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돈 안 드는 말로도 사람을 얻는다."
200시간의 교장 자격 연수를 무사히 마쳤다. 6주 만에 돌아온 학교에는 한 달 넘게 비워둔 교감 자리를 증명하듯 밀린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다행히 올해는 학교 신축 공사 덕분에 수능 시험장 운영을 면하게 되었다. 수능 때마다 겪던 그 혹독한 긴장감을 생각하면, 살다 보니 이런 수월한 날도 오는구나 싶어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평화는 잠시였다. 우리 학교 선생님 34명이 타 학교 수능 감독관으로 파견되어야 했다. 교무부장이 가져온 명단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평가와 무관한 비교과 교사는 물론, 계약 기간이 한 달 뿐인 데다 감독 경험이 전무한 기간제 교사까지 배정되어 있었다. 평소 멀쩡하던 정교사들이 수능 때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진단서를 내밀며 빠져나간 결과였다.
까다로운 수험생들을 상대하며 민원의 최전선에 서야 하는 수능 감독이 고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피의 짐이 고스란히 힘없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누가 봐도 불합리했다. 이것은 명백한 '정규직의 갑질'이었다.
나는 학교를 위해,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양심을 위해 불참을 선언한 교사들을 직접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거절뿐이었다. 마침 우리 교사들이 파견될 학교의 교감으로부터 "경험 없는 교사들이 너무 많으니 숙련된 교사를 보내달라"는 간절한 부탁 전화까지 걸려 왔다.
혼자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해 교장실을 찾았다. 그러나 보고를 들은 교장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 학교 교감 마인드가 이상하네요. 보내주는 대로 받을 것이지 왜 전화를 합니까?"
교장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내가 교사들을 설득하려 노력한 점을 언급하자 한술 더 떠 비아냥거렸다.
"교감 선생님, 참 쓸데없는 짓을 하셨네요."
그런 식으로 교사들을 압박하면 기분만 상하고 학교 조직 문화가 흐트러진다는 게 교장의 논리였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발로 뛴 교감의 노력이 순식간에 '학교 문화를 파괴하고 싸움을 거는 행동'으로 치부되는 순간, 일할 의욕은 달아나 버렸다.
내가 바란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교감 선생님, 애쓰셨네요. 제가 연수 가신 동안 미리 챙기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경험 없는 선생님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우리가 잘 교육하고 도와줍시다."
그저 이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교장 연수를 받으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단어는 리더십, 소통, 그리고 철학이었다. 교장이라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교감의 마음을 경청하고, 돈 안 드는 말로라도 위로해 줄 줄 아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닐까.
교장 역시 교감 시절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다.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은 것인지, 아니면 올챙이 역할도 제대로 못 해본 채 몸만 개구리가 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높은 곳에 앉아 아래를 굽어살필 줄 모르는 리더 밑에서, 오늘도 현장의 교감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