤에 영혼이 괴로워 잠을 설쳐도, 남편과 대판 싸우고 눈이 부어올라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정심을 유지한 채 학생들 앞에 서서 떠들어야 한다.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사적인 감정을 깡그리 털어내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 부처나 예수라도 쉽지 않을 그 가면무도회를 나는 매일 반복해 왔다. 미숙했던 지난날의 말과 행동들을 생각하면, 휴지통에 넣고 인생을 리셋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하차하지 못했다. 달아나려 하면 교직이라는 놈은 간교한 마술을 부려 나를 붙잡았다. 그 마술은 꽤 정교해서, 때로는 색종이를 진짜 장미로 만들어 내 품에 안겨주었고, 작은 상자 속에서 수십 마리의 비둘기를 날려 보내며 내게 다시 희망을 품게 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채우려 매진하다 보니 내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코치할 실력이 생겼고, 학교라는 직장은 자녀 교육의 가장 훌륭한 정보처가 되어주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 아이를 이해했고, 내 아이를 보며 학생들의 마음을 읽어냈다. 수업 잘하는 교사라는 자아도취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봉급이 주는 안락함 속에, 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시간을 37년이나 돌려왔다.
어제는 명예퇴직 서류를 들고 교장실로 향했다. 며칠을 고민하며 작성한 퇴직원이었으나, 결국 나는 그 서류를 다시 품에 안고 나왔다. 이제 곧 교장이 될 텐데 퇴직하지 말라는 교장 선생님의 권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교장선생님도 내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를 교직에 묶어두기 위해 배치된 수많은 '운명의 등장인물' 중 한 명임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37년을 교사로 생존해 왔다. 이제 남은 3년도 나는 교사로 살아가야 할 숙명이다. 도망치고 싶었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투덜댔지만, 결국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